술고래 남편을 둔 여인
이 이야기는 십여 년 전 이야기다
50대 중반의 여성분이 필자를 방문하였다. 세파에 찌달린 듯 거칠 은 피부에 머리는 반백을 이루고 차림새도 허술하여 사는 것이 바쁘고 지쳐서인지 외양에는 신경을 거의 쓰지 않는 분으로 보였다. 요즈음에야 이정도 나이면 아직도 한참 꾸미고 젊어 보이려고 노력할 나이인데 노파처럼 외양을 포기한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관상을 보니 거무퇴퇴한 피부에 여자로서 지나치게 큰 코 독을품은 듯한 매서운 눈매를 지니고 있어 한 성깔 하는 여성분임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필자가 생년월일시를 물은 후 사주기둥을 세워보니 丁酉년 壬子월 癸亥일 癸丑시로 나오고 운은 순행하여 癸丑, 甲寅, 乙卯, 丙辰, 丁巳, 戊午, 己未로 흐른다. 계수일주가 子월에 태어나 득령했고 지지는 亥子丑 수방으로 흘러 일주를 매우 강하게 하고 있다. 더구나 년지 酉金까지 金生水하고 있으니 홍수가 난 팔자이다. 丑土를 용신으로 쓰려 해도 너무 미약하니 차라리 金水를 용신으로 써야 한다. 남편을 뜻하는 관성 丑土는 습기가 많은 흙이어서 수를 제어 하는데 적합지 못한데다가 亥子丑 수국으로 흘러 본래의 토의 성질이 모호해졌다. 축토가 있으므로 오히려 흙탕물이 되어 버리는 나쁜 영향만 주는 관성이 되었다. 따라서 이 사주팔자는 남편 복 없이, 세상에 오염된 물로 시궁창을 흐르는 폐수와 같이 쓸모없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특히 이 사주팔자 속에 남편을 뜻하는 축토는 물에 잠겨서 곤죽이 되어 버렸으니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라고 추정된다. 필자 왈 “부모덕 없이 어려서부터 좋지 못한 환경 속에서 허우적대며 여기저기 떠 돌았을 겁니다. 부모덕이 없으면 남편 덕 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남편은 술 주정뱅이여서 남편의 역할도 못하고 매일 술에만 의지하고 사는 분이라고 보여 지는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라고 말문을 여니 이 여자분 표독스럽게 필자를 노려 보기만할 뿐 (맞다, 아니다) 대답이 없다.
순간 필자는 짜증이 났다. 필자의 진단이 틀렸다면 필자가 용신을 잘못 잡은 것이니 다시 수정해서 시작 해야겠고 맞는다면 계속 이를 견지해서 풀어나가야 할 터인데 아무 말이 없으니 순간 짜증 스러웠던 것이다.
필자가 상담을 하다보면 여러 유형의 사람들은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서 상담하기 가장 어려운 유형중 하나가 이렇듯 입을 꽉 다물고 필자의 질문에 답을 않고 ‘너 혼자 떠들 대로 떠들어봐라, 나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테니’ 라는 식의 크레물린 형의 손님이 제일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고 대개 이런 유형의 손님들은 음흉한 이가 많아 까닭 잘못하면 손님의 농간에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어 긴장해야하는 사람들이다.
필자가 짜증스런 표정으로 “제 상담이 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세요!” 라고 한 뒤 벌떡 일어나자 그제야 황급히 “아니 그게 아니고, 그냥 옛날생각이 나고 선생님이 혹시 예전에 나를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어서 심각하게 쳐다본 것뿐이에요.” 라고 허둥지둥 변명한다. 변명이던 필자의 오해 이던 간에 분위기는 수습되어 상담은 이어졌다. 이분은 전남벌교가 고향인 분이다. 전형적인 농부였던 아버지가 논에다 농약을 치다 농약중독으로 쓰러진 뒤 폐를 상해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신 뒤부터 가세가 갑자기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생들 뒷바라지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이런저런 사연을 거쳐 부산에 있는 다방에서 레지생활 하다가 백수건달 같은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위인은 악하지 않으나 게을러서 일하기를 무척 싫어했고 노상 집에 틀어박혀 술타령 이였다.
보일러 기술자라서 부지런하기만 하면 생활이 좀 피련만 며칠 나가 일해 돈이 좀 모이면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술타령이었다. 이러다 보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고 여자 힘으로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 수발하려니 죽지 못해 사는 형편이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이종사촌 언니가 LA에 제법 규모가 있는 마켓을 운영 중 이었고 마침 사람이 필요한지라 이들 부부를 불러들였고 이런 사연으로 LA에 정착하게 된다. 미국에 오면 사람이 좀 달라지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는 미국 도착하는 첫날부터 깨져버렸다. 이들 부부를 환영해 준다고 이종사촌 언니가 BBQ파티를 집에서 열어 주었는데 주책없이 퍼마시고는 그집 수영장에 오줌을 싸대는 것으로 첫인사(?)가 시작되었다. 마켓에서 시키는 일도 노상 건성 건성이고 틈만 나면 사장인척 이랍시고 사무실에 기어 들어가 소파에 쳐 박혀 낮잠 질이요. 날만 조금 어둑어둑해지면 득달같이 술병을 채잡아서 술타령이니 사촌언니 내외도 점점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이고, 영주권 스폰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협박(?)도 예사로 해대니 남편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고 ‘다시 한국으로 가야하나? 아니면 여기에 머물러야 하나?’ 하는 고민 중 필자를 찾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필자 왈 “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입니다! 그런 남편을 둔 것도 여사님 팔자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제가 아무리 보아도 여사님은 미국에 살 팔자가 아닌 것 같고 차라리 더 늦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계속 계시다 보면 아이들도 미국에 급속히 적응이 되서 한국으로 가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고 남편은 계속 그 모양일 테니 가정이 파탄 나고 말겁니다. 지금이라도 한국에 돌아가셔서 다시 자리 잡고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니 이 여자분 좋지 않은 인상을 더욱 찌그리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남자 복 없는 팔자 어쩔 수 없나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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