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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홈리스가 된 정선생.

2018.10.15

                 

홈리스가 된 정선생   


 불행은 갑자기 찾아 왔다. 정선생은 한국에서 유수의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의 엔지니어로 안정된 길로 들어섰고 중매로 부인을 만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귀여운 딸 하나를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이러던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이 이혼을 요구해 왔다. 주위에서 보기에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평소 술.담배도 안하고 오직 직장과 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성실하기만 한 정선생에게 어떤 문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인은 단호했다. 고지식하며 융통성이 없는 정선생이 너무 답답해서 싫다는 거였다. 주위 사람들은 말하기를 “미친년! 복에 겨워서 지랄한다!”고 했지만 부인은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는데 이혼하고 난 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선생과 결혼하기 전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 남자가 배신하여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그 결혼이 얼마 못가 파경에 이르자 다시 옛 애인을 찾았고 정선생 부인은 그토록 못 잊던 옛 애인과 다시 불이 붙어 정선생을 차버린 것 이였다. 


 이렇게 되었든 저렇게 되었든 아무튼 부인에게 채인 정선생은 세상살이가 시들해 졌다. 이러던 차에 회사에서 해외근무를 제안하자 얼씨구나! 하고 미국 해외지사에 나오게 된다. 한국이 무작정 싫어졌던 터이라 해외 지사근무는 목말랐던 참에 찬물을 들이킨 것과 같았다. 미국지사근무 몇 년 동안 이곳 미국에서 생활해보니 이곳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본사 소환발령이 나자 사표를 내고 미국에 주저앉았다. 퇴직금과 그동안 애써 모아둔 자금으로 기계무역업을 조그맣게 시작했다. 다행히도 초창기 사업은 순조로웠고 그럭저럭 꾸려나갈 수가 있었는데 사업시작한지 3년째 되는 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한 업체와 제법 규모가 큰 거래 건을 성사시켜 환호했는데 이게 완전 사기였다. 무역 사기단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완전히 쪽박을 차고 말았다. 크게 상심하여 삶의 의욕을 잃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없이 막일이라도 해야 했다. 


 소개 소개로 만난 한 페인트업체 사장을 쫒아 다니며 페인트 보조공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 나갔다. LA한인타운 싸구려 하숙집에 거주하며 일을 하러 다녔는데 하숙비 내고 나면 몇 푼 손에 남지 않아 담배 값에 시달릴 정도였다 한다. 아무래도 페인트 보조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울 것 같아 하숙집에서 만나 사람의 소개로 건축업을 하는 사장을 소개 받아 목수 데모도(보조)로 건축 현장을 쫒아 다녔다. 경제적으로 시달리다 보니 명목상 신분유지를 위해 등록해 놓았던 학원비도 감당하기 어려워 신분유지에 실패하고 불법체류자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죽지 못해 사는 생활을 하다가 공사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기부스도 했지만 병원비 때문에 꾸준히 병원을 다니기도 어려웠고 처음에는 정성을 보이던 건축업체 사장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제는 모른 체하며 냉담하게 대했다. 결국 제때 치료를 못해 손이 불구가 되니, 이제는 막노동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체면 불구하고 여기저기 손을 벌려 겨우겨우 몇 달을 버텼지만 시간이 지나자 손 벌릴 데도 없어지고 말았다. 한국에 있는 형제들도 몇 번 도와주고는 등을 돌렸다 전화를 해도 받아 주지도 않았다. 눈앞이 깜깜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머문 하숙집이여서 처음 몇 달은 하숙비가 밀려도 봐주었으나 이제 노골적으로 눈치를 주고 아무리 사정을 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건만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는 막무가내로 정선생 짐을 대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른 것이다. 우선 급한 대로 타운에 있는 24시간 영업하는 동서싸우나로 숙소를 정했다. 이곳은 집 없는 처지의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 몇 명 머물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고 동변상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손 하나를 못 쓰니 힘든 막일은 할 수 없었고 리커스토아를 운영하는 영감님에게 사정사정을 해서 케시어로 하루 몇 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일 할 수 있게 되어 다행 이였다. 목돈은 없으니 하숙집에 들어갈 형편은 아니고 싸우나에서 겨우 겨우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이러던 어느 날 리커에서 일하고 있는데 웬 시꺼먼 흑인 하나가 들어오더니 자꾸 자기 눈치를 슬슬 보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아무래도 물건을 훔쳐 가려는 놈 같아 계속 신경을 쓰며 지켜보았는데 이놈이 리커 구석진 자리에다 오줌을 싸는 것 이였다. “확더뻑!” 하며 욕을 하며 제지하려 다가가니 이놈이 태연한 얼굴로 씩 웃더니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든다. 얼굴이 노래져서 손을 바짝 쳐들었더니 카운터로 가서 캐시를 탁탁 털어 넣고(치사한 놈이 동전까지 탁탁 털어갔다.) 유유히 휘파람을 부르며 사라졌다. 혹시 놈이 다시 되돌아와 총을 쏠까 두려워 캐시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는데 마침 가게 주인 영감이 돌아왔다.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이 영감 갑자기 화를 내며 “아니? 손 하나 까딱 않고 다 털렸단 말이야? 그리고 바로 신고를 해야지 병신 처럼 지금까지 계속 엎드려 자빠져 있었다니 말이 안나오는구만! 병신, 병신 하더니 이런 병신머저리를 다 보겠네!”라고 욕을 해대었다. 그날로 해고 됐다. 그 뒤로는 다른 어떤 일도 잡히지 않았다. 팔 하나 못 쓰는 불구에게 일자리가 있을 수 없었다. 싸우나 입장비도 낼 형편이 못되자 길바닥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거지(홈리스)가 되고 만 것이다. 가지고 있는 짐을 버릴 수도 없어 카트를 하나 구해 짐을 실고 끌고 다니니 완전한 형태의 홈리스였다. 이렇게 해서 정선생은 홈리스가 됐다. 예전에 정선생에게 필자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적극 권유했지만 “이 꼴로 어떻게 한국에 갑니까? 쪽팔리게!”라고 했었다. 사람팔자 시간문제라 했는데 정선생이 그랬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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