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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도선국사와 어머니.

2018.11.19


도선국사와 어머니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국조(國祖)는 신라 말 옥룡자 도선국사이다. 도선은 왕건이 개경에 고려를 세울 것을 예언했으며 우리나라 구석구석 생기가 허한 곳을 찾아 그곳에 사찰과 탑을 세우도록 했다. 오늘날 아주 오래된 수많은 절터가 거의 다 도선국사가 지정한 장소이고 어디 한군데 허투로 세운 곳이 없다. 뿐만 아니라 도선국사는 <도선비기>를 남겨서 후에 생겨날 왕조의 도읍지와 명당자리를 두루 예언했다. 도선국사의 맥은 고려 말 나옹대사로 이어지고 그의 제자 무학대사에 의해 꽃을 피운다. 무학대사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 왕조를 창업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한양을 도읍지로 삼는다. 그러나 개국공신 정도전의 힘에 눌려 마음먹은 대로 궁궐의 방향을 잡지 못 했으니 이마저도 도선국사가 예언한 바였다. 도선 외에 신라의 신승인 의상대사도 <산수비기>에서 ‘국도를 고르는 자가 승려의 말을 들으면 국운이 번성할 것이나 만약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나와 시비를 논하면 오세(五世)가 되지 못하여 찬탈의 화가 생길 것이며 그 백년 안팍으로 나라가 혼란스런 재액이 있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이들의 예언대로 조선의 궁궐터는 정도전의 주장에 따라 잘못된 좌향을 잡았고 예언대로 얼마 안 되어 태종시대에 왕가에 골육상쟁의 큰 변이 있었고 세조반정의 이변이 있었으며 이후 끊임없이 왕가의 비극이 이어진다. 


  그리고 개국 200년 되는 해에 드디어 임진왜란이 터졌고 갈수록 국운이 쇠해진다. 고려의 개국과 조선왕조의 개국 그리고 멸망까지 정확히 그 오래전 예언했던 도선국사는 서기 827년, 통일신라 흥덕왕 2년 정미년(丁未年)에 월출산으로 유명한 영암 땅에서 태어난다. 모친인 최氏 부인은 하늘로부터 한 줄기의 강한 서기가 꽂히는 빛줄기를 안는 꿈을 꾼 직후 도선을 낳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도선이 잉태되고 얼마 안되 저 세상으로 갔으니 유복자로 태어난 것이다. 이전에 또 하나의 태몽을 꾸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따사로운 햇살이 퍼지는 화창한 봄날 최氏 부인은 혼자서 봄나물을 캐러 들에 나갔다. 어느 골짜기를 더듬고 있었는데 전에 없던 복숭아나무가 지천으로 널려있어 생소했고 예사롭지 않았다. 탐스럽게 열린 복숭아를 가득 따서 바구니에 담고 그 중 하나를 들어 맛을 보려고 하는데 어딘가에서 큰 음성이 들렸다. “그깟 봉숭아를 따먹어서 세상이 열리겠느냐? 이여의주를 받아 먹거라! 새 세상을 여는데 공헌할 인물을 낳게 되리라!”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거대한 청룡이 구름을 안은 채 여의주를 내밀고 있었다. 최氏 부인은 두려움도 없이 그걸 덥석 받아먹었다. 깨어보니 꿈 이였다. 태몽치고는 큰 태몽 이였다. 그리고 도선을 잉태했다. 


  아기가 태어났으나 이름을 지어줄 사람도 없었다. 최氏 부인은 글을 배우지 못했기에 궁리 끝에 용의 여의주를 받아먹고 낳은 아이이니 옥룡자(玉龍子)라 했다. 옥룡자의 총기는 세 살 무렵부터 두드러졌다. 한번 들어서 잊어버리는 게 없고 이때 벌써 문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영암고을 사람들은 자기들 마을에 천재가 났다고 함께 기뻐해 주었다. 최氏 부인은 아이의 영특함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몸이 부셔져라 험한 일 굿은 일을 가리지 않고 해가며 아이의 뒷바라지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흐르자 아들이 “산이 저를 부르옵니다. 어머니 저를 산으로 보내주세요.”라고 했다. 최氏 부인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훌륭하게 키워 나라의 동량이 되게 하려 그 모진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에미를 떠나겠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무렵 신라 왕실은 이미 기강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삼국통일의 위엄을 달성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유지하여 그 문화가 눈부시게 번창했으나 잇단 왕권다툼으로 사회는 극도의 혼란 속에 빠져있었다. 집권층과 주변의 귀족. 호족. 사찰세력 등은 그 세를 늘려가며 호위호식 하였으나 백성들은 빌린 곡식을 못 갚거나 비싼 이자에 밀려서 기득권층의 노예가 되기 십상 이였다. 참다못한 그들은 무리를 지어 도적 때가 되어 걸핏하면 난리를 일으키기도 하고 멀리 일본이나 만주 등지로 봇짐을 싸서 떠나기도 했다. 


  혼란스런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이나 천년도 더 된 그 옛날 신라 말의 상황이 비슷했던 것이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벼슬길에 나가는 것은 미덕일 수 없었다. 아들은 조리있는 말로 현재의 상황을 조리있게 에미에게 설명했고 ‘진실 된 큰 공부’를 하고 싶다고 간청했다. 최氏 부인은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진정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아들을 말릴 수가 없었다. 욕룡자가 곡성 동리산 태안사(泰安寺)에서 머리를 깎고 불문에 귀의하니 도선(道詵)은 그의 법명이 되었다. 이곳에서 십년 가까이 참선 공부를 하며 역학(易學)을 배운다. 이 공부를 통해 예지력을 거울처럼 맑게 키우고 역학의 비술을 익힌다. 이 공부를 마친 뒤 나라 이곳저곳 삼한 강토를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가서 보고 살핀다. 또한 중국으로 건너가 풍수지리를 익힌다. 그리고 이 땅의 생기를 찾아 개성의 진봉산과 한양의 삼각산에 절을 세우고 민족의 중흥을 기원한다. 개성에는 고려왕조가 한양에는 조선왕조가 들어설 것임을 예견한 것이다. 그 무렵 영암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태안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최씨부인이 위독하다는 소식 이였다. 


  도선은 급하게 달려갔으나 안타깝게도 최氏 부인은 숨을 거둔 직후였다. 승려가 되면서 속세의 연을 끊었지만 도선은 창자를 끊는듯한 슬픔이 있었다. 유복자를 낳아 그 아들 하나에 모든 희망을 걸고 모진고생을 마다하지 않았건만 아들의 참 진리를 위한 길을 막지 못하고 속세를 떠나는 하나뿐인 아들을 보내며 그리도 비통해 하시던 어머니였다. 도선은 제대로 슬퍼할 사이도 없이 어머니의 산소를 잡아야 했다. 살아생전 효도 한번 못했기에 이제라도 영원히 편하게 쉬실 수 있는 터에 모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를 헤맨 끝에 월출산 기스락에서 풍수적 전문용어로 비봉포란형(飛 鳳抱卵形) 명당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봉황은 희대의 영험스런 길조였다. 그런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자리다. 장차 성인군자가 나올 수 있는 명당 중 명당 이였다. 특히 이런 돌산에서는 흙이 있는 곳이 명당이다. 노력 끝에 마침 그런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곳이 바로 비봉포란형 혈자리였다. 게다가 봉황의 알을 상징하는 동근 바위가 길한 방향에 있었다. 


  바위가 없는 흙산에는 바위가 있는 곳이 명당이고 돌산에는 흙이 있는 자리가 명당인 것이다. 바위는 사람의 뼈와 같다. 뼈가 없으면 힘을 쓸 수 없다. 흉한 방향에 바위가 있으면 패가망신 하지만 길한 방향에 모양이 좋은 바위가 있다면 명당인 것이다. “어머님 불효자를 용서하시고 이제는 편히 쉬십시요!” 도선은 눈물을 흘리며 안도했다. 살아생전 효도한번 못해드렸지만 그래도 명당을 잡아드릴 수 있어서 다행 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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