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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가슴아픈 사연.

2018.12.10

 


    가슴 아픈 사연  


  신모氏는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재정상태가 튼튼하기로 유명한 중소기업체의 차장으로 근무 중인 이였다. 넉넉지 않은 급여였지만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로 맞벌이 가정 이였기에 살림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었는데 년연 생인 자녀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과외비로 지출되는 돈이 가정경제에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 특히나 딸은 바이올린에 소질을 보였고 학원원장이 아이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하며 특별 교습을 시키는 게 좋겠다고 강권하여 이에 응하다보니 더욱 그랬다. 신모氏는 처음에 완강하게 반대했다. “우리 형편에 어떻게 그렇게 부담스러운 교습 비를 지출할 수 있어? 형편에 맞게 살아야지!” 이에 대해 아내는 “부모가 되가지고 어떻게 아이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데도 이걸 모른 체 할 수 있어? 이건 부모로서 도리가 아냐!” 이렇게 주장하여 한동안 갈등이 심했다. 결국 신모氏가 양보하여 아이는 고액 바이올린 과외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볼 수 없어 아이들에게 형편에 넘치는 지출을 하다 보니 가계에 어려움이 있는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학부모에게 받은 촌지가 문제가 되어 학교까지 그만두게 되자 더욱더 난감하게 되었다. 이러던 차에 미국 LA에 살고 있던 처형이 아내에게 바람을 넣었다. 한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차라리 이참에 아이들 미국에 조기 유학 보내는 게 좋지 않으냐는 것 이였다. 엄마가 아이들 뒷바라지 하면서 파트타임만 뛰어도 아빠가 보내주는 돈에 보태면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아내는 한참이나 고민하는 눈치더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남편인 신모氏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족이 어떻게 떨어져 지내냐고 펄펄 뛰었지만 결국 고집 센 아내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신모氏의 기나긴 ‘기러기 아빠’ 생활이 시작 됐다. 


처음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자주 통화를 하며 서로를 걱정하며 안부를 챙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락이 뜸해지더니 전화를 해도 잘 받지 않는 일이 종종 있었다. 1년에 한 두 번은 꼭 휴가를 내서 LA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 그 횟수가 자연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생활비를 줄여 보려고 부부는 의논을 하여 어렵게 장만했던 APT를 처분하여 미국으로 보내고 신모 氏는 고시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예전에 처음 부부가 필자를 찾았을 때 느낀 인상은 신모氏 부인은 성격이 괄괄하고 쾌활한 반면 신모氏는 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같았다. 추후 미국 이민문제에 대해 의논하려 신모氏가 휴가를 내어 잠시 미국에 다니러온 참에 필자를 찾았었다. 


이때 필자는 신모氏 부부에게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에 건너오던지 아니면 아이들 유학을 포기하고 엄마가 아이들 데리고 한국으로 가던지 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했었다. 이에 대해 신모氏 부인은 “지금 애들 데리고 한국에 가면 죽도 밥도 아무것도 안돼요! 아이들이 다시 공부해서 한국 수업을 따라 갈 수도 없을 거고 대학은 꿈도 못 꿔요! 이 사람은 소심해서 미국에 와도 일자리 구하기는 힘들 거예요!”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 이였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신모氏의 기러기 아빠 생활은 지속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미국에 다녀가도 늘 마음이 상해서 돌아가게 되었다. 아이들과 아내가 자신을 경원시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죽어라 돈 벌어 돈 보내주는 것을 아내나 아이들은 고마워 할 줄 모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냥 ‘돈 버는 기계’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 복장이나 태도 등에 대해 지적을 하면 아빠는 오기만 하면 잔소리 한다며 반항하고 “아빠가 촌스러워서 그래. 여기는 원래 다 그래! 잔소리 그만해!”하고는 문을 쾅 닫고 상대해 주지도 않았다. 아내의 태도도 점차 변해갔다. 


오랜만에 방문했는데도 별로 반기는 기색도 없고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방문을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정적인 것은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아내가 자신과의 성적 접촉을 거부하는데 있었다. 나이도 있는데다가 아이들 뒷바라지에 지쳐서 그런가 보다하고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이해하는 쪽으로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부쩍 의심이 들었다. 예전 70년대에는 중동 특수 바람이 불어 많은 남성들이 몇 년씩 계약을 하고 돈을 벌려고 건설노동자로 나가는 일이 많아 많은 사우디(사우디 아라비아)부인들이 남편을 배신하고 제비들과 바람이 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기러기 부인들의 탈선이 많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메스컴 소식에 불안하면서도 “에이 설마! 우리 집사람은 절대 그렇지 않을 거야!”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외로움을 참았는데 사정이 이러다 보니 의심이 퍼득 들고 아내를 의심하는 자신이 비참해 지기도 했다한다. 


언젠가 신모氏가 혼자 방문 했을 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에 했던 내 충고대로 하세요!”라고 간곡히 충고했으나 “현실 여건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어요!”라고 하며 괴로워했었다. 결론은 이렇다. 신모氏 부인은 애들 뒷바라지 한다는 핑계로 미국에 건너와서는 남편이 애써 보내주는 돈으로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끼리 골프다 쇼핑이다 하며 나돌았고 골프장에서 만난 우람한 체형의 골프티칭 선생과 바람이 났고 인생의 최대 낙을 즐기는 사이 신모氏는 아침에 눈 뜨면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허둥지둥 고시원을 나와 직장에 출근을 했고 퇴근하면 혼자서 고시원 골방에서 저녁대신 안주도 변변히 없이 소주로 저녁을 대신하고는 쓰러져 잠드는 생활 속에 시들어 갔다. 


결국에는 부인이 변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괴로움에 떨다가 결국 잘못된 생각을 했다. 며칠째 출근도 않고 연락도 없어 찾아온 직장 동료에게 발견된 신모氏 방에는 자신의 형에게 남긴 간곡한 유서가 있었는데 자신의 퇴직금을 대신 수령해서 아이들에게 꼭 보내주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바람난 여편네를 욕하고 증오하면서도 남기고 가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이 절절한 내용 이였다고 한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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