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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착해 병(病)인 여자.

2019.09.16


    너무 착해 병(病)인 여자  


  김 여사님은 너무 착한 것이 병(病)이다. 평생에 누구 한번 원망해 본 적이 없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않고는 참지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착한 김 여사님에게는 복(福)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어려서 부모 복 없이 고아로 자랐다. 어릴 때 잠시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부모님과 함께 지낸 것 같은데 이후 뚜렷한 기억도 없이 고아원에서 원장님 내외를 엄마·아빠로 부르며 자랐다. 다행히도 목사님이셨던 원장님 내외분은 매우 자상하고 봉사에 헌신적인 분들이어서 자라면서도 자신이 특별히 불행하다고는 느끼지 못했고 여고 졸업 후 작은 은행에 취직이 되어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남편 복이 없어 20대 초반에 만나 결혼한 놈이 백수 건달 이였고 그 놈의 부모는 한술 더 뜨는 개고기들이였다. 고아라고 결혼을 반대한 것부터 시작하여 백수 아들놈 야단은 안치고 늘 “재수 없는 년이 집안에 들어와 되는 일이 없다!”고 못할 소리를 예사로 했고 월급날이면 직장 문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월급을 뺏어가기 일쑤였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모두가 하는 일없이 빈둥대며 김 여사님 월급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이러니 정상적인 생활이 될 리가 없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빈혈에 시달리면서도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러나 자식 복도 없어 어렵게 얻은 아기가 정상이 아니였다. 자폐증 증세의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직장을 다녔는데 자기 친손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제대로 먹이지도 않았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도 남편이라는 놈은 다른 년과 눈이 맞아 도망을 갔고 김 여사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들을 데리고 그 집을 나와 버렸다. 이렇듯 부부관계가 파탄난 뒤에도 시부모님들은 뻔뻔하게 월급날 찾아와 돈을 한동안이나 요구했다. 어렵고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다 미국에 이민 간 친구에게 이민권유를 받는다. ‘장애아동을 교육하고 치료하는 시스템이 발달한 미국에 오면 생활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생각 안하고 이민을 결심했다. 


원장 아빠·엄마는 무조건 반대하셨다. “왜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의지할 곳 없는 미국에 가야하느냐?”라고 하시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는데 아이를 생각해서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이윽고 어렵사리 미국에 건너오게 되었다. 그동안 어렵사리 모은 돈을 정착금으로 쓰려고 했는데 친구 복이 없어 처음에 미국이민을 권유했던 친구에게 몽땅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봉제 공장을 하던 친구가 잠깐만 돈을 빌려주면 오더 받는 물건을 납품해서 수금이 되면 두둑한 이자까지 쳐서 주겠다고 해서 응했는데 나중에 ‘배 째라’로 나왔다. 이런데도 김 여사님은 친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필자에게 “그때 그 친구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에게까지 그렇게 했겠어요? 제가 복이 없는 탓이지요!”라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영주권은 취업영주권으로 순조롭게 해결되어 자폐증 아들을 특수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들의 증세가 호전되는 것 하나에 희망을 걸고 살아나갔다. 


김 여사님은 성격이 무척이나 낙천적이고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잘 풀어 지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또한 강한 동정심의 소유자였고 어려서부터 봉사희생정신이 강한 착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보육원시절 남들은 다하기 싫어하는 누어서 똥오줌 싸는 장애 원우들 씻기고 수발드는데 적극 이였다. 이런 김 여사님의 착한 마음씨에 원장 부모들도 감동하여 더 신경을 써준 것일 것이다. 김 여사님은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죽어도 싫어했다. 남을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일이 절대 없었다. 보육원시절에도 맛있는 게 생기면 함께 생활하는 어린 동생들 입에 먼저 넣어주었고 누가 자기 것을 강제로 뺏어가도 화를 내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주위로부터 바보취급을 당하기도 했지만 너무 착해서 그렇지 결코 바보가 아니였다. 미국에 이민 와서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회사에 업무가 남아 있으면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그 일을 꼭 마치어야 일을 끝났으며 사정이 있다고 동료가 자기 할 일을 떠 맡겨도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대신해 주었다. 이러면 당연히 주위로부터 대접을 받아야 할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멍청이·바보 취급을 하며 이용만 해 먹으려 들었다. 


누가 와서 사정이야기를 하고 돈을 꿔달라면 자기도 어려운 처지임에도 거절 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기 돈이 없어도 상대 사정을 듣고 가슴아파하며 돈을 빌려서라도 꿔줘야 직성이 풀렸다. 그리고는 꿔준 돈 대부분을 돌려받지 못했다. 필자에게 와서 야단을 맞곤 했는데 “아무리 상대가 사정이 어렵다 해도 절대 돈 꿔주지 말아요. 또 꿔주고 제대로 받은 적 있습니까?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립니까? 내 코가 석자인데 돈이 없으면 그만이지 꿔다가 꿔줄 것 까지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하면 “글쎄 그건 그런데 나를 믿고 어려운 사정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모른 체 할 수가 있어요?”라고 답답한 소리를 한다. 이렇게 바보·병신으로 소문이 나다보니 못된 것들이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어떤 노름쟁이는 자신이 노름하는 것을 속이고 ‘부모님이 중 병이 들어 급히 수술비가 필요하다.’거나 ‘아이가 사고가나서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등등 자기 식구들과 처가 식구들을 거의 다 병들게 하거나 죽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 거짓말이고 노름 밑천 쓰려고 김 여사님을 이용한 것 이였다. 물론 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평생 무척이나 성실하게 노력했으나 김 여사님에게는 돈 복과 인복이 없어서 목돈을 만들 수 가없었다. 돈이 조금 모여지면 꼭 돈이 나갈 일이 생기거나 누군가 와서 뺏어갔다. 처음 필자가 김 여사님 사주를 보았을 때 처음한 소리가 “눈 덥힌 꽁꽁 얼은 겨울 들판위에 소나무 하나가 굳건히 서서 눈보라를 맞고 있군요!”였다. 너무도 착해서 병인 김 여사님에게도 단 하나의 복이 있었으니 건강 복과 수명 복 이였다. 건강하다고 반드시 오래 사는 것도 아니요 병약하다고 반드시 일찍 죽는 것도 아니다. 평생을 골골하면서도 일찍 죽지 않고 오래 오래 사는 이도 있으며 황소라도 때려잡을 듯 팔팔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숨을 놓는 이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김 여사님은 아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다 가는 복은 있었다. 수명을 살펴보니 최소한 96~97세 이상은 살 것 같고 그때까지 아주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아프지 않고 갑자기 자연사 할 것으로 보였다. 복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이였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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