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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경제

미국의 의료 문제, 그리고 정치

2018.03.25

전국적인 통합 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의 의료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비싼 보험료를 내는 사람들조차도 코페이먼트, 코인슈런스, 맥시멈 아웃오브파켓 등 자가부담액이 무서워서 선뜻 병원에 가지 못한다. 파산 신청을 하는 미국인들의 가장 큰 이유가 감담할 수 없는 의료비 때문이고, 미국인 넷 중 한 명이 의료비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는 미국의 슬픈 현실이다.


민간 의료보험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한다. 만약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지병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보험을 팔지 않을 것이며, 환자한테서 받는 보험료보다 지출해야 하는 의료비가 더 많이 나가면 가차 없이 보험을 취소시킬 것이며, 아픈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보험료를 물리고, 동시에 보험사에서 지급하는 병원비에 적은 한도를 둘 것이다. 사실은… 이런 것들은 불과 수년 전, ACA(Affordable Care Act -오바마케어라고 흔히 불림)가 시작되기 전에 보험사들이 하던 보편적인 영업행위들이었다. 건강해서 병원 신세를 질 필요가 없는, 그래서 보험료를 내기만 하는 사람들이 보험사들 입장에서는 가장 수익성이 좋으므로 그들 외, ‘돈이 되지 않는’ 환자들은 갖은 방법을 써서 쳐 낸 것이다. 


나는 자유시장이 필요하다고 믿지만, 돈을 버는 것이 제1의 목표인 회사들과 의료보험이 공존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생각한다. ‘돈이 되지 않는’ 환자들을 쳐 내는 건 보험사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자유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일 뿐이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대로) 무보험자들이 내야 하던 페널티가 없어질 테니(2019년부터 시행), 돈이 별로 없는 많은 젊고 건강한 이들이 보험에 들지 않을 테고, 따라서 보험이 필요한 사람들의 비싼 보험료가 더 비싸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 복잡하고 심각한 미국의 의료 문제를 고칠 방법으로는 한국이나 부유한 유럽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외에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무엇이 ‘좋은 제도’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범국민적인 논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명심해야 하는 것은, 누가 어떤 의료 체계를 옹호하든 상관없이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국 비용은 국민 전체가 치른다는 것이다. 만약 자유 시장의 옹호자인 당신이 민간 의료 업계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당신도 보험이 가장 필요할 때 보험사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당신이 현재 군인 가족이거나 다른 정부기관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좋은 보험’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당신의 그 저렴하고 좋은 혜택은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보험 혜택을 위해 세금을 내지만 자신들은 돈이 없어 당신과 같은 의료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가지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다. 더 중요한 것은,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오르는 미국의 의료비에 정부가 나서서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또는 세금을 인상하지 않는 한, 당신이 즐기고 있는 그 ‘좋은 보험’도 시간이 지나면서 혜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회사를 통한 보험이 있어도, 의료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권리를 나의 권리같이 지지해 주어야 한다. 당신이 만약 아프거나 회사의 감원 조치로 실직하면 당신도 하루아침에 그들과 같은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한배에 타고 있다. 당신이 있는 곳에 물이 들지 않는다고 하여 아래층에서 새는 물을 막아주지 않는다면 그 물은 곧 당신을 덮친다. 사회적인 약자들의 권리도 나의 권리같이 여기고 지켜줘야 하는 이유이다. 나는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엄마가 어떤 인터뷰에서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도, 삼풍 백화점이 붕괴했을 때도, 유가족들이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도 나는 그들과 함께해 주지 않았다. 왜냐면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결국 내 일이 되더라....'  


미국에서 평생을 사는 한국 이민자들 중 미국의 정치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영어가 불편해서일 수도 있고, 워낙 장시간 일을 하니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와 정치인들이 만드는 법은 우리 모두의 건강은 물론, 우리 주머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내 건강과 주머니 속의 돈을 지키듯 '정치적'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과 그들이 지지하는 정책이 나의 건강과 주머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한다.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는 내가, 또는 가족 중 한 사람만 심하게 아프면 가족 전체가 경제적 파탄을 맞는 건 시간문제이다. 당신이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면 이 심각한 범국가적 의료 문제는 정책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 바란다. 아무리 바빠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반드시 투표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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