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헨델의 일생을 담은 비디오는 시청각교육실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광란의 오를란도’에 기초한 헨델의 오페라 오를란도(Orlando)에 자료전시실도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빛 바랜 악보들과 고풍스런 악기들이 연출한 헨델박물관의 분위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훌륭하다.
유럽에 있는 음악가 박물관 중에는 컬렉션 등 여러가지 면에서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
![]() ![]() ![]() ![]() 아버지는 엄격했는데, 헨델에게 법률을 가르쳐 장차 훌륭한 변호사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러나, 헨델은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많았으며 모든 악기에 관심이 많았다.
![]() 하루는 클라비코드(Clavichord) 소리에 잠을 깬 식구들이 소리 나는 다락방으로 올라 가니..
![]() 어린 헨델이 클라비코드를 연주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전해져 온다.
![]() 아버지는 집안에서 악기 사용을 금했지만, 헨델의 심장에는 이미 뜨거운 음악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 ![]() ![]() 1702년에는 할레대학에 들어 갔고, 몇 달 후에는 교회의 임시 오르간 연주자가 됐다.
![]() 1년쯤 후 그는 함브르크로 옮겨 갔는데, 그 때부터 헨델은 이탈리아와 영국, 독일을 오가며
![]() 46편의 오페라와 32곡의 오라토리오 등 수많은 걸작품을 남겼다.
![]() 지금 흐르고 있는 수상음악(Water Music)도 영국왕 조지 1세를 위해 1717년 헨델이 작곡한 것이다.
![]() 1749년에는 ‘왕궁의 불꽃놀이’를 작곡하고 1750년, 헨델은 마지막으로 독일을 방문한다.
![]() 다음해 실명한 그는 1759년 3월 30일, 마지막으로 메시야를 공연하고 4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 헨델은 그가 원한대로 조용한 장례를 치른 후, 시신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안장됐다.
![]() 하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도시, 할레에 언제나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 지금도 매년 6월초가 되면 헨델 페스티벌이 할레에서 열흘 동안 열린다.
![]() 올해는 5월 25일부터 6월 10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 6월초에 독일을 여행하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도시는 바로 할레다.
https://www.haendelhaus.de/en/hfs/homepage (헨델하우스 정보)
글, 사진: 곽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