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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라이프치히-2(독일)

2018.04.20



  라이프치히-2


Leipzig-2

 

 

그러자 바흐는 집안 사람들이 잠들고 나면 악보를 몰래 꺼내어, 달빛 아래서 모두 베꼈다고 한다.

 

 

 

 

 

 

악보를 모두 베끼는데 걸린 시간은 반 년이었다.

 

 

 

 

 

 

그러나 완성 후에 그것을 알게 된 형은 무정하게도 악보를 모두 빼앗아버린다.

 

 

 

 

 

 

 

 

 

 

Thomaskirche

 

 

20세 때는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왕복 586 마일의 먼 길을 도보로 여행한 적도 있다.

* LA 에서 라스베이거스 까지의 왕복 거리는 530 마일이다.

 

 

 

 

 

아른슈타트 새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된 바흐는 당시 오르가니스트로 최고의 명성에 있던

디트리히 북스후데(Dieterich Buxtehude)의 오르간 연주를 듣기 위해

뤼베크(Lubeck)로 도보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하지만, 4주일간 계획했던 여행은 북스테후데의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콘서트의

연속으로 인해 뤼베크에 남아 4주일간 계획했던 여행은 3개월로 바뀌게 된다.

 

 

 

 

 

 

바흐는 매일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손으로 적었으며 아른슈타트로 돌아 가는

바흐의 손에는 무거운 악보도 함께 쥐어져 있었다.

 

 

 

 

 

 

바흐는 1708년부터 1717년까지 바이마르 궁정에 봉직했다.

 

 

 

 

 

 

이무렵 바흐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 각지에서 초대받는 일이 많아졌다.

 

 

 

 

 

 

1717 9월에는 드레스덴 궁정에 초대를 받았다.

 

 

 

 

 

 

프랑스의 건반악기 연주자인 루이 마르샹(Louis Marchand)과 즉흥연주를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드레스덴의 악장을 맡고 있던 볼뤼미에는 바흐와 프랑스 음악가를 경연시켜

국왕으로 하여금 양자의 가치를 몸소 비교해 판정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리 국왕의 승락을 얻은 후, 바흐에게 연락 음악 경연에 초청했던 것이다.

 

 

 

 

 

 

바흐는 서신을 보내 마르샹을 음악경연에 정식으로 초대하고 그가 제출하는 과제를

모두 즉흥으로 연주하겠다고 제의하면서, 동시에 마르샹에게도 같은 조건을 요구했다.

 

 

 

 

 

 

마르샹이 이 도전을 받아 들이자 볼뤼미에는 국왕의 승락을 얻어 경연의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당일 경연장소로 선택된 궁내대신 프레밍백작의 저택에는 많은 남녀 고위인사들이 모였다.

 

 

 

 

 

 

그런데 바흐는 정시에 출두했지만 마르샹은 계속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숙소에 확인해 보니, 이미 마르샹은 그 날 아침 드레스덴을 떠나 버렸던 것이다.

 

 

 

 

 

 

바흐는 할 수 없이 혼자 연주하게 됐으며,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연주에 탄복하고 말았다.

 

 

 

 

 

 

국왕은 금화 100루이도르를 바흐에게 하사하려 했으나 바흐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바흐의 마지막 여행은 1747년 장남 빌헬름 프리데만과 함께 한 포츠담 방문이었다.

 

 

 

 

 

 

포츠담에는 차남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가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대왕을 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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