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소홀히 한 결과]

조선 역사상 가장 긴 10년 동안이나 우의정에 이르렀던 정홍순에 얽힌 예화입니다. 그는 비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는 갈모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기 위해서 늘 두 개씩 가지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당시 왕이었던 영조의 행차를 구경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데 마침 비가 내렸습니다. 그가 급히 갈모를 쓰고 옆을 보니 젊은 선비가 갈모가 없어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정홍순은 젊은 선비에게 갈모를 하나 빌려주면서 가까운 골목 어귀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이윽고 서로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 정홍순이 이를 돌려받으려 하자 젊은 선비가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이니 갈모를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내일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는 간절히 부탁하는 젊은 선비의 말에 자신의 집을 알려주면서 갈모를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결국 갈모를 돌려받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고 정홍순은 20여 년이 지나 호조판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부임한 호조좌랑이 인사차 찾아왔는데 예전에 갈모를 빌렸던 젊은 선비였습니다. 정홍순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한낱 갈모를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생각을 하겠지만 작은 약속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백성과의 약속인 나라의 살림을 공정히 처리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들은 호조좌랑은 결국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약속의 무게와 상관없이 이를 지키려면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은 신뢰를 주고받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신뢰를 하는데 있어서 경중이 없는 것처럼 약속에도 작은 약속이나 큰 약속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한 번 약속한 일은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지켜야 합니다. 신용이나 체면도 중요하지만 약속을 어기면 서로의 믿음이 약해지기에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