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질’ 한번 해볼까요?】
요즘 세상에서 부쩍 회자되고 있는 단어 중에 ‘갑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질’이란 ‘도적질’ ‘구역질’ 등의 단어에서 보는 것처럼 반복되는 행태를 표현하는 말로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갑질’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더라도 횡포에 가깝도록 갑이라는 계층의 티를 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을 구별하는데 있어서 가진 자들에 대해 더욱 비판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에서 볼 때 ‘갑질’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해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과 ‘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면 단순한 서열을 나타내는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갑’을 딱딱한 씨에 비유한다면 을은 그 씨가 땅에 뿌려졌을 때 거기서 나오는 싹과 같은 것입니다. 부드럽게 획을 그은 한자어 ‘을(乙)’의 생긴 모양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실감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서 ‘갑’과 ‘을’은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보완을 해주는 관계이며 서로를 붙들어 주는 상생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갑’과 ‘을’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충족시키고 세워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알량한 힘을 지나치게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을’의 인생을 살려는 사람보다는 ‘갑’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을’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세우고 과시하기보다는 그들을 받혀주고 도와주는 위치에 있는 것도 보람된 일이 됩니다. 스스로 세움을 받기보다는 다른 누군가를 세워주는 사람에게 은혜가 더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갑’의 인생을 살아가기보다는 이웃을 섬기며 그들을 위해서 베풀 줄 아는 ‘을질’(?)의 인생이 참으로 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