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 고종황제 외교권박탈 을사조약 이후, 일제의 행패가 노골적으로 심해지자 1907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담에 이준을 보냈다. 지금도 가기 어려운 그 머나먼 길 러시아 기차 편으로 죽을 고생하며 ‘만국평회회의’ 장소까지 갔으나 대한제국의 이준은 문전박대 당하였다. 회의 참석이 좌절되자 분통을 터뜨리다 7월 14일(혹은 15일) 네덜란드 헤이그 현지에서 4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은 뺨에 난 종기(단독)로 인한 지병 악화설이 일반적이나, 분사(憤死) 설이 존재하며, 1963년 서울 수유동으로 유해가 봉환되었다. ‘외교권박탈’이면 만국회의에 침석 할수없다는 것을 알고도 항제 고종이 열사를 헤이그로 보냈다. 자신의 매국행각을 숨긴채-

천하에 몹쓸 매국노로 알려진 학부대신 이완용은 당시 아주 드물게 영어에 능통하여 1889년 경, 주미 공사관 참찬관등으로 부임하여 약 2~3년간 미국에 머물며 서구의 문물과 교육제도를 직접 목격하였다.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경험을바탕으로 근대식 국민교육제도 도입을 주도하였다. (국민학교) 학부대신 이완용은 당시 청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문 정초식에서 독립협회 위원장 이완용은 대중 앞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그 연설 내용이 독립신문에 기록되어 있다.(1896년 11월 24일자) “독립을 하면 나라가 미국과 같이 세계에 부강한 나라가 될 터이요. 만일 조선 인민이 합심을 못 하여 서로 싸우고 서로 해 하려고 할 지경이면 구라파(유럽)에 있는 펄낸(폴란드)이란 나라 모양으로 모두 찢겨 남의 종이 될 터이라. 세계 사기(세계사)에 두 본보기가 있으니 조선 사람은 둘 중에 하나를 뽑아 미국 같이 독립이 되어 세계에 제일 부강한 나라가 되든지 펄낸 같이 망하든지 좌우 간에 사람 하기에 있는지라 조선 사람들은 미국 같이 되기를 바라노라.” 진짜 매국노는 고종황제 자신임에도 임에 이완용등 대신들에게 그 무겁고 무서운 매국죄 뒤집어 씌웠다.
학부대신 이완용은 ‘청국의 은혜에 감사한다’(동방예의지국) 뜻으로 청국 사신 맞이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이완용은 그 자체로 앞날을 내다보는 ‘선구자적인 안목이 있었다는 것’이리라- 그러한 충신을 1세기가 넘어가도록 매국노 이완용이라며 저주하여왔고 그의 후손들도 시달려 왔음이다. 이 얼마나 분통터지게 억울한 일인가-
수번 언급하였다만, 애국, 충성지향 운동은 ‘주권회복’에 있어야했다.
그러나 주권회복에 오직 한분 줄반장 제외하고는 모두들 감쪽같이 속은듯 주권망각하며 오랬동안 국제사회 상대로 광고질 ‘우리땅-일본해/동해’ ‘3.1유열사 선포’ 와 같은 참으로 개탄할 수밖에 없는 운동들을 하면서 ‘주권바다 줄반장’ 인격은 오랫동안 마구잡이로 허물어왔다.
이러한 사실들-
'국제사회가 모두 다 알고있다'는 것이며,
또한 일측의 ‘다케시마 일본땅’ 역시 알게모르게 '국제외교가에서 모두 다 알고있다' 는것이다.
국제외교권 다팔아 먹고 난후, 을사늑약이 그 무슨소용인가?
무고한 박근혜 지위 박탈 역적 윤석열! 그자 중심 왜곡역사 무리들의 윤어게인!
돈 많은 S코리아 '독도우리땅- 일본해/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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