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70회] 느닷없이 국가비상사태령 선포

2019.05.19


박정희는 1971년 12월 6일 느닷없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하고, 일체의 사회불안을 용납하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는 국민의 자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 한다는 등 6개항의 특별조치를 발표했다.


대학가의 위수령 발동과 데모 주동학생의 가혹한 처벌로 이미 학원사태가 수그러들었고,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정부의 강경책으로 크게 위축되고 있던 시점에서 나온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그야말로 ‘느닷없는’ 횡포였다. 


박정희는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와 국가안보회의의 공동제안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면서 “최근 중공(중국)의 유엔가입을 비롯한 국제정세의 급변과 이의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및 북괴의 남침준비에 광분하고 있는 양상을 예의주시, 검토해 본 결과 현재 대한민국은 안전보장상 중대한 차원의 시점에 처해 있는 것으로 단정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밝힌 6개항의 특별조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정부의 시책은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조속히 만전의 안보태세를 확립한다. ② 안보상 취약점이 될 일체의 사회불안을 용납지 않으며, 또 불안요소를 배제한다. ③ 언론은 무책임한 안보논의를 삼가야 한다. ④ 모든 국민은 안보위주의 새 가치관을 확립하여야 한다. ⑥ 최악의 경우 우리가 가져야 할 자유의 일부도 유보해야 한다. 


중국의 유엔가입은 동북아의 평화를 가져올지언정 한국이 위협받을 소재는 아니었다. 엉뚱한 핑계를 댄 것이었다. 


박정희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1971년 12월 6일은, 쿠데타로 집권한 지 10년 반이고,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힘겹게나마 김대중을 누르고 3선을 한지 6개월 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3년 이상 남은 시점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이를 합리화하고자 공화당의 구태희 의원 외 110명의 소속의원 이름으로 “국가안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사회의 안녕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명분으로 국회에 국가보위법률안을 제안했다. 



공화당이 12월 27일 변칙처리한 ‘국가보위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으며 ② 경제규제를 명령하고 국가동원령을 선포하며 ③ 옥외집회나 시위를 규제하고 ④ 언론ㆍ출판에 대한 특별조치를 취하며 ⑤ 특정한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며 ⑥ 군사상 목적을 위해 세출예산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보위법은 이처럼 자유민주체제를 유지하는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강권체제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욱이 중국이 유엔에 가입한 것을 국가위기로 위장하는 등 안보상의 논리비약을 한 것을 비롯하여 시위ㆍ집회를 규제하고, 노동3권도 제약을 받게 하였으며, 특히 언론ㆍ출판에까지 특별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그야말로 군정체제로의 희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마져도 먼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후적인 입법조치였다.


4ㆍ27 대통령선거 때부터 공명선거를 요구하며 박정희 정권 비판에 앞장서 온 대학생들은 교련교육반대라는 새로운 이슈를 내걸고, 5ㆍ25총선거를 전후하여 더욱 강력하게 부정부패 척결과 사회개혁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한일굴욕회담 반대투쟁이 절정을 이루었던 6ㆍ3사태 이후 가장 치열한 시위를 벌였다.


강력한 야당의 등장과 각종 사태, 여기에다 집권당의 항명파동까지 겹치고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박정희는 정권의 안위를 걱정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서울에 위수령 발동에 이어 초헌법적인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초헌법상의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특별조치법은 유신으로 가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였다. 신민당은 1972년 6월 5일부터 4일 동안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한 후 “비상사태를 철회하라” “국가보위법은 무효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국회의사당에서 중앙청 정문까지 가두데모를 벌였다. 


시위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하여 14명의 의원이 연행되기도 했다. 특히 김홍일 대표위원은 국회에서 4일간 단식을 하면서 보위법의 철회를 촉구했다.


국가보위법의 국회 날치기 처리와 비상사태 선포는 유신으로 하는 전단계 조처로서, 유신체제 변혁의 음모는 예정된 수순대로 진행되었다. 규모가 큰 소란(반란)이나 재해, 적의 공격, 민간 폭동, 지진, 화재 따위의 긴급을 요하는 사태를 국어사전은 ‘비상사태’ 라고 풀이한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심각한 자연ㆍ재난이 아니면 함부로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경찰력만으로도 어지간한 시위나 소요, 재난을 진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계엄령, 휴교령, 위수령에 이어 국가비상사태령까지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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