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찬사를 받고 있는 이곳에서
늦은 밤까지 야경을 바라보며
맥주와 저녁을 먹어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배를 타고
세체니 다리를 중심으로 한바끼 돌아보는 것이
가장 보기 좋은 구경이었다,
멎진 야경을 지닌 이밤에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 나엔겐 최고의 여행의 즐거움이겠지만
삼각대도 없이 잔잔히 흔들리고 있는 배 안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내 방식대로
보기 좋은 사진이 나오길 바라며
그래도 다른 곳보다 정성을 다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아래의 실린 사진은 배를 타고 촬영한 것인데
카메라에 찍힌 순서대로 올린것임)
아마 한국 단체 여행으로 이곳을 구경했다면
틀림없이 옵션으로 50불 이상은
가이드에게 주었을 것이 분명했지만
난 7불을 줬고
도중에 음료수도 한 병 서비스로 받았다,
이 배안에는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아래층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개인으로 오건 페키지로 왔건 같은 배를 탈것 같다,,
배낭을 멘 한국의 젊은이들도
여기저기 많이들 들어와 있다,
일반인들은 거의 다 2층으로 올라갔다,
귀에 있는 한국말이 많이도 들렸다,
세체니 다리를 중심으로
가장 환호성을 받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지나
또 다른 다리 쪽 끝까지 같다가 돌아오는데
약 1시간 정도 걸린 거 같다,
이 배는 오늘 마지막 배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들 타고 있다,
하지만 군데군데 자리는 많이 있었다,
나는 제일 늦게 이 배에 올라탔는데
비록 창가 쪽은 아니지만 여유 있게 살살 불어오는
이층의 어느 자리에도
세계인들이 환호하며
최고의 찬사를 주는 이곳의 멎진 광경을
아주 잘 볼수 있었다,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많은 사람이 갑자기
국회의사당 쪽으로 몰려들었는데
당연히 나도 그쪽으로 가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처음에 왜 이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까, 몰랐는데
국회의사당의 화려하고
독특한 불빛과 분위기를 느끼는 순간
나도 뒤질세라 틈새로 기어들었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배 안에서 음료수는 무료이지만
맥주와 와인은 돈을 내야한다,
의자 앞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와인과 맥주를 마시면서 여유있게 구경을 할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것을
이곳 야경을 보는데만 집중을 했다,
화려하고 멋진 부다페스트의 밤은
이곳에서부터 그 유명 새를 타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에는 이 유명한 세체니 다리가 있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 도나우 강에 새워진
헝가리 최초의 다리이며 1849년에 개통되었다,
다리를 만들 때 가장 큰 후원자인
세체니 이슈트반의 이름을 따서 세체니 라고 하는
다리이름이 생겼으며
영국의 설계기사 클라크와 건축가 애덤을 초빙해 건설했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와 페스트라는
이름의 도시를 동과 서로 이여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리다,
국회의사당을 사진으로 찍고 있는데
인상이 남는 장면은
지붕 위쪽에 맴돌고 있던 수많은 새들의 모습이었다,
당연히 그 새들을 향해 수많은 셔터를 눌렀는데
전부 흐리게 나왔다,
사진을 쫗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배의 창가 쪽에 카메라를 걸쳐놓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이 새떼들과
국회의의사당의 모습을 잡았을 거라 본다,
집에 돌아가면 사진 공부를 해봐야겟다,
세체니 다리 아래쪽을 통과한 배는
국회의사당 쪽을 향했고
잠시지만 국회의사당 쪽에서 배는 잠깐 멈춰주었다,
특히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의 함성이 들렸고 나 역시 그랬다,
이 시간 배를 타고
이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배 뒤쪽으로 많은 배가 줄줄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같은 코스로 따라오고 있었다,
배 안에는 영어와 중국어 독일어 등을 섞어
약간의 설명이 있었는데
배 종류 중에
오로지 춤과 파티를 위한 배가 있고
부페 같은 식당을 운영하는 배가 있으며
호텔처럼 이곳 물 위의 배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배도 있다고 한다,
세체니 다리….
이 다리를 배를 타고 아래쪽으로도 지나갔지만
걸어서 이 다리를 지나가기도
여러 번을 했다,
이 다리는 걷다 보면
1800년도의 기술로 이런 다리를 만들었다는 것에
당시의 국력을 볼 수가 있지만
이 다리를 만들 때
영원히 대대손손 남겨줄 수 있는 예술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더욱 찬사를 받는다,
아래 파란색 내용은 ㈜살림출판사가 제공한 내용입니다,
부다와 페스트의 다리 건설은 19세기 가장 위대한 헝가리인 중 하나였던
이스트반 세체니(Istvan Szechenyi, 1791~1860)의 주도로 시작된다.
세체니 집안은 헝가리의 귀족 계급 중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명문가 중 명문가로,
부와 명성, 탁월한 문화감각까지 함께 가졌던 집안이다.
그의 아버지 페렌츠(Ferenc)는 자신의 소장 유물과 서적을
국가에 기부해 헝가리 국립박물관과 세체니국립도서관의 실질적인 설립자가 되었다.
어머니 율리아 페슈테티치(Julia Festetics)가
일생동안 수집해 기부했던 기암괴석 역시 헝가리자연사박물관의 모태가 된다.
그리고 아들인 이스트반 세체니는 헝가리 학문의 전당인
헝가리학술원(MTA)의 설립자이자
진보적 경제관을 가졌던 민족주의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가 부다와 페스트 다리 건설에 나선 계기는 정작 따로 있다.
1820년 자신의 영지를 방문했다가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장례식 참석차 급히 돌아온 세체니는
다뉴브를 건너지 못했다.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배편이 기상 악화로 무려 8일간이나 두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격분한 세체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리를 놓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그는 명문가의 자손답게 자신의 1년 수입을 먼저 내놓고
다리 건설을 추진했다.
이는 곧 국민운동으로 번졌고 다리 건설을 위해 국채가 발행되는 계기도 되었다.
그는 당시 영국에서 다리 설계로 유럽에서 명성이 드높았던
윌리엄 T. 클라크(William Tierney Clark, 1783~1852)에게 설계를 위촉했다.
현수교의 개척자였던 클라크는
런던 템즈강의 첫 번째 현수교인 해머스미스(Hammersmith)교(1827년 완공)를 비롯해
멀로(Marlow)교(1932년 완공) 등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래서 세체니 히드는 런던 해머스미스의 다리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손꼽힌다.
세체니는 또 스코틀랜드 출신 애덤 클라크(Adam Clark, 1811~1866)를
헝가리로 초빙했다(설계자와 현장 감독 모두 성(姓)이 클라크지만
두 사람은 사실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애덤 클라크는 공사기간 내내
다리 완공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부다 왕궁이 있는 바르 헤지(Var-hegy) 아래를 뚫는 터널까지 설계했다.
그래서 헝가리인들은 부다 쪽 다리 입구의 광장을
'애덤 클라크 광장'이라 명명하여 지금까지 고마움을 나타내고 있다.
란치히드는 그런 연유로 헝가리?영국 친선의 상징이 되었다.
헝가리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한
2004년 5월 1일 아담 클라크 재단(총재는 니젤 토르프(Nigel Thorp) 전 헝가리주재 영국대사)이
출범하여 1천만 포린트를 모아
란치히드 건설의 주역 세체니와 아담 클라크를 기념하는 동상을 만들기로 하고,
현대조각가 임레 바르가(Imre Varga)에게 작품을 위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