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콜롬비아의 독립기념 퍼레이드

2018.12.29

축구의 열기는 모든 남미 국가들의 공통된 열정이었다,


이번 여행기간 중에 남미 골든 컵 축구 대회가 있었는데 

코스타리카를 비롯 대부분 남미의 나라가 참여했다,


코스타리카의 경기가 있었을 때는 우연인지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 그 시합을 구경했고
콜롬비아에 있었을 때는 콜롬비아에서 

그 시합을 구경 하게 된다,


그들의 열광과 실망과 희망을 함께했다,


 그들의  축구에 대한 꿈과 애착을 

소중하게 지켜봤다,


길거리 식당을 비롯해

 택시 운전자,길거리 의 모든 상인 사람들도

 온통 축구의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국가가 패하고 탈락하자

열기가 식어 가는 것도 역시

 남미 국가답게 시끄럽게 흥분하며  씁씁하게 식어갔다,
자기 스스로들 자학 하는 것도 느낀다,,

 우리나라는 늘 그렇지 뭐,, 탄식도 많이 들리곤 했다,

언제였는지...자살골을 넣었던 선수가 총에 맞아 

죽은 경우도 있엇던 곳이 이곳 콜롬비아였다


 콜롬비아에 들렀을 때는

  7월20일,, 그날이 독립기념일이었다 

그리고 보고타 볼리바르 광장에서 열린 퍼레이드를

 보게 되고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독립 사는 이렇다,

1544년도에 스페인들이 들어와 식민지를 건설 하며

 많은 금 ,은 들이 스페인으로 몰려들어 간다,,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국력이 갑자기 쇠퇴 해진다,
그 틈을 이용해 남미에서도 독립 전쟁이 일어나고

 대부분의 남미 국가가 독립을 선포한다,
콜롬비아는 1821년 독립을 하는데

 그때 나타난 유명한 장군이 시몬 몰리바르 장군이다.


2013년엔 203번째 독립기념일이었고 나는 우연히

 그곳 기념식 때 있는 퍼레이드를 본다,

약 5000명의 군인들이 페레이드에 참여했다고 한다,



독립기념일 군사 퍼레이드,, 203번째의 독립 기념일 이였다,

독립된 나라 명칭은 “대콜롬비아공화국” (Republic of Greater Colombia) 이라고 명명했다. 


독립된 공화국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등 4개 지역들이 

연방제로 구성된 신생 공화국이었다.
그 크기는 참으로 크며 인구도 엄청난 

대국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본다, 


많은 콜롬비안 들은 그때를 예기하면서

 흥분을 하고 울분을 토할 때가 많다,
역사 예기를 하면 모든 콜롬비안들은 그들만의 특이한 발음으로 

손을 흔들면서 당시를 예기하곤 했다,


아무튼 남미에는 대 콜롬비아라는 하는 나라가 탄생했는데

 그 중심에는 역시 지금의 콜롬비아가 있다,


지금도 남미 여러 나라는 볼리바르 광장이 많다,

그리고 같은 날,에 독립기념식을 가지고 있는데..
독립 영웅인 볼리바르의 광장에서

 거행 된다고 한다,


10년 후에 베네수엘라, 에콰돌은 연방제에서

 떨어져 나가 지금의 국가 형태를 가졌고 잠깐이지만
콜롬비아와 적대시 한 시간도 가지면서 

나름대로의 국가를 이룩 해 나간다,



콜롬비아는 독립쟁취 후 엘리트 중심의 중앙집권적

 보수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연방주의적 성향의 진보주의 세력 간에 치열한 투쟁이 계속됐다. 


무려 50여 차례의 폭동과 여덟 번의 내전을 겪는 동안 

신생 콜롬비아 공화국에서

 10만여 명의 민중들이 비참하게 희생되었다


그 틈 속에 파고든 것이 콜롬비아 반군들이다
콜롬비아는 이런 크고 작은 정치의 

혼란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에메랄드를 구경하기  위해 간 보고타 


시내에서 우연히 기념식을 보게 된다
이 사진은 에메랄드 가게 윗층에서 내려다본 사진
에메랄드를 사기 위해 외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길거리 상인.


 





1900년도에 들어선 콜롬비아는 예전의 그 어떤 나라보다

 더 큰 미국과의 파나마 사건에 빨려 들어간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기 위하여 콜롬비아에게

 “운하건설권” 을 요구했다.
약세의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의 강요에 굴복하여

 “파나마운하건설권” 을 무조건 승인해 주었다.
하지만 “콜롬비아의회” 는 정부가 승인한 것을 거부함으로

 인하여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처하게 되었다.


미국은 파나마를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여 떨어져 

나오도록 공작을 했다.


 미국은 제 마음대로 파나마를
1903년에 독립을 시키고 말았다.


 미국에 매수된 파나마는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아 콜롬비아로부터

 독립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1914년에 콜롬비아는 할 수 없이 파나마를

 독립국가로 공식적으로 승인했으며, 

또한 미국에게는 “파나마운하건설권” 을 공식으로 승인 해 주었다.

지금은 안정적이며 미래를 논할 수 있는 분위기까지 온 콜롬비아지만

 그들의 역사 또한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콜롬비아는 남미의

 중심일 수 밖에 없음을 알았다,


은근히 콜롬비안들은 대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인을 존중해 준 것도 그렇고
자기희생을 통해 남을 살릴 수 있다는

 가부장적인 사상도 눈에 뛰게 인상에 남는다,
열심히 일을 해야만 잘 살수 있다는

 미래 지향적인 사상들이 느껴졌던 

콜롬비아의 여행이었다,

볼리바르 광장

 

 

독립기념일을 맞이한 콜롬비아의 보고타는 온통 군사 

무기로 덮혀 있었고 많이 어수선 했다


 





콜롬비아 대통령 궁 앞에서

 

 

 









근처에 있었던 보떼로 박물관,,이해 못하는 이상한 책들의 전시관,.,.그냥 나왔다,


 

거리의 모습,,


 


근처에 국립 박물관이 있었다이곳도 물어물어 걸어서 갔는데..

퍼레이드가 펼쳐진곳에서 약 30분은 걸었던거 같다,


 

박물관 내부 모습


 









택시를 어렵게 잡았다,차안에서 사진을 찍어 봤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내가 약 일주일 묶었던 호텔방 모습,,


콜롬비아의 보고타에서의

 5일 동안은 낮에는 박물관을 구경 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잡아 놓고 여행을 했다,

밤에는 호텔 근처의 Zonz Rosa 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고

 술과 저녁을 먹었다,,


보고타의 호텔이나 전문 관광 가이드가 추천 해 주는 여행 코스는

국립 박물관을 비롯해 도서관 등이였다,

별로 짜릿한 보고타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이번 여행은 

느낌과 감동을 내 개인의 취향대로 만들어 가는 여행이다

사실 여행을 하다 보니까, 앞으로 여행을 할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남미의 배낭여행 이야기가  있다


남미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예를 들어 택시를 탄다든가 길을 물어본다든가,,

문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것이 가장 힘든 부분일 수 있다,,

남미의 대부분 사람들은 스페니쉬를 하는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고 영어를 가지고

 남미를 여행을 하려 하다,

남미의 대부분 사람들은 영어를 하지 못해 여행객들과

 많은 오해와 다틈이 발생한다,

이 부분은 배낭여행을 할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줄 수가 있는 부분이며


 실제로 겪은 나의 배낭여행에서 도 중요함을 느꼈다,


이글을 보는 배낭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남미의 여행은

 꼭 기본 스페니쉬를 배워서 여행을 할 것을 권하고 싶다


나는 83년도에부터 91년까지 남미 파라과이에서 살았고

 현재는 미국에서 살고 있기에 스페니쉬와 영어가 가능 하다,,

그러기에 자신감 있게 남미를 돌아 다닐 수 있었지만 

스페니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겪어야 하는 

많은 문제들은 남미 특유의 기질과 

외국인에 대한 반감 등으로 해결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주변에 교민이 있어 문제에 도움을 받을 수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배낭여행이란 많은 오지를 구경하려고 하는 

기분 때문에 자칫 용기 하나와 

기분만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가 있다,


외국인이라 해서 존중을 하는 그들이 아니며 

많은 민간인들 속에 총기류가 거래되는

 상황이라 더욱 조심해야 한다,

어떤 곳에서는 전혀 동양인을 

보지 못하고 일주일을 돌아 다닌 적도 있다,,

내가 외국인이라 버스를 타면서부터 

군인 같은 사람들의 감시의 눈을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여권을 빼앗겨 어렵게 다시 찾은 적도 있다,


한국처럼 민주국가 형성이 덜 되어 있는 상황의 

남미를 이해를 해야 한다고 본다,

길거리의 앳된 얼굴의 군인들은 

긴 총을 어깨에 매고 다니며 많은 위협감을 주기도 한다,

남미인들은 당연히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가 되어 버린 군인들의 행보는 나 같은 

외국인과 배낭여행을 하러 많은 곳을 오가야 하고 많은

 오지까지 탐험하려 하는 

나의 성향에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남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동양 사람은 

이미 외국인으로서 대접을 해주기를 거부한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치노,, 치노..라는동양인을 

무시 하는듯한 언행을 자주 듣는다,


콜롬비아의 메데진을 여행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한 외국인의 대접을 받은것 같다,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 ,

그리고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서의 여행중에 많은 

그 나라 사람들을만나 같이 놀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싸움도 하고,

호텔에서 쫒겨 나기도 하면서

 한 이번 여행에서 만약 스페니쉬를 못했다면 

엄청난 불이익과 고통,고생이 있었을거 같다,


특히 마지막 여행지인

 베네수엘라에서의 사건들은

 더욱 남미를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하는 여행지임을 확인 시켜 줬다,,


이젠 베네수엘라로 넘어 가보자 한다,




좋아요
태그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