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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철종과 사기꾼 염종수 의 벼락 출세 와 몰락

2020.04.11



             철종과 사기꾼 염종수 의 벼락 출세 와 몰락 


 조선 후기에 한국에서 벼락 출세한 대표적인 이는 강화도 촌구석 총각에서 일약 조선의 왕이된 이원범(철종)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이원범의 아버지는 전계군 이다. 이 전계군 의 아버지는 은언군 이다. 은언군의 아버지는 뒤주속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다. 따라서 이원범의 할아버지는 정조 임금과 형제간 이다. 이원범의 아버지 전계군 에게는 세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아들은 역모를 꾸몄다고 하여 사약을 받았고 둘째 아들은 병으로 죽고 만다. 그래서 셋째인 이원범 만이 살아 남았다. 아들의 역모에 휘말려 몰락한 전계군 일가는 강화도 촌구석 으로 밀려나 겨우 목숨만 부지 한채 왕족 이지만 서민들 틈속에서 평민 처럼 살아갔고 이원범은 어려서 고아가 되어 외숙부 에게 잠시 위탁 된다. 강화도 촌구석 청년 이던 원범은 당시 세도가 였던 안동김씨 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일약 왕위에 떠밀려 오르게 된다. 말 그대로 ‘벼락 출세’ 를 하게된 것이다.

왕이된 이원범은 얼굴도 가물가물 하지만 어릴적 자신을 보호해 주었던 외숙부를 찾게된다. 이른바 <보은> 을 하고 싶어서 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10여년 동안 외숙부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 불현듯 외숙부 라는 염종수가 갑자기 나타난다. 철종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외숙부 염종수 는 궁궐에 들어온뒤 충청 병마 절도사가 되더니 이어서 황해병사 그리고 채1년도 안되어서 남쪽 해안을 맡아 총지휘 하는 전라 우도 수군 절도사가 된다. 초고속 승진 이였다. 염종수의 권세가 이렇게 하늘 높은줄 모르게 치솟고 있는 가운데 장안에는 이상한 풍문이 나돌고 있었다. 염종수는 철종의 외숙부가 아닌 가짜 이며 진짜 외숙부는 따로 있다는 소문 이였다. 철종 이원범 처럼 벼락 출세 하는 염종수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모함 이라 여기는 이들도 많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이였다. 강화유수 이명적도 이 소문을 들었으나 쓸데없는 소리라 치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화유수 이명적은 이에 대한 백성들의 민원이 계속되자 면밀히 이를 살펴 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토록 중요한 사안을 조정에서 그토록 허술하게 처리 했을리가 없다고 생각 했고 이는 당연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엄청난 사실이 밝혀 진다. 철종이 즉위 하자 마자 어릴적 자신을 키워 주었던 외숙부를 찾아서 보답 하고 싶어 했으나 10여년이 지나도록 외숙부가 나타나지 않자 이사실을 안 염종수는 진짜 외숙부는 없다고 판단 철종 외가의 비석에 새겨진 본관을 바꿔치기 한뒤 과감 하게도 당당하게 가짜 외숙부 행세를 한것이다. 외숙부가 키워줄 당시 원범이 너무 어려서 외숙부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인지 문헌에 명확히 기재된 바는 없으나 어찌 되었든 염종수는 가짜 외숙부 행세에 성공 한다. 이 사건이 강화유수 이명적에 의해 밝혀지자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 실록을 찾아 보니 사건의 진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고 기록 된다.

“철종 12년10월 26일 호군 염종수를 우선 가두다. 철종 12년 11월6일 염종수를 국청에 설치 하여 친국 하기로 한다. 철종 12년11월7일 염종수를 참수 하다.” 지금도 철종 외가의 비석 본관 부분에는 칼로 긁어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 사건이 밝혀진 뒤 염종수가 새긴 가짜 본관을 지우고 다시 본래 대로 복구하는 과정 에서 생긴 것이다. 이 가짜 외숙부 염종수는 3년동안 중요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위세를 떨치다가 결국 이처럼 사형을 당하고 만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왕과 조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신하 들이 갑자기 나타난 왕의 외숙부 신분을 제대로 확인 하지 않을 정도로 나랏 일을 허술 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증거 였기 때문이다. 조정이 이 모양 이다보니 지방 관리들의 부정 부패는 그칠줄 몰랐고 백성들은 이를 견디다 못해 집과 고향을 버리고 유랑길에 오르는 바야흐로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철종 12년 참다 못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 선다. 이것이 바로 동학농민 항쟁의 시발 점인 진주민란 이다. 

조선 24대 임금이 였던 헌종은 8살에 왕 위에 올라 불과 14년 만인 22살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게다가 헌종 에게는 왕통을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러자 조정 대신들 사이에는 그 뒤를 이을 왕족을 찾는게 급선무 였다. 당시 이 문제의 최고 결정 권자는 김조순의 딸 이자 순조의 부인 이였던 순원황후 였다. 그녀 로서는 족보상 자신의 아들 뻘인 이원범 이 왕위에 오르면 자신은 임금의 어머니가 되기에 스스로 권위를 강화 할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세력이 계속 국정을 좌지우지 할수 있기에 이원범을 강화도 촌구석 총각 에서 일약 일국의 왕으로 역사에 등장 시킨 것이다. 팔자를 확! 고쳤지만 이것은 이원범 개인 에게는 결국 화가 되고 만다. 왕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족보상 어머니 격인 순원 왕후가 수렴청정 했으며 3년뒤 부터 친정을 시작 했으나 안동 김씨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권위를 행사 하지도 못했고 행사할 실력도 없었다. 매일 매일을 술과 여자에 둘러 싸인채 생활 하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자식도 없이 요절 하고 만다. 그냥 강화 도령으로 살았다면 이렇게 명을 재촉 하지는 않았을 듯 하다. 이 또한 이이의 팔자 이니 어쩌랴!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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