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마른하늘에 날벼락 -자식의 동성애-

2020.07.24



            마른하늘에 날벼락 -자식의 동성애- 


 박 여사님은 평생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아들나이 일곱 살 때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던 젊은 남편이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홀몸으로 어린 아들에 의지해 모진 세월을 견디어 내셨다. 정밀 항공부품 전문기술자였던 남편은 미국유명 항공사에 기술자로 근무하며 매우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기에 미대를 졸업한 박 여사님은 취미로 그림을 그리며 가정주부로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불행은 박 여사님을 삶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말았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살림만 하던 여인이 혹하나 딸린 처지에 찾을 수 있는 호구지책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대졸업 후 직장생활 한 번 해보지 않고 중매로 남편과 결혼 후 미국에 건너와 아들하나 낳고 쭉 집안 살림만 해왔기에 영어도 제대로 못하고 직장 경험도 없으니 제대로 된 직장을 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식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나마 모아놓았던 돈도 다 떨어져가자 험한 일이라도 마다 할 수 없었다. 식당 웨이츄레스부터 주방용품 외판사원, 보험설계사 일등 가리지 않고 밤낮 노력했으나 몸도 약하고 숫기도 없어 어떤 일에도 제대로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모진 고생 속에서도 유일한 낙이였던 아들은 다행히도 머리가 총명하고 고생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잘 따르는 순종적인 아이여서 그나마 다행 이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세월은 유수와 같아 아들은 고교 졸업 후 미국동부 유명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 하였다. 박 여사님은 춤을 추듯 기뻐하였고 필자에게도 찾아와 자식자랑이 늘어졌었다. 아들이 대학 졸업 후 공무원으로 LA인근 관공서에 근무를 시작했을 때 박 여사님은 이제야 고생이 끝난 것 같다고 하며 필자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제 장가를 보내 손자 하나만 얻으면 남편을 저 세상에서 만나도 큰소리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며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박 여사님은 아주 어두운 표정으로 필자를 찾았다. 아들 때문에 몇날며칠을 울고 걱정을 했는지 얼굴이 반쪽 이였다. “법사님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 아이가 친구를 하나 데려와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겠다고 해서 형편이 어려운 친구인데 거쳐가 마땅치 않아 그런가보다 라고생각하고 허락을 했는데 아무래도 애들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어쩌면 좋습니까? 법사님.” 이러시면서 사진을 한 장 꺼내 놓으셨다. 사진을 보니 콧수염에 구렛나루까지 비슷하게 기르고 있는 잘생긴 젊은 청년들이 앞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이였다. 한국 애가 박 여사님의 아들이고 옆에 있는 백인남성이 친구인 듯했다. 아주 친한 베스트프렌드가 함께 찍은 사진 인듯한데 여사님의 표정은 울음일보 직전이다.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남자 아이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란다. 결혼까지 할 예정이란다. 


박 여사님이 기절초풍 한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이 모양이 됐으니 어쩌면 좋아요?”라고 하시는데 할 말이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 아이는 백수란다. 아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쇼핑만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게 일이란다. 도시설계 전문가로서 전문직 공무원인 아들과는 달리 이 아이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했고 어려서 마약만하고 말썽 부리다가 집에서 쫓겨난 놈(?)인지 년(?)이란다. 박 여사님은 나이 들었어도 운영 중인 작은 식당에 아침 일찍 나와 하루 종일 장사하고 밤늦게 몸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가 보면 이놈인지 년은 설거지도 하나 해놓지 않고 그릇만 산더미처럼 개수대에 쌓아놓고 집안 이곳저곳에 빈 맥주병만 잔뜩 늘어놓은 채라는 것이다. 속이 터져 놈인지 년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나가라고 해도 노여움도 안타고 생글거리며 “맘 와이 유 옐링 미!”라 한단다. 아들놈도 늘 이년인지 놈만 감싸고 도니 박 여사님은 이래저래 무식한 말로 꼭지가 돌아 미쳐버릴 지경 이라한다. 


박 여사님의 푸념을 듣고 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박 여사님이 미치거나 혈압 올라 쓰러질 것만 같아 보였다. 필자 왈 “예전에도 이런 문제로 저와 상담한 몇 분이 계십니다. 이분들 모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토로 하셨었지요! 여사님처럼 아들아이가 그런 경우도 있었고 딸래미가 그런 경우도 있었지요!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야단을 치고 펄쩍 뛰어도 성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킨 아이가 부모 때문에 정상으로 돌아온 예는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이해 못하는 부모와 의절하는 경우는 보았고 부모가 자식과 이것 때문에 의절한 분들은 있었습니다. 그 꼴로 살아서 못 보겠으니 차라리 자식이 죽은 셈 치고 다시는 안보겠다고 의절하신 거지요. 하지만 부모가 자식과 의절하는 그 심정은 피를 토하고 죽는 것 보다 더 큰 고통 이였을 겁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자식을 이해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자식이 못 쓸 정신병에 걸린 환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이 병들었다고 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이렇게 충고하면서 예전에 레즈비언 딸 때문에 울고불고 하셨던 한 분이 생각났다. 


명문대 교수로 있던 이분 딸은 노처녀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성과 사랑에 빠져 엄마를 놀라 기절하게 하였다. 이분도 필자와 이 문제로 여러 번 상담을 했었는데 결국 딸을 이기지 못하고 (이분도 청상과부로 딸 하나 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세 여자가 한 집에 거주하며 그 여성을 사위(?)로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았다. 자식이 몇 명이라도 된다면 자식하나 죽은 셈치고 만다 해도 하나뿐인 자식을 어쩌겠는가? 결국 박 여사님도 어쩔 수없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마음을 돌리고 나서 본격적인 며느리(?) 군기잡기에 들어가셨다. 아들도 자신을 이해해준 어머니가 고마워서 인지 이때부터는 누구편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박 여사님을 다시 만났을 때 “우리 그 애(?)가 이제는 많이 좋아졌어요. 더 이상 술도 안마시고 집안 청소도 늘 깨끗하게 해 놓아요. 그리고 얼마 전 부터는 내가 그렇게 말리는데도 엄마 힘들다고 가게에 와서 주방 일을 아주 열심히 돕는데 아주 손끝이 매워요!”라고 하시며 은근히 며느리(?) 자랑까지 하셨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혼란한 세상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은 동성결혼이 합헌이 되었고 교황까지도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아도 이로 인해 차별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판정까지 내린 판에... 모국인 우리나라도 이제는 성 소수자들이 떳떳이 세상에 나와 시위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쩌랴! 맘에 안 들어도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는 수밖에!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좋아요
태그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