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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백여우와 전우치

2020.07.27




                     백여우와 전우치  


  평생 책만 읽은 바보선비로 유명한 이덕무(1739~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보면 전우치(田禹治)라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 있다. 전우치는 담양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암자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는데 하루는 주지스님이 술을 한동아리 빚어 놓고(땡 중 이였나 보다) 우치에게 술을 잘 보아달라고 부탁한 뒤 마을로 내려갔다. 며칠 후 주지스님이 돌아와 술 항아리를 열어보니 술독이 텅 비어 있었다. 주지는 우치가 허락 없이 술을 다 처먹었다고 욕을 하였다. 우치는 억울했지만 달리 변명할 길도 없어 우선 자신의 부주의를 사과하고 다시 술을 한 항아리만 빚어주면 자신이 도둑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고 했다. 주지는 ‘이놈이 또 이런 술수로 술을 한동아리 더 뺏어 먹으려는 거 아니야?’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반신반의 하면서도 하는 꼴을 보려고 다시 술을 한동아리 빚어 넣었다. 우치는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술항아리를 지켜보고 있다가 잠시 졸면서 비몽사몽간에 보니 어떤 흰 구름과 같은 기운이 창틈으로 들어와 항아리 옆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데 술 냄새가 방안에 진동을 하는 것 이였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구름과 같은 흰 기운을 따라가 보니 앞산 바위굴로 가고 있었다. 앞산 바위굴에 당도해 보니 굴 어귀에 흰여우 한 마리가 잔뜩 취해 자빠져 자고 있었다. 우치는 ‘이놈이 바로 그 도둑놈이구나!’ 깨달고 새끼줄로 발과 입을 꽁꽁 묶어서 짊어지고 돌아와서 암자 들보에 매달에 놓고 주지에게 보여 주기위해 기다리며 의기양양하게 글을 읽고 있었다. 들보에 메달도록 술에 취해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던 여우가 부스스 잠에서 깨서는 놀랍게도 사람의 말로 “나를 놓아주면 그 은혜를 꼭 후하게 갚겠습니다!”라고 하며 애걸을 했다. 우치가 “니 까짓 게 무엇으로 은혜를 갚겠느냐 아무래도 너는 천 년 묵은 백여우 같으니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사람들에게 피해를 못주게 하는 방법 인듯하니 시원하게 죽여 버리겠다.”라고 하자 여우는 혼비백산하며 “내게 도술비결 책이 있는데 굴속 깊은 곳에 숨겨 놓았으니 그것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도망칠까봐 걱정이 되시면 나를 묶은 채 굴속에 짚어 넣으시고 제가 만일 굴속에서 나오지 않으면 새끼줄을 잡아당겨 저를 끌어내시면 되니, 그때 죽여도 늦을 것 없지 않습니까?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며 울면서 애걸을 하였다.


우치도 손해 볼게 없다는 생각에 그 말대로 하였더니 과연 여우가 책 한권을 가지고 나왔다. 그래서 약속대로 여우를 놓아주고 그 책을 펴보니 영계(靈界)를 설명한 것과 비결과 주문이 적혀 있었다. 우치는 크게 흥미를 느끼고 읽다가 따라 하기 쉬운 도술부터 주사(부적 쓸 때 쓰는 모래와 닭 피를 섞어 만든 붉은 물감)로 몇 개 골라서 점을 찍어 표시를 해 놓았다. 이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본집의 늙은 여종할멈이 머리를 풀고 통곡을 하며 찾아와 우치의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우치는 그 말을 듣고 놀라 보던 책을 그대로 방바닥에 버려둔 채 문밖으로 뛰쳐나가 보니 종 할멈은 간 곳이 없었다. 그제서야 아차! 하고 속은 것을 알고 방안에 뛰어 들어가 보니 주사로 점친 부분만 빼 놓고는 나머지 부분은 모조리 베어가 버린 후였다. 우치는 아쉽지만 남은 그것만으로 공부하여 후에 환술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그 도술은 주사로 표시해 놓은 수십 가지 중에서 골라 썼다는 이야기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외에도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도 전우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전우치는 본래 서울의 착한 선비로서 환술에 능하고 기예가 많으며 귀신을 잘 부렸다고 쓰여 있다. <어우야담(於宇野談)>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어느 날 우치가 친구 집에 놀러갔다. 친구인 선비 신광한(1484~1555)의 집에는 마침 선비 송인수(1487~1547)도 와 있었다. 신광한이 전우치가 방문하자 송인수에게 “자네 이 사람을 아는 가? 우사(羽士) 전군일세!”라고 소개하자. 신광한이 “매양! 이름을 책속의 사람처럼 들었지만 이렇게 만남이 늦은 게 한스럽소!”라 하였다. 신광한이 우치에게 “자네 이분을 위하여 한번 장난을 해볼 생각이 없는가?”라고 하자 우치는 “무슨 장난거리가 있어야지요!”라 답하고 묵묵히 있었다. 조금 있다가 주인집에서 물에만 점심밥을 내왔다. 우치는 밥을 먹다가 뜰을 향하여 입속의 밥을 ‘파!’ 하고 내뿜으니 밥알이 모두 흰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지금의 마술과 같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또 한 번은 여러 손님이 모인 집에 갔다가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우치를 시험하기 위해 천도(天桃:하늘복숭아)를 좀 맛보게 해달라고 하자 동자를 시켜 새끼줄을 하늘높이 던지게 하자 새끼줄이 점점 풀려 하늘 높이 까마득히 올라갔다. 우치는 동자에게 “늘어진 새끼줄을 타고 올라가면 그곳에 푸른 복숭아가 열려 있을 것이니 따서 내려 보내 거라.”라고 하였다. 말대로 동자가 하늘높이 줄을 타고 기어올랐고 잠시 후에 하늘에서 복숭아가 잎이 달린 채 떨어지기 시작했다. 좌중의 손님들이 맛을 보니 단물이 흠뻑 흐르고 이 세상에서 나는 복숭아의 맛이 아니었다 한다. 놀라운 일은 그 후 하늘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동자의 팔, 다리, 머리가 찢기 운채 떨어져 내렸다. 우치는 “천도를 지키는 자가 옥황상제에게 일러바쳐 동자를 죽인 겁니다.”라고 한 뒤 아무렇지 않게 떨어진 동자의 사지를 뚝뚝 가져다 맞추니 동자가 살아나 팔딱 뛰었다고 한다.


이대목도 상자에 사람을 놓고 여러 가닥으로 자르는 마술이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다. 훗날 우치는 황해도 신천에서 술수를 써서 민중을 현혹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옥에서 죽었다. 태수가 사람을 시켜 파묻게 했는데 후에 우치의 친척들이 이장하려 무덤을 파 관을 열어보니 관속이 텅 비어 있었다 한다. 지가 예수님도 아닌 것이... 참 사람 심란하게 하는 대목이다. <오산설림(吾山說林)>의 저자 차천로(車天輅)는 선천의 말씀이라 하며 전우치에 대해 증명하면서 부자 2대의 명예를 걸고 틀림없는 사실임을 후대에 증언한다 하였으니 전우치는 소설이나 영화, 상상 속에서만 나오는 인물이 아닌 실존인물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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