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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수양제 天災와 人災에 쓰러지다!

2020.12.10




                 수양제 天災와 人災에 쓰러지다!


 고구려 영양 왕 때 수 나라 양 제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113만 3천 8백 명의 훈련이 잘 된 정예 병으로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아버지 문제가 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정벌하려다 전멸 하다시피 패배한 이후 2번째의 고구려 정벌이었다. 전투 병력만도 무려113만이 넘었고, 군량과 물자 수송까지 맡은 후방 부대원까지 합치면 3 백 만 명이 넘는 대 규모 인원이 동원 되었다 이는 당시 고구려의 전체 남자 인구와 비슷한 숫자였다. 당시 이 정도의 인원은 현재의 인구 비율로 따져 환산하면 3천만 명이 넘는 규모라고 볼 수 있으니 역사상 전무후무 정벌군이라 할 수 있다. 전력상 고구려 군과의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대 병이요, 중국 전역을 수 나라로 통일 시키는 전투세대의 병사들이어서 전투 경험도 풍부한 군사들 이였다. 어떤 면으로 보아도 이제 고구려의 정벌은  ‘식은 죽 먹기’식이라 볼 수 있었다. 허나 수양제의 정벌은 天災(천재) 와 人災(인재)로 인해 완전 실패하게 된다.


첫 번째 닥친 시련은 天災(천재)였다. 양제가 추운 겨울에 출병한 이유는 요하가 녹기 전에 강을 건너기 위함이었다. 예전 같으면 3월에도 꽁꽁 얼어 있던 요하가 그 해 2월에 벌써 이미 녹아 흘러내렸다.요 하가 흘러 내릴 때면 이 강 주위는 온통 진창으로 변해서 수 나라 군사들은 늪지를 건너기 위해 힘을 다 소비해야 했고, 요하를 건너기 위해 浮橋 (부교: 물에 뜨는 다리)를 건설 해야만 했다.  양제는 부교를 급히 세 개 만들라고 공부상서 우문개에게 명령했다. 수 나라工部 (공부)는 천하 통일을 위해 북의 탁 군에서 남의 여항에 이르기 까지 수 만리에 달하는 운하를 건설한 풍부한 경험이 있었고 부교도 여러 번 만들어 보았기에 부교를 놓는 것은 어려울 것 없었다. 그런데 설계상, 계산상의 실수로 강 건너 쪽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너무 짧았다. 사람의 실수였다. 人災 (인재)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수 나라 군사는 찬 요하 물에 뛰어들어 요하를 건널 수 밖에 없었다. 


꽁꽁 얼어 붙을 수 밖에 없는 수 나라 군사들을 강 건너 편에서 기다리던 고구려 군사들은 그냥 보이는 대로 찍어 죽이기만 하면 되었다. 뒤에 아무리 백만 대군이 응원하고 있어도 부교를 건너 올 수 있는 인원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기에 건너 오는 족족 고구려 군에 의해 찍혀 죽었다. 고구려 군사들은 손이 모자라 베기를 포기 할 정도 였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 요하는 피 강물로 변했던 것이다.   대노한 수양제는 죽기 살기로 대군을 몰아 쳤다. 첫 관문에서부터 큰 손실을 입었으나 군사는 충분했다. 이 때 수양제는 큰 실수를 범한다.  “모든 군사들의 전진과 후퇴는 모두 짐에게 보고 해서 그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명을 내린 것이다. 이는 병법을 무시하는 조치였다. 수양제 입장에서는 이번 고구려 정벌이 수 나라의 흥망이 걸린 문제였기에 모든 문제를 직접 챙기려는 신중함에서 비롯된 명령 이지만 이는 병법의 기본을 무시한 중대한 치명적 실수였다. 무릇 전투란 살아 있는 생물과 같은 것이다.


수 없이 많은 요소에 의해 큰 변수가 작용한다. 따라서 전투에 있어서는 순간적인 판단과 기지가 절대 필요하고 장수에게는 전투에 대한 판단권이 있는 것이다.‘전쟁에 나간 장수는 상황에 따라 명령과 반대되는 판단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수의 권리인 것이다. 하지만 이 것이 무시되었다. 수 백 개의 군사 조직이 어떤 상황이 있을 때마다 황제에게 보고하고 그 지시를 기다렸다. 스스로 자신의 군대의 손 발을 묶어 버린 것과 같았다. 이런 약점을 고구려 군은 적절히 활용했다. 성을 지켜 내다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한계에 이르면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서 항복을 신청한다. 그러면 공격을 하던 군대는 즉시 공격을 멈추고 황제에게 달려가 이 항복조건을 보고하고 황명을 받아온다. 조건이 까다로우니 승낙이 될 리 없다. 고구려군도 이 점을 안다. 허나 황제에게 보고하러 가고 오고 하는 몇 일 동안 부서진 성채를 수리하고 군사를 쉬게 한 뒤 다시 전투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렀다. 수 나라 장수도 이 점을 안다. 허나 황제의 명인지라 바보짓인 줄 알면서도 일단 황제께 보고 드리고 지시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군사는 소실되어 갔고 결정타는 우리가 역사시간에 살수대첩이라고 배웠던 전투에서였다. 을지문덕의 전략에 넘어가 청천강을 건너다 수공을 받고 30만5천명이 물 귀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때 요동까지 살아서 도망친 군사는 2천7백 명에 불과 했다는 공식기록이 있다. 세계 전쟁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패였다. 아니 대패가 아니라 완전 몰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수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상상 할 수 없었던 전투 결과였다. 이렇듯 運 이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도 없이 많은 주변 요소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어떤 결과가 나온다. 이것을 예측하고 분석하여 미래에 대한 결과를 예견하는 것이 역학이다. 매우 복잡하고 난해 한 학문이지만 지상 최고의 학문임도 부정 할 수 없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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