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아빠의 눈물

2021.03.19



                         아빠의 눈물  

 

 이 선생은 60대 초반의 남성분으로 가끔 필자를 찾아와 상담을 하고 가시곤 하는 고객이시다. 이 선생은 원래 충청도 모 지방의 건축 관련 공무원이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이 어려워지자 행정직 9급 공무원(당시 직제는 5급)에 도전하여 공무원이 되었다. 부모님이 연로하셨고 독자인 관계로 군 면제를 받았기에 남보다 사회생활이 일찍 시작된 셈이다. 이 선생의 부친은 이북 분으로 전쟁 중 가족과 헤어져 혼자 남하하신 관계로 통일이 되면 부인과 자녀들이 있는 이북으로 돌아가려고 홀몸으로 지내다 50이 넘어 새 장가를 들어 이 선생을 낳았기에 이 선생이 대학 갈 나이가 될 무렵에는 아주 연로하시어 생활력을 잃은 상태였다. 따라서 가족의 생계는 오로지 이 선생의 월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 선생의 꿈은 공무원 생활을 조금하다가 돈이 모아지면 행정고시에 도전해 보는 것이었다. 허나 말단 공무원 박봉으로는 돈을 모으기는커녕 생계마저도 불안할 지경이었다. 이런 어려운 생활 속에 어느덧 나이가 차 결혼을 하게 된다. 부인은 중학교만 졸업하고 모 고등학교에서 사환으로 일하던 처녀였다. 결혼 후 딸, 아들 남매까지 생기자 가족의 생활은 더욱 더 어려워졌다. 이 선생은 비록 가난하지만 성격은 올바른 이여서 늘 청렴결백한 생활을 유지했기에 뇌물의 유혹에 흔들리는 일이 없는 모범 공무원이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딸아이가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겨 급히 수술을 해야 할 급박한 일이 생기면서부터였다. 


심부전증 이라는 의사의 진단에다 판막수술을 급히 하지 않으면 아이의 생명이 위급해 질 수도 있다는 말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은 한 푼도 없는데 거액의 수술비가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할 수 없이 공무원 조합에서 대출을 받고 농협에서 얼마 그리고 사채까지 끌어대서 겨우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어 딸아이는 생명을 건졌다. 허나 빚 감당이 문제였다. 죄여오는 이자 부담에 죽을 지경이었고 그 사이 승진을 했다고는 하나 월급은 여전히 박봉이어서 감당이 되질 않았다. 이때 건축 관계로 큰 유혹이 따랐다. 자기만 모른 척 허가를 내주면 업자는 수 억 원의 이득이 되고 자신에게도 몇 백 만원은 돈이 생기는 건이었다.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이다’라는 결심을 하고 허가를 내주었고 뇌물은 그의 손에 들어왔다. 


급한 대로 여기저기 이자를 막고 딸 아이 옷을 사주고 아들에게는 당시 유행하던 로봇 장난감을 사 주었다. 펄펄 뛰며 좋아하는 남매를 바라보며 아빠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자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점점 유혹에 빠져들었다. 동료들도 이런 이 선생의 변화에 대환영이었다. 그들 말대로 ‘건축과에 꼴통하나가 있어서 과전체가 제대로 안 돌아간다’ 였는데 이제는 서로 눈치 볼 것 없이 대놓고 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니 환영할 수밖에... 이런 비리에 빠져들면서 집안 형편은 확~ 피었다. 


부인은 자가용까지 굴리고 APT도 큰 평수를 장만했다. 부친과 모친 장례식에는 관련업자들이 한 부주만 해도 ‘억’ 소리가 날 정도였다. 지역공무원 상조회에도 가입했다. 매달 회비가 거액 이었는데 이 상조회는 비리 공무원으로 적발 되었을 때 거액을 써서라도 좋은 변호사를 사서 그를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빼내주고 그동안의 가족도 돌보아 주는 ‘비리 공무원들의 상조회’ 성격이었다. 회비가 거액 이어서 소위 ‘노른자위’ 직에 있는 공무원들이 주 회원이었다.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이런 좋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사이 아이들도 성인이 돼서 딸아이가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 지역 모 병원 원장 집 아들이 사윗감이었다. 그동안 이 선생네도 땅도 사두고 건물도 몇 채 사들여 알부자가 되어 있어서 병원 원장집이라고 해도 꿀릴 것이 없었다. 딸아이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사건이 터졌다. 갑자기 들어 닥친 검찰 공무원들에 의해 수갑이 채워져 연행 되었고, 비리에 연결 되었던 지역 경찰 공무원 몇 명도 함께 잡혀가자 그 지역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 선생은 구속되었고 딸은 파혼 당했다. 딸은 ‘아빠가 내 인생을 파멸 시켰다’ 고 원망하며 다시는 아빠 얼굴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의절했다. 아들은 ‘부패공무원 아들’ 로 소문이 나서 창피해서 고향에서 살 수 없다며 아비를 원망하면서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마누라는 이 선생이 복역 중일 때 면회 와서 이혼을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선생 명의로 있던 재산도 아이들에게 증여해 달라고 요구했다. 


너무도 큰 충격에 빠진 이 선생은 삶의 의욕을 잃고 모든 것에 동의해 주었다. 이 선생이 출소했을 때 교도소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 의욕 없이 지방을 떠돌다 LA에 있던 형이 불러서 다니러왔다가 그냥 머물게 되었다. 얼마 전 딸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친척을 통해 들었다. 결혼 하면서 애비에게 연락조차 안한 것이다. 요즈음 이 선생께서는 도인처럼 살고 계시다. 허망했던 지난 인생을 회상 하면서 세상과의 집착을 끊고 있다. 이 선생을 보면서 ‘자식에게 올 인 하는 것’ 도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자식 잘 되는 것’ 을 지상최대 과제로 알고 사는 부모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의 집착에 불과하다. 어떤 것이든 집착은 사람을 괴롭고 편협하게 만든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집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그냥 물 흘러가는 대로 자신의 일에 매진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착한 일하며 사는 것이 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닦는 ‘생활 속의 도인’이 되는 길이다. 한세상 사는 것이 또한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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