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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惡緣(악연

2021.04.07



                 惡緣(악연) 


 사람은 살아가면서 일평생 수없이 많은 이런저런 인연을 맺으며 살게 된다. 좋은 인연을 만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연출되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악연을 만나 아름답지 못하고 힘든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런 여러 인연 중에서 배우자와의 인연은 인생자체 즉 운명자체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강 여사님에게 그의 남편은 악연 중에서도 지독한 악연이라 할 수 있다. 플러튼에서 작은 샌드위치 샾을 운영하는 강 여사님이 미국에 오게 된 것은 20대 후반 재미교포인 남편을 만나면서다.


존경받는 청렴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던 부친과 현모양처격인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무남독녀 귀염둥이로 자란 강 여사님이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만 않았다면 타고난 팔자대로 유복하고 무난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강 여사님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단정한 외모와 우수한 대학성적을 바탕으로 국내 굴지의 삼성그룹에 입사하고 비서 부서에 배치될 때만 해도 그녀의 장래는 순탄하게만 보였다. 당시 교제하던 남성도 얼마 후면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법관이나 검사로 임용될 예정이었다. 아버지의 친구 아들이었던 관계로 어려서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고 부친들의 농담 겸 진담 겸 건네던 사돈이야기가 현실화 되어 연수원 수료를 마치고 임관되면 바로 결혼하기로 약정까지 되어있던 터였다. 


그때 돌연 남편이 등장한다. 대학동창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만난 강 여사님은 숨이 꽉 막힐 지경이었다 한다. 서로가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외모에 유머러스한 말솜씨, 세련된 매너 등이 오직 공부밖에 모르는 꽁생원 약혼자하고는 너무도 달랐다.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떠났고 미국 LA에서 중, 고교를 마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는 늘씬한 남편에 비해 약혼자는 우선 키도 ‘난쟁이 똥자루’ 같은데다 돼지마냥 뚱뚱한 체형이었고 도수 높은 검은 뿔테 안경에 말도 조금 더듬는 편이고 할 줄 아는 것은 공부 밖에 없고 무드라는게 손톱만치도 없어 영화구경이나 음악회 같은 곳은 한 번도 얼쩡거리지 않고, 오랜만에 만나도 큰 대형서점에서나 대학도서관 기껏해야 막걸리나 돼지국밥집 정도여서 만나서 하는 데이트가 고역이었지만 부모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만나왔는데 이런 젠틀맨을 보는 순간 확!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남편도 미모와 좋은 머리를 지닌 강 여사에게 강하게 끌려서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결국 집안의 다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은 부부가 되었다. 


당시 남편의 부모님은 LA에서 대형식당을 운영하며 아파트도 몇 개 소유한 재력가였고 학벌도 어디 내 놓아도 꿀리지 않고 인물 또한 좋으니 강 여사님 쪽이 꿀리면 꿀렸지 타박을 놓을 입장도 아니여서 강여사 아버님은 사돈이 될 뻔한 친구에게 백배 사죄하고 결국 축하까지 받아내서 다행히 두 분 사이도 틀어지지 않고 좋게 마무리 되었다한다. 결혼의 기쁨도 잠시, 변호사 자격까지 있던 남편은 어떻게 된 게 도대체 일할 생각을 안했다. 집안이 부유하니 굳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었지만 젊은 사람이 무위도식 하는게 이상해 보였는데 이상한 점은 시부모님들도 남편에게 일하기를 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결국 알고 보니 남편은 심각한 간질이 있었고 여기에다 지독한 마약중독자였다. 사기 결혼을 당한 것 같아 남편과 시집 식구들이 원수처럼 여겨졌지만 모든 것을 알았을 때는 아이까지 낳은 후였고 걱정은 오로지 아이에게 유전이 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남편이 하는 일이라고는 부모님에게 돈을 타내서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나가 한 달 정도 놀다오는 것과 밤 낮 가리지 않고 노름장에 가서 살며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방탕한 짓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이 생활이 계속되자 정신적으로 너무 괴로웠다. 결국 정신과 의사를 정기적으로 만나 약을 타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업친데덥친격으로 시부모님의 사업이 긴 불경기로 휘청휘청하더니 드디어 더 견뎌내지 못하고 파산해 버리니 매달 나오던 생활비도 딱 끊기자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기댈 수 있는 것은 엄마, 아빠뿐인지라 은퇴하신 늙은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는데 50년 성실한 교직생활로 겨우 모아놓은 재산을 야금야금 다 녹여버려 친정집마저 살길이 막연하게 되었고 남편인지 웬수인지는 이제는 여기저기 몸까지 망가져 한국을 오가며 이런 수술, 저런 수술까지 해 대는 바람에 여기저기 빚까지 잔뜩 지워놓고 말았다. 얼마 전 친정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한국에 다녀올 여비조차 없어 눈물로 호소해서 겨우 비행기 값 마련해서 겨우 다녀왔다고 하며 눈물을 뿌리는 강 여사를 보며 참으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굶어 죽을 수 없어 시작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멕시칸 1명과 함께 아침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하고 집에 오면 시체처럼 숨만 붙어 골골거리는 남편의 숨소리에 질식할 지경이라고 한다. “온 식구가 한꺼번에 깨끗하게 죽어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어찌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하소연하는 강 여사님을 보면서 惡緣 중 惡緣 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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