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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한 가족의 잔혹사

2021.04.06

  



                   한 가족의 잔혹사   


 10여 년 전 이야기다. 80대 초반의 할머니께서 필자를 찾은 일이 있다. 戊辰年(무진년 1928년)生이어서 80대 초반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건강해 보이시는 분이였는데 굵게 패인 주름과 마디마디 굵고 투박한 손이 이 할머니의 젊은 시절 고난을 이야기해 주는 듯 했다. 오셔서 하시는 첫 말씀이 “내가 언제쯤 죽을 수 있나요?” 라고 하신 뒤 깊은 한숨을 내쉬시는데 눈가가 짖물러 있어서 한참 좋지 않은 일로 속상해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필자가 이 분의 생년월일시를 물어 사주기둥을 세운 뒤 주역상 쾌를 짚어보니 둔지절의 쾌가 짚힌다. ‘가던 길에 범을 만나리니 갑자기 놀랄 일을 당하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망신수 있다’ 는 쾌상이여서 심히 불안해 보였고 ‘아랫사람의 우환으로 경천동지할 일이 있다’ 는 운의 흐름이 보여 더욱 그러했다. 필자가 조심스럽게 “아랫사람의 우환으로 크게 놀랄 일이 있는 운인데 혹시 댁에 그런 우환이 최근에 없었나요?” 라고 물은 즉 할머니 아무 말씀이 없이 깊은 한 숨 속에 눈가를 훔치신다. 


이분은 경기도 여주분이시다. 19세에 이웃 이천에 사는 남의집살이를 하는 서른 살이 된 노총각에게 시집을 갔다. 가난한 살림 이지만 다행히도 신랑이 무척이나 이뻐하고 위해 주어서 행복했고, 아들까지 태어나자 남편은 신부가 이뻐서 죽을 지경이었다 한다. 오죽하면 아들을 낳고나자 부인에게 넓죽 엎드려 절까지 했다고 한다. 너무너무 고마운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동네이장이 어떤 서류를 가져와서 여기에다가 싸인을 하면 예전에 동네에서 지주들과 싸움이 났을 때 동네 머슴 몇몇이 모여 작은 분탕질을 한 것을 아무 탈 없이 면천시켜 준다고 꼬득였다. 이런저런 특혜도 준다고 해서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보도연맹에 가입하는 서류였다. 


원래 보도연맹 이란 좌익사상을 가졌거나 좌익 활동을 했던 이가 사상전향을 해서 이제는 국가에 충성을 하겠다고 만든 조직이었는데 지역별로 인원수가 할당되어 있고, 관에서 인원수를 채우라는 독촉이 심해 영문도 모르고 여기에 가입한 이들도 많았다. 헌데 갑자기 전쟁이 터지자 경찰과 군인들이 들이닥쳐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모두 총살시켜 버렸다. 북한군에게 내응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 에서였다. 이때 남편은 아들하나 남기고 총살당했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 젊은 여성이 아무재산도 없이 아들 키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충이었는가는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고초를 겪으며 어렵게 어렵게 이를 악물고 아들하나를 키웠다. 


다행히 아들은 영특해서 공부를 잘했고 엄마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무난히 사범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문제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치고 난 후에 나타났다. 교사로 발령을 받을 수 없다는 문교부의 통보가 아들의 꿈을 좌절시켰다. 당시는 연좌제가 있던 시절이어서 아버지가 용공분자로 처형된 기록이 남아있어 용공분자의 직계자손은 공직에 임용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였다. 아들은 좌절했다. 하지만 평생 자신만 보고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두고 볼 수 없어 여기저기 진로를 바꿔 입사원서를 내보았으나 매번 신원조회에 걸려 채용되지 못했다.


 아들에게는 사범학교 시절부터 사귀던 동료 여학생이 있었는데 이 여학생이 좌절하는 아들을 많이 위로해 주었고, 이러다 보니 둘이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머니 입장에서야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아들을 안정시켜 주는 일이어서 나무랄 바 없었으나 딸 가진 상대방 부모님 입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연좌제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인생 실패자를 배우자로 맞이하겠다는 딸을 멀쩡한 정신을 지닌 어느 부모가 가만 두겠는가? 난리를 치르며 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둘의 관계를 인정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한참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을 때 남편의 군대 영장이 나왔고, 몇 번을 연기한 끝에 군에 가게 되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들이 월남에 자원해서 파병되었다. 아마도 ‘빨갱이 자식’이라는 딱지를 떼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파병되어 있을 때 며느리가 손자를 낳았고 불행히도 아들의 전사통지 서가 온 것은 손자의 백일 며칠 앞두고 서였다. 몇 번을 까무라치기를 반복 하였지만 어찌되었든 대를 이어야겠기에 손주를 며느리와 함께 키우는데 매달렸다고 한다. 정말 지긋지긋 하게도 한국이 싫었는데 청상과부로 살던 며느리도 같은 심정이었는지 마침 미국에 살던 친정 언니의 권유로 아이의 교육을 위해 도미하기로 하자 세 가족이 함께 미국 이민 길에 오른다. 


이때 손자 녀석 8살 때였다 한다. 두 청상과부가 오로지 아들이자 손자 하나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면서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였다. 남들에게 꿀리지 않게 하기위해 모든 면에서 정성을 다했으나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다가 무슨 생각이 들어서 인지 문득 군대에 가겠다고 나섰다. 며느리인 애 엄마는 아이가 나쁜 애들과 어울리며 자꾸 나쁜 쪽으로 빠지는 것 같아 속으로 ‘군대나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가 스스로 그리하겠다고 하니 대환영 이었다. 군대를 다녀오면 혜택도 많이 받을 수 있어 더욱 그랬다. 


하지만 할머니는 결사 반대였다. 죽어도 안 된다고 버텼다. “할미 죽이고 가던지 말던지 해!” 라고 극단적으로 나서자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손주 놈이 “나 늙었어(나도 어른이라는 뜻)나 안죽어” 라고 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지 고집대로 군대에 갔고 할머니의 불안한 예감대로 ‘전사통지서’를 받았다. 대가 끊긴 것이다. “아~이~고 무슨 죄가 이러콤 많아 내가 콱 되져 버리지 않는지 모르것씨유~! 죽어서 영감을 무신 낯짝으로 본데유~ 하나님 제발 나 좀 데려가 줘 유~!” 이 경우 오래 사는 것도 죄인 것 같다. 가슴이 아팠다. 세상에는 의외로 무척 불행한 이들도 많은 듯싶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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