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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경거망동하지도 좌절하지도 말자!

2021.04.23

               



               경거망동하지도 좌절하지도 말자! 


 세상은 돌고 돈다. 자전하는 지구가 쉴 새 없이 돌고 돌아 밤과 낮을 만들 듯이 공전하는 지구는 태양 주변을 돌고 돌아 춘하추동 사계절을 만들어 낸다. 밝았던 대낮이 어느덧 어둠이 내려 밤이 되듯 꽃피는 봄날이 어느덧 여름가을을 거쳐 눈 내리는 겨울로 바뀐다. ‘메뷔우스의 띠’처럼 양이 결국 음이 되고 음이 결국 양이 되어 결국은 陰(음), 陽(양)의 구별이 意味(의미)없어지기도 한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초일류 국가가 3류 국가로 전락하기도 하고 보잘 것 없던 3류 국가가 초일류 국가가 되기도 한다. 사람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3류 인생이 갑자기 1류 인생이 되기도 하고 1류 인생이 몰락하여 3류 인생이 되기도 한다. 필자가 평소 상담 시에 늘 하는 말이 “지금 승승장구 한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안 될 때를 대비하여야 하며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들고 모든 것이 꼬인다고 좌절하지도 말라.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는 신호이니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이다. 


몽골제국이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와 유럽제국까지 제패하여 세계에서 초유의 강대국이었던 시절 어느 누구도 원나라의 몰락을 예견하지 못했다. 1368년 드디어 명나라가 몽골제국을 북으로 내쫓고 중국 중원을 차지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이씨조선이 들어서는 시점이었다. 이때부터 조선은 명을 대국이라 칭하고 사대관계에 들어선다. 이때 명나라의 동북쪽 조선의 북쪽 만주 땅에 있던 여진족은 명나라와 조선의 공동 골칫거리였다. 즉 변방의 오랑캐들로 문화의 수준이 떨어져 길고 긴 오랜 세월 주변 민족들로부터 핍박과 멸시를 받던 족속이었다. 척박한 동토의 땅이기에 늘 식량이 부족했고 주로 수렵으로 먹고사는 원시 공동체 수준이었다. 자기들끼리도 맨 날 치고 박고 싸우는 184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식량이 떨어지면 변방을 침범하여 약탈을 해가는 여진족 때문에 명과 조선은 늘 골머리를 앓아야했다. 


조선 초기 세종은 ‘북방 호랑이’라 불리 운 명장 김종서를 시켜 북방 여진족을 섬멸하고 6진을 개척하여 북방의 평화를 유지하기도 했다. 명나라와 조선의 견제와 회유에 의해 같은 족속끼리도 화합하지 못하던 여진족에게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온다. 일본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의 정벌을 내걸고 조선을 침범한 임진왜란이 벌어진 것이다. 명과 조선이 일본과 맞서 싸우는 사이 여진족은 두 나라의 간섭 없이 힘을 키우는 기회를 맞은 것이다. 때맞춰‘누루하치’라는 절세의 영웅이 등장하여 여진족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힘이 켜져 이제는 명에 맞서며 조선을 압박하기에 이른다. 임진왜란이후 맞은 병자호란은 북방 오랑캐인 여진족이 지금까지 상국으로 모셨던 조선을 힘으로 점령하고 삼전도에서 인조에게 절을 시켜 신하국으로 삼은 사건이다. 임진왜란으로 힘을 소진한 명나라 역시 지방 세력들의 반란으로 시달리다가 ‘이자성의 난’으로 그 명을 다하고 2년 후 드디어 여진족이 장안을 점령하여 중국을 지배하게 된다. 만주족이 중국의 한 족을 지배하는 청나라 시대가 열린 것이다. 비단 국가의 예에서만 이런 역전극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고객 K씨는 미국의 큰 금융회사에 입사하여 20여년 만에 사장직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연봉을 많이 받아서인지 배당금을 많이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모아놓은 재산만도 수 천 만 불에 달한다 한다. 수백 만 불도 아닌 수천 만 불이라고 하니 필자 같은 범부의 입장에서는 실감이 가지 않는 수치이다. 아무튼 자신이 살고 있는 부자동네 바닷가 집 값 만해도 천 이백 만 불에 달한다고 하니 사실 인 듯하기는 하다. 이 K씨 내외가 몇 년 전 필자를 찾았을 때 필자는 그의 독립을 적극 말렸다. 독립하여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K씨는 그간에 쌓은 사업적 경륜과 능력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는 K씨 부인의 간곡한 권유에 결국 필자를 찾게 된 것이다. K만큼이나 성공한 한국인 R씨 부인이 마침 필자의 오랜 고객이어서 K씨 부인에게 필자를 만나 운을 상담해 보라고 적극 권유하여 이루어진 자리였다. 


이때 필자가 K씨 부부의 운을 진단하며 잡은 쾌가 ‘복지곤’의 쾌였다. ‘록록부생 불지안분’의 쾌다! 즉 ‘좋은 시절 다 지나가고 낙엽이 되어 길가를 뒹구는 운’이여서 은신하고 자중해야 하는 쾌여서 그리 권유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K씨는 결국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였다.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그 후 K씨 부인이 당황해서 찾아왔을 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투자한 돈 아깝게 생각하지 말고 포기하라고 남편을 설득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크게 낭패할 겁니다.” 라고 여러 번 반복해서 충고해 주었지만 결국 부인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실패를 거듭하다가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무렵 A씨는 옷가게 장사에 실패하고 부인으로부터 이혼 당한 뒤 하숙집에 머물던 분이셨는데 일이 너무 안 풀려서 하숙비마저 감당 못하는 처지였다. 하숙집 주인에게 내일, 내일하며 사정해서 버텼지만 결국 쫓겨나 홈리스 신세가 되었다. 이때 없는 돈을 탁탁 털어 필자를 찾아왔다. 운세를 보아서 계속 별 볼일 없을 것 같으면 이분 왈 “거지가 돼서 땅 바닥을 뒹구느니 차라리 권총으로 머리를 쏴서 깨끗이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6개월만 어찌 버티면 운세가 호전되는 것으로 나왔다.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고 지금은 자바에서 열심히 사업하고 있다. 한국에 있던 큰 형이 유산으로 받은 작은 땅이 마침 팔렸다고 몇 만 불을 보내준 것이 씨드머니가 되어서였다. 정말 다행한 일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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