拔齒有感(발치유감)
사람은 사랑니 외에는 이를 28개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필자의 고정 고객이신 치과의사 P박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빨은 인체에 있어 아주 중요한 신체 기관임은 틀림없다 할 것이다. 우선 생명 유지의 기본인 음식물을 깨물고 씹어서 저작 작용을 시작하는 첫째 관문이기 때문이다. 이가 오복 중 하나라고 할 만큼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어린 아이들이 이갈이를 할 때 이가 빠지면 지붕위에 빠진 이빨을 던져놓고 튼튼한 이빨을 달라고 비는 풍습은 우리나라 어느 지방이든 유사하다.
이렇게 중요한 이를 필자의 경우 거의 잃고 말았으니 통탄을 금할 길 없으나 어쩔 수 없다. 필자의 이가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자취를 할 때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당시 깊이파인 구조였던 부엌 세면바닥에 면상이 세게 부딪치면서 인데 이때 입술이 다 떨어져 나가고 이가 모조리 부서져 버리면서다. 이가 부서져 빠져나가면서 입술을 뚫고나와 그리된 것이다. 오랜 시간 혼수상태에 빠져있을 정도의 큰 사고였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죽다 살아난 것이다. 이때 전체이의 1/4 정도를 잃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당시 치과 의료수준이 높지 못했던 관계로 이 하나를 해 넣기 위해서는 멀쩡한 옆에 있는 이 두 개 이상을 깎아서 고리를 걸어야 했기에 훨씬 많은 이가 희생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멀쩡해 보이던 이도 사실은 잇몸에 큰 충격이 가해 졌기에 그 뒤에 시름시름 앓으면서 하나 둘 빠져 나가기 시작해서 고통을 주더니 급기야 호랑이를 만나고야 말았다. 몇 년 전 치통 때문에 찾은 병원에서 한 치과의사가 잇몸이 들떠서 성한이도 쓸모가 없다면서 2회에 걸쳐 12대의 이를 제거한 것이다. 한번에 7대, 5대를 각각 발치하였는데 피가 멈추지 않아서 놀라 문의하니 대수롭지 않게 ‘뭐 드시는 약이 있으신가?’묻는다. 최근 머리 아플 때마다 아스피린을 거의 2알씩 매일 먹다시피 하였다고 하니 ‘왜 그런 얘기를 안 하셨어요?’ 라고 묻는다.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얘기를 해요?’ 하니 급하게 치과에 나오란다. 가서 꿰 메고 어쩌고 해서 출혈은 겨우 막았고, 겨우 살았다.
그 당시 연 초에 스스로 운을 짚어보니 창화살 이 있어 몸에 칼 대는 것을 삼갔어야했는데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 고 ‘이 정도야 괜찮겠지?’ 해서 시작된 이 치료가 크게 사단이 난 것이다. 거의 모든 이가 제거되고 나자 굉장히 허탈했고 자신감도 급속히 무너지는 듯했다. 이리저리 응급 처치를 해서 겨우겨우 밥을 씹어 먹고는 있지만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들에게 하소연도 못한다. ‘흥 그렇게 세상일을 미리 내다 본다는 놈이 지 운은 왜 그리 몰라?’ 하며 비웃을 것이 두려워서 이다. 필자의 경우 그래도 이 정도에서 끝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더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K씨는 필자의 오랜 고객이시다. 운수 사나와 3번씩이나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살던 양반 이다. 첫 부인은 그리도 곱고 마음씨 착한 현모양처였는데 암으로 사별하고 말았다. 두 번째 부인은 낭비벽이 심했고 무엇보다도 노름 병이 깊어 도저히 살림이 되지 않아 이혼했다. 마지막 세 번째 부인은 어찌나 바람기가 심한지 나중에 알고보니 K씨의 친구 대다수, K씨의 친척 및 지인 등등 가리지 않고 붙어 K씨 말 대로라면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숫컷들은 모두!’ 와 관계하여 K씨 주변에 남자라고는 거의 남아있지 않게 해 놓고 이혼 당했다. 여자라면 넌더리가나서 10여 년 째 혼자이다 보니 살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외동아들 하나 데리고 남자 둘이사니 늘 차림이 추례 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몹시 외로웠고 술을 많이 마셨다. K씨의 누이 몇 명이 틈이 날 때마다 음식을 해 가지고 어떡하든 먹이려 했으나 늘 밥보다 술이 먼저였다. 하기사 오래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K씨가 필자를 찾은 것은 재작년 여름 무렵 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새로 가게를 OPEN 하려하는데 지금 시기가 어떠한가? 묻기 위함 이였다. 다행히도 사업 운은 나쁘지 않게 나왔고 K씨가 가져와 문의하는 사업장 주소도 K씨에게 잘 맞는 터로 나와서 역시 그랬다. 헌데 K씨의 신년 운세 속에 당시 창화살이 들어 있었다. 필자도 혼이 난 경험이 있기에 “올해는 병원 가서 어떤 수술이건 주의해야 합니다. 몸에 칼을 잘못 대었다가는 큰 일 나는 수가 있습니다.” 라고 하며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헌데 충격적인 사실을 그 후 K씨 누나를 통해 듣게 되었다.
어떤 주말에 K씨가 치통으로 며칠을 앓던 차에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워 모 치과 병원을 찾았다 한다. 당시 치통을 잊기 위해 진통제와 술을 얼마간 마신 상태여서 어떤 의사라도 음주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이빨을 발치(拔齒)하지는 않는 것이 상식적인 것인데 K씨가 유독 고집을 부리며 발치를 요구하자 서류에 동의서를 받고는 그 상태에서 발치를 해 주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피를 울컥울컥 몇 번을 토해서 연락을 받고 놀래서 달려온 누이들이 병원을 가자고 해도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다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고 이에 식구들이 크게 놀라 911에 연락을 하였다. 허나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앰브런스 내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한다.
K씨의 누이로 부터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필자도 가슴이 서늘했다. K씨가 그날 만약 필자의 충고를 떠올릴 수 있었다면 그런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 에서였다. K씨의 누이가 필자를 찾은 것은 병원을 상대로 책임을 물으려 하는데 소송과 관련된 변호사 선정 이라든가,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지 여부 등등 사후 수습과 관련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세상의 모든 불행과 사고는 불시에 찾아든다. 상식적인 선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불시에 닥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불운은 겹쳐서 들어온다. 안좋은 일들이 연속해서 생길 경우 무조건 웅크려야 한다. 운(運)이라는 것도 하나의 氣(기)인바 나쁜 탁한 기운(氣)들은 끼리끼리 뭉쳐서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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