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용기가 민족을 구하다!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 원균에 모함에 빠져 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 원균은 출전하여 왜군과 싸우라는 군사 총사령관 도원수 권율의 명에 따르지 않고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회피 하다가 결국 권율장군 에게 끌려가 곤장을 맞은 뒤 마지못해 한산도 통제사 영내로 돌아와서 보유하고 있던 함선을 총동원하여 부산포의 왜군을 치기위해 출발 하였다. 함대가 칠 천량(경남 고성 앞바다)에 이르자 어둠속에 매복하고 있던 왜군이 기습을 감행 하였다. 이 기습으로 조선의 수군은 완전히 몰살 되었고 원균은 혼자 도망쳐 인근 섬에 숨었다가 왜군에게 잡혀 목숨을 빌 다 치욕 스럽게도 목이 잘려 죽고 말았다.
선조는 원균의 대패에 놀라 허겁지겁 이순신을 삼도 수군통제사에 재기용 하였으나 새로 부임한 이순신 앞에는 단지 12척의 배만이 겨우 남아있을 뿐 이였다. 이때 왜군의 대 선단이 조선수군의 싹을 자르기 위해 벽파진 으로 몰려왔다. 133척의 왜군이 갑자기 몰려드니 조선의 수군은 왜의 대 선단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다. 먼저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가 제일먼저 도망 쳤고 다른 배들도 허겁지겁 도망쳤다. 이순신 장군은 이때 엉거주춤 도망 치려하던 거제 현령 안위에게 뱃전에 서서 소리쳤다. “안위야! 내가 도망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래도 어차피 군법에 의해 죽을 것이다.” 이 소리에 안위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도망쳐도 죽을 바에야 싸우다 용감히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든 것이다. 이판사판 이라는 심정으로 안위는 적장의 배를 향해 돌진하였고 이순신 장군의 배도 옆에 붙어 안위의 배를 응원 하였다.
결국 적장의 배가 깨트려져 바다에 가라앉자 조선수군의 사기가 크게 올랐고 총공격에 나서 적선 30여 척을 깨트려 버렸다. 일본 수군은 겁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다. 1597년 9월 16일 있었던 명랑해전의 대 승리였다. 이 명랑해전은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 건진 천우신조의 승리였으며 세계해전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 승전 이였다. 거제현령 안위는 순간의 용기로 영웅이 되었고 결국 자신의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이다. 만약 안위가 우수사 김억추 마냥 그냥 도망쳤으면 후에 군령에 의해 참수가 되었을 것이다. 안위가 그 순간 겁을 먹고 도망쳤다면 이순신 장군도 명랑대첩 대승을 건질수 없었을 것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야 제일 깨트리기 어려운 왜군 적장의 배와 함께 죽자’ 는 안위의 순간 판단은 매우 적절했다.
왜군은 열 척에 불과한 조선수군 (12척 중 두 척은 그나마 수리중이라 출전하지 못했다 전한다) 이 자신들의 위세에 눌려 이리저리 도망을 치자 방심했던 것이다. 원래 해전의 상식상 대장 배를 가장 안전한 중심에 놓고 좌우 앞뒤로 보호하며 전선을 짜는 것이 상례였지만 우리민족 입장 에서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그날 왜군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들의 기세만 보고도 이리저리 흩어져 도망치는 조선수군을 보고 참으로 가소로운 생각이 들었던 거였다. 왜군 입장에서 보자면 이순신 장군의 오른팔 이라 할 수 있는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가 제일먼저 도망을 치고 다른 배들도 이리저리 도망을 치며 허둥대는 꼴을 보니 한심했을 것이다. 이리 허둥대며 겁을 먹은 꼴을 보니 이 건 싸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 지레 짐작을 한 것이다.
결국 경계심이 완전히 없어져 소풍 나가는 기분으로 조선수군에 다가오게 되었고 이런 방심에 적장의 배가 선단의 제일 앞에서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래서 ‘싸움은 숫자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 듯하다. 만약 우수사 김억추가 도망질을 하지 않았다면 조선수군의 진영이 그렇게 급속히 싸우기도 전에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고 왜군도 그리 방심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상적인 싸움 이였다면 133對 10의 싸움이 되었을 것이고 상식상 13배가 넘는 군세와 화력을 지닌 왜군의 승리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안위가 적장의 배가 아닌 다른 배를 깨트렸다면 왜군이 그리 요동하지 않았을 것이고, 침착하게 대응하여 우리수군을 차례로 깨트렸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그때 안위에게 협박을 하지 않았다면 안위는 본능적인 순간의 겁에 김억추를 따라 도망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중에 군령을 어긴 죄로 목이 잘렸을 것이다.
평소에 거제현령 안위는 그리 용감한 군인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조정의 명령에 의해 마지못해 출전 하기는 하였으나 자신이 그리 용기를 내서 적장의 배를 깨트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적장의 입장에서 보면 엉거주춤 도망치려던 안위의 배가 그리 맹렬히 미친놈처럼 자신에게 달라붙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러니 자신의 배에 미친 듯 달려드는 안위의 공격에 순간 당황했을 것이며 미쳐 바다에 가라앉자 왜군들은 상상도 못한 순간적인 현실에 하늘이 노래 졌을 것이다. 이렇게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판에 도망치던 조선 수군의 배가 일시에 공격을 해대니 소풍 나왔다가 날벼락을 만난 격이 되었을 것이다. 이 갑작스런 공격에 자신들의 대장 배와 30척의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자 놀란 나머지 배들은 도망치기에 바빴을 것이다.
1597년 9원 16일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대결에 있어 가장 큰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준 날이다. 오래전 축구 대결에서 일본을 이겨 전 국민이 기뻐하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온다. 1597년 9월 16일로 돌아가 진도 앞바다에서 열 띤 응원전을 펼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영화는 수없이 나왔지만 몇 년 전 ‘명랑’ 이라는 영화가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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