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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죽음을 對面(대면)할 즈음

2021.07.08

 



                      죽음을 對面(대면)할 즈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탄생하고 성장한 뒤 쇠퇴해 가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탄생과 죽음은 굴러가는 수레바퀴처럼 세상사에 있는 자연스런 하나의 과정이다.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죽음’ 은 인간의 한계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최초로 중국의 황제로 등극하여 세상을 지배한 진시황도 끝내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죽었듯이 죽음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용맹무쌍한 이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갖는다.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교가 탄생하였다. 인간의 한계인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얻고자 함이 종교이며 죽음의 허무를 극복하고자 유한한 인생의 의미를 깨우치고자 명상을 하게 된다. 이렇듯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어떡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對面(대면)하게 된다. 


필자가 노인 분들을 상담 하다보면 이런 죽음과 관련된 상담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을 對面할 즈음에 계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에 대한 운명도 타고난다. 즉 장수할 팔자와 단명할 팔자로 구분 될 수 있다. 장수할 팔자를 간략히 제시해보면 오행이 균정 되게 자리 잡고 충, 극, 파, 해가 적으며 일주가 지나치게 태과 하지 않으며 대운의 흐름이 용신과 희신에 상국되지 않는 팔자를 장수할 팔자로 치며 단명할 팔자는 일주가 심히 약하거나 용신 및 희신의 기세가 미약하고 형, 충, 파, 해가 많으며 용신과 희신이 운로와 상극되며 초, 중년 대운이 용신과 극히 상극되는 팔자는 대체적으로 단명, 흉사하기 쉬운 것으로 본다. 아무튼 수명도 사주팔자 속에 타고나는바 필자가 십 수 년간 수많은 분들을 간명해 보았지만 이에 크게 벗어나는 예는 극히 드물었다 할 수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이른바 〈가야될 나이〉즉 〈죽음과 대면할 즈음〉이 되면 제일 궁금한 것이 앞으로 나의 生이 얼마나 남았으며 죽을 때 긴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을지? 혹시 죽기 전에 치매 같은 몹쓸 병에 걸려 〈오줌, 똥 싸며 망측한 꼴〉이 되지는 않을지? 이런저런 죽음에 대한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팔자 속 <운명>에 달린 문제이다. 죽음은 공평하다 할 수 있다. 출생의 경우 어떤 환경의 어떤 부모를 만나서 출생 하느냐 에서부터 공평치 못한 출발선에 서게 되지만 죽음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수만금을 지닌 재벌도 길 위에서 행려병자로 살아온 걸인도 죽음의 순간은 똑같다. 다만 지금까지 자신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쌓았던 공덕이나 악덕의 경중에 따라 가는 곳이 다를 뿐이다. 죽는 그 순간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대신 할 수 없다. 수십억을 준다 해도 내가 죽는 순간 대신 아파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는 없기에 죽음의 순간은 공평한 것이다. 


길 위에서 얼어 죽는 걸인이나 호사스런 특급병실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재벌도 어차피 같은 과정을 거쳐 숨이 넘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마지막 순간 숨이 몸속으로 넘어가서 다시 내뱉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이래서 <숨이 넘어간다> <숨진다>라는 표현을 쓴다. 대개의 경우 마지막 숨을 삼킬 때 기도가 몸속으로 넘어가는 꼬르륵 하는 소리를 내게 되는데 이 소리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소리이다. 숨이 넘어가면 모든 것이 끝인가? 절대 아니다. 죽음은 육체의 죽음만을 의미할 뿐 영혼의 죽음은 아닌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귀한 존재는 육과 영으로 구성된다. 육체는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아가면서 입고 있다가는 옷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이 육체 속 진짜 자신인 영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처음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는 그 순간 즉 아비의 정자가 어미의 난자를 만나 뚫고 들어가는 그 순간 혼이 동시에 들어서게 된다. 즉 육체와 영혼의 결합이다. 이 순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육체가 없는 영혼은 귀신이다. 영혼이 없는 육체는 시체에 불과하다. 천주교나 불교에서는 사후 의식으로 49제를 지내는데 그 이유는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전 중음계에 머무르며 심사를 받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49일 동안의 심사 또는 재판은 스스로 한다고 보았다. 육체를 벗어버린 영혼이 자신이 육체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았던 악행 또는 선행을 세세히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 악행을 일삼았던 영혼은 자신이 사람이었을 때 저질렀던 행위에 대한 후회심에 매우 고통스러워 할 것이며, 선행을 많이 행한이는 자신의 선행에 흐뭇해 할 것이기에 상벌의 의미는 충분하다 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그 결과에 따라 갈 곳이 정해진다. 수없이 많은 단계로 구성되어있는 영혼들만의 세상인 저세상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 어떤 광경이 펼쳐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임사체험자(가 사망 상태에 이르렀다가 깨어난 자) 등이 죽음 직후 겪었던 경험 등을 책 등을 통해 발표하기도 해왔기에 여러 가지 주장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왔지만 대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죽음에 이르는 순간 큰 광채가 나타나 자신을 휩싸고 빠른 속도로 어떤 큰 블랙홀을 통과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류와 천사들이 나타나 자신을 인도해서 큰 구름 등을 타고 하늘나라로 인도된다는 류 그리고 자신이 제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중 먼저 세상을 등진이가 나타나서 기쁨 속에 재회하고 그이의 인도하에 저승으로 간다는 류 등 여러 설이 있으나 공통적인 점은 그 방식이 어떻든 그 기운이 매우 따뜻하고 편안하며 두려움이 없다는데 있다. 즉 죽음은 편안한 안식을 뜻한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주 큰 블랙홀을 통과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머니 자궁 속에서 이 세상 나올 때의 관문처럼 거꾸로 그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리는 결론은 아무튼 필자가 노상 주장하는 이 말이다. “우리의 육체는 보잘것없이 잠깐의 순간에 스러지나 영혼은 영원합니다. 윤회와 인과응보를 깨달아 착한생각, 착한 말, 착한행동에 힘써야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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