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無謀)한 人生(인생)
무모(無謀)하다는 것은 글자그대로 ‘계획 없이 뭔가를 저지른다’는 것을 말한다. 또는 ‘전혀 성공 가능성이 없는 것에 대한 시도’ 라고도 할 수 있다. H씨의 경우 본인 스스로의 의지가 개입된 것은 아니지만 그 출생부터가 무모했다. H씨의 아버지는 당시 큰 벌목장을 운영하는 산판 업자였다. 작은 광산도 함께 소유하고 있어 그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부자였다. 딸만 여섯 두었고 아들이 없다는 것 외에는 부족할 것이 없는 그가 딸 뻘 밖에 안되는 19살짜리 동네처녀를 겁탈해서 H씨가 태어났다. H씨 아버지의 무모한 욕심에 H씨가 태어났고 H씨 생모는 아들을 뺏어 가려는 H씨의 돈질에 결국 녹아나 아들을 넘기고 새 출발 했다. H씨의 큰어머니(생모가 아닌 키워준 어머니)는 외방 자식인 H씨를 무척이나 구박했고 H씨는 빌어먹은 강아지 새끼마냥 눈치 속에 자랐다.
H씨는 어릴 때부터 무모했다. 전봇대 꼭대기에 있는 새집에서 새알을 꺼낸다고 고압선 변전기가 두 개나 달려있는 전봇대를 기어 올라가 고압선을 잘못손대는 바람에 변전기가 폭발 하였고, H씨는 하늘을 드높이 떠올라 붕붕 돌다가 떨어 졌는데 온몸에 화상을 입었는데도 극적으로 살아났다. 덕분에 그 마을일대가 정전되는 소동을 겪었다. 한번은 마을 앞 강가에서 썰매를 타면서 얼음 밑에 고여 있던 공기방울을 썰매 꼬챙이로 찍으며 쫓아 가다가 얼음이 깨져 물귀신이 될 뻔했다. 마침 근처에 우체부 아저씨가 없었더라면 꽃 봉우리 피지도 못하고 질 뻔한 것이다. 이렇게 물, 불에 놀라고도 H씨는 도통 겁이 없었다. 공부에는 원체 소질이 없고 흥미도 없다보니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 했건만 어느 날 무모하게도 지인들 모인 자리에서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S대 法大에 진학 할 거라고 천명을 한다.
모두들 H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모한 H씨는 계속 도전했다. 재수, 삼수, 사수(再修, 參修, 四修) 끝에 끝내 군에 끌려가고 말지만 재수, 삼수, 사수 시절 어딜 가도 폼 잡으며 자신은 S대 法大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수재라며 운이 나빠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며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았지만 실상 공부는 뒷전이고 맨날 쓸데없는 잡지들만 뒤적이다 끝낸 시절이었다. 군대에 가서도 H씨의 무모함은 계속된다. 최전방 철책 근무시 고참 에게 두들겨 맞은 분을 못 참고 철책너머 지뢰밭에 뛰어들어 ‘구타 때문에 월북 하겠다!’ 며 소리소리 지르며 시위한다. 결국 연대장까지 나서 얼르고 달래고 한 끝에 걸어 나왔지만 이때 죽지만 않을 정도로 뒤지게 얻어맞은 끝에 관리소홀 책임문제 등을 우려한 연대장의 따뜻한 배려(?)로 연대자체 교육대 영창에서 반성하다가 이등병으로 강제 전역하게 된다.
제대 후 TV에서 본 여가수에게 갑자기 혼이 뺏겨 이 여가수와 결혼 하겠다고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만 2년 동안 이 지긋지긋한 스토커에게 시달리던 여가수는 참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잡혀갔다 나오면 또 쫓아다니고 하는 통에 결국 이 여가수 은퇴하고 신변을 숨겨 버렸다. 외국으로 이민 갔다는 소문도 있고, H에게 너무 시달린 끝에 미쳐버려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다는 등의 소문이 돌았으나 아무도 진위여부를 알지 못했고, 이런 끈질긴 H의 행동은 당시 유행하던 잡지 ‘선데이 서울’에 소개될 정도였다 한다. 사랑에 실패(?)한 이후 H씨는 자신의 학력이나 조건 등이 한미해서 라고 스스로 자조 하더니 또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은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검사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여가수를 쫓아다닐 때 자신이 당한 경찰이나 검찰 그리고 구치소에서의 수모를 (?)한순간에 갚아주겠다고 이를 악물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선언하여 모두들 결국 H가 완전히 돌아 버렸다고 여기고 혀를 차기도 하고, 마음 약한 어떤 이는 울먹이기까지 했다. 아무튼 H의 무모한 도전은 시작되었고 몇 년이 지나도 식을 줄 몰랐다. 매달 발간되는 고시계(考試界)라는 잡지를 정기 구독하며 여기에 실린 고시합격 수기를 눈물을 글썽이며 열독 하는 게 낙 이였지만 정작 시험에 필요한 공부는 거의 전무한 시절이었다. 산사와 고시촌을 떠도는 낭인생활 8년 만에 계룡산에서 사이비 종교 집단에 현혹되어 광신도가 되었다가 연로한 아버지와 이복 누이들 손에 이끌려 그 생활을 청산 하였지만 아무튼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제는 늙어서 많이 약해진 아버지의 간청으로 ‘손주를 돌아가시기 전 보여드릴 목적’으로 한 여성을 만나 뒤늦게 결혼하고 마침 아들을 낳아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렸다. 한 가지 효도(孝道)는 한 셈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 적지 않은 재산을 물려받아 생활하다 (주로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건물 등에서 세를 받아먹고 사는 임대사업)미국에 이민 오게 되었다. 미국 LA에 살던 이복 큰 누이가 적극 권하였고 아이 교육문제 등을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한국의 재산을 일부 처분하여 미국에 집도사고 매니저 운영의 유명체인 식당도 인수해서 생활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이곳에 이민 오고 나서 그동안 잠잠하던 무모함이 머리를 들기 시작한다. 이 H씨의 누님이 필자의 오랜 고객이여서 H씨의 사정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던 필자에게 어느 날 H씨가 평소처럼 아주 진지한 얼굴로(이분은 항상 진지하다) 심각하게 묻기를 “선생님! 아무래도 이제는 제가 슬슬 움직여봐야 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내로 태어나서 이런 큰 사업 한 번 성공시켜 놓고 죽어야 사내로 태어난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한 뒤 자신이 해 보려고 하는 사업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스케일이 굉장하다.
아프리카의 모 신생국과 합자해서 그 나라의 원유를 개발 제 3국으로 수출하고 또 그 나라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개발하여 이를 채광․가공하여 수출하려는 프로젝트인데 말하는 돈의 단위가 수 억 만 불이다. 천문학적인 숫자를 아무렇치도 않게 들먹이며 진지하게 필자에게 물어온다. 필자가 H씨의 운세를 주역상 쾌로 짚어보니 ‘둔지절’의 쾌가 나온다. ‘포토우해 구어우산’의 운이니 이를 풀이하면 ‘큰 것을 얻으려 하지 말고 새로운 일은 최소 하라. 가던 길에 범을 만나게 되리라!’ 는 쾌여서 무모한 일에 도전하다 낭패하는 쾌였다. 이런저런 말로 H씨를 말렸지만 無謀(무모)하기로 한 가닥 하는 H씨의 표정은 필자의 말은 무시한 채 먼 허공을 보며 자신의 무모한 결의를 다지는 듯했다. 실로 無謀한 人生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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