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이분이 손님 이라면! - 무척 까다로운 진상 고종 -

2021.10.25





                이분이 손님 이라면! - 무척 까다로운 진상 고종 -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을 옆에서 모시고 지켜봤던 시종원 부경 정환덕은 역학의 大家였다. 易學중 특히 상수학(象數學)에 능했다. 어린 시절부터 太乙老人(태을노인)이라는 도사에게 사사 받았는데 총명하여 그 배움이 빨랐고 세상 모든 일에 무관심 한 채 오로지 역학 연구에만 매진하다 나이 40세에 이르렀다. 이러던 어느 날 (광무원년-1897년 7월 16일)밤 황학사 동편 운수암에서 수련을 하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이제는 충분히 공부가 되었으니 도성에 올라가 망해가는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라!”고 분부하였고, 정환덕은 드디어 세상에 출사하게 된다. 


서울에 올라와 이런 이 저런 이들에게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언하고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귀신이 곡할 정도로 정확히’ 앞날을 예언하자 그 이름이 높아졌다. 마침 동부승지 윤명구가 정환덕과 운명상담을 하게 되었고 정환덕의 놀라운 역학 솜씨에 감탄한 그는 “이런 재주를 썩히는 것은 너무 아깝다! 어떡하든 궐에 들어가 나라를 위해 그대의 재주를 써보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한 뒤 당시 비서 실장격인 전화과장 이재찬 에게 천거하였고, 이재찬이 고종에게 정환덕을 추천하여 시종으로 고종을 옆에서 모실 수 있었다. 고종 왈 “태조께서 한양에 터를 잡을 때 정도전이 종묘의 문에 창엽(蒼葉)으로 현판을 써서 걸었다. 


창이라는 글자는 파자하면 분명히 二十八君(이십팔군)이고, 엽이라는 글자 또한 二十八世(이십팔세)를 뜻하는데 짐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임금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 거짓 없이 고하라!” 라고 어명을 내렸다. 예부터 세상에 파다하게 퍼져있는 이야기 인 즉 종묘에 창엽문이 있고 그 위현판을 정도전이 섰는바 창자의 초두는 쌍십자로 20이라는 뜻이요, 그 밑에 여덟팔(八)자와 임금군(君)자가 있으니 28대라는 뜻이요, 엽자 또한 초두 쌍십자에 인간세(世) 그리고 나무목(木)자에 여덟 팔(八)자가 들어 있어 28세로 읽을 수 있던 것이다. 실제로 고종이 조선의 26대왕이요, 다음의 순종은 27대, 순종은 후사가 없어 동생인 영친왕이 형식상 이지만 28대왕이니 이 예언은 맞은 것이요, 종묘에도 28칸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환덕은 고종에게 “신의 얕은 재주로 추측한 운수는 정유원년 (1897년)이후 11년으로 그쳤으니 이수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실제 고종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일제의 압박을 받아 강제 퇴위당하고 순종에게 양위해야 했으니 이때가 1907년 정미(丁未)년이니 정환덕이 이야기한 꼭 그 11년 되던 해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종이 정환덕에게 입궐하라는 어명을 내려 입대하고 나오면서 고종에게 아뢰기를 “근자에 궁 안에 큰 불이 날 화변이 염려되오니 각별히 조심하시고 예방하셔야 합니다.” 라고 했다. 고종이 놀라 “어느 날 어느 시각에 불이 날 것 같은가?” 라고 묻자 “다음 달 12월에 일어날 것 같습니다.” 라고 했다. 다시 고종이 “12월 며칠인가?” 라고 하며 파고드는 질문을 하였다. 이렇게 세심이 파고드는 질문은 답을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지만 정덕환은 워낙 역학의 대가였기에 이에 답할 수 있었다. “12월 그믐날일 것입니다.” 라는 답에 끈질긴 고종 또 묻는다. “그믐날 정확히 어디서 불이날건가?” 이정도 되면 웬만한 역학자는 두 손을 들고 말 터이지만 정환덕은 쾌를 짚어본 뒤 정확히 위치까지 말한다. “함녕전 바로 남문입니다.” 라고 하자 끈질긴 진상 고종 또 물고 늘어진다. “이 불이 정전까지 침범하는가?” “거의 침범할 것 같습니다.” “어떡하면 이 불을 막을 수 있겠는가?” “군졸 수백 명으로 하여 그믐 전전날부터 매일 밤 궁중과 궁 밖을 돌게 하여 근처의 인가를 조심시키면 됩니다.” 


고종을 필자가 버릇없게 진상이라고 한 것은 이렇게 세세히 물고 늘어지고는 그 날 이후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무 조치도 안한 것이다. 아무튼 정환덕의 예언은 적중하여 이 해 12월 그믐날 덕수궁 가까운 민가에서 불이 났다. 불은 청국인이 경영하던 석물 공장에서 일어나 이웃집으로 번졌고 이 불이 번져 점점 커져나갔고 정전으로 육박하였다. 성 안 밖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 불길을 잡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결국 진고개(지금의 충무로 입구)에 있던 일본 소방대가 달려와 소방기계 수십대로 겨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날 밤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입궐하여 함녕전의 안전을 축하하였다. 이때 고종 앞에 있던 전화과장 이재찬이 “정환덕이 앞날을 맞히는 것은 귀신같은 솜씨입니다.” 라고 하니 진상덩어리 고종 눈을 끔뻑거리며 “그게 무슨 소리요?” 라고 한다. 이재찬이 “전에 정환덕이 폐하께 12월 그믐에 큰 불이 날것이라고 아뢴 일이 있는데 기억 안나 십니까?” 라고 하니 고종 그제야 “아하! 생각이 난다. 허나 짐(朕)이 근래에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벌써 잊어버렸다. 그런데 정환덕은 왜? 다시 내게로 와서 그 일을 다시 환기시키지 않았는가?” 라고 물으며 오히려 역정을 낸다. -남가몽에 기록으로 전하는 사실이다-


필자도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이들을 만나게 된다. 아무리 간곡히 충고해도 듣지 않다가 일을 당하고 나면 “왜? 그때 좀 더 강력히 말리지 않았는가?” 라고 하며 필자를 원망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정환덕의 말은 듣지도 않을 거면서 왜 그리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그 뒤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중에 일을 당하고서야 원망하는 고종 같은 이런 고객들이 있기에 이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고종과 같은 이런 진상고객은 늘 있는 것이다. 손님이라면 무척이나 필자를 힘들게 했을 고종이야기였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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