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과욕이 화를 부르다!
필자가 상담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사정으로 미국에 살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국에 돌아갈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에 처한 분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다음의 이야기도 이런 사연을 지닌 한분의 이야기이다. K씨는 60대 중반의 남성분이시다. 미국에 오신지 10여년이 넘었다. 처음 미국에 오시게 된 것은 한국에서 하시던 사업이 망하고 당좌수표를 부도내어 당장 ‘부정수표 단속법’에 의해 감옥에 갈 처지였기에 무작정 미국으로 내뺀 것이 이제 14년 가까이 되고 말았다. 나이 50이 넘어 가족 다 버리고 홀홀단신 미국에 건너온 처음에 겪은 고초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참혹 했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리커스토어를 운영하시는 김노인의 도움으로 그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24시간 리커를 지켰다. 캄툰 지역에 있는 그 리커의 손님 대다수는 덩치가 크고 얼굴이 씨꺼먼 흑인들이였다. 영어한마디 못하는 K씨가 그래도 눈치코치는 빨라 그들이 하는 희한한 발음의 영어를 눈치껏 알아듣고 장사를 해 낼 수 있었던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사장인 김노인은 이런 리커스토어를 대여섯 군데나 가지고 있는 알짜 부자였다. 50년 미국 생활동안 라스베가스 한 번 가보지 못할 정도로 하루도 쉬지 않고 근면하게 일한 결과였다. K씨는 처음 의지 가지 없던 자신을 살게 해 준 김노인을 생명의 은인처럼 감사해 했지만, 몇 년 시간이 지나자 슬슬 생각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김노인이 자신에게 너무 박한 임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번 서운한 마음이 들자 근무 태도는 겉잡을 수없이 불량해 졌고 결국 해고되고 만다. 김노인이 “당장 나가! 이놈아! 먹고 살 길 없다고 질질 짜며 살려만 달라고 매달리는 놈을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잠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더니 뭐? 남의 약점을 이용해 착취를 했다고? 에라! 은혜도 모르는 놈아 지금 당장 나가!” 라고 소리쳤을 때 K씨도지지 않고 맞받아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을까! 에라 순 악질 노랭이 영감아! 갈 때 관에 돈 꼭꼭 담아가거라. 노랭이 영감아!” 라고 소리 질러 주고 김 영감님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어 한인타운 내 하숙집에 짐을 풀고 일자리를 알아보았는데 마침 같은 하숙 옆방에 살던 홀아비가 지붕 고치는 루삥일 을 하러 다니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 얼씨구나 하고 루삥일 을 따라 다녔다. 이렇게 따라 다니다보니 기술과 요령이 생겨 독립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기술을 가르쳐 주었던 옆방 홀 애비는 자기 손님과 일거리를 빼갔다고 방방 뛰었지만 서로 드잡이를 하고난 뒤 돌아섰다. 그러던 어느 날 루삥일 을 나갔다가 우연히 일을 맡긴 과부와 눈이 맞아 살림을 합치게 된다. 과부는 시민권자여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을 해결 할 수 있었다. 과부는 생활력이 강한 여자여서 타운내 에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자신의 집도 지니고 있었다. 이때부터 K씨는 옛날 게으른 근성이 나타나 집에서 놀고먹는다.
이러면서 또 한량 끼도 되살아나 유흥장에 드나들며 여자들과 놀아나기 시작하고 골프장에서 만난 여자들과도 어울리며 마누라가 벌어오는 돈으로 한량 생활을 만끽한다. 과부는 너무도 착한 여자여서 이런 불량한 남편을 무던히도 감싸주려 애썼다. 그러나 급기야 K씨의 외도현장을 목격하고 난 뒤에는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던지 헤어질 것을 요구해 왔다. K씨는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주는 격이구나! 아이고 좋아라 ♪띠리리리리♬’ 개다리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기쁜 마음이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과부가 마음에 들어 한 결혼도 아니요, 돈 있고 착해 보여 자신의 신분도 해결하고 편하게 얹혀 살려 고 한 결혼인데 요즈음 슬슬 싫증도 나고 유흥가나 골프장에 가보면 바람난 예편네들이 지천 인데 뭐 하러 눈치보고 살아야하나? 하는 마음이 강해지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이혼하면 재산도 반으로 나눌 수 있으니 얼추 계산해도 꽤나 큰돈이 자신에게 떨어질 거라고 내심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과부가 재산을 나누려면 가지고 있던 빚을 청산하고 남은 돈으로 나눠야 한다고 나섰는데 말이야 옳은 말이었다. 이런저런 은행 빚에 개인 빚까지 정산하고 나니 은행융자 제하면 그야말로 껍데기뿐인 집하나 남았는데 K씨는 어거지를 써서 일단 이집을 빼앗아 버렸다. 껍데기뿐인 집이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하지만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재산(집)이 있으니 나이가 되었어도 월페어 를 받을 수 없었다. 미국에 오고난 뒤 일한 기록이 전혀 없으니 쇼셜연금도 받을 수 없었다. 영주권을 딴 뒤 시민권까지 따놓았는데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의료보험도 없으니 의료혜택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아파오는데 참고 참다가 견딜 수가 없어 병원에 한번 다녀오면 병원비에 약값이 몇 백 불씩 나갔다. 이 돈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제발 아프지 말아야 겠는데 젊어서 아무렇게나 몸을 이리저리 막 굴린 후유증이 점점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한국에는 의료보험 체계가 너무도 잘 되어 있다니 한국에 가면 혜택을 받을 수 있겠지만, 한국으로 가자니 예전에 저질러놓은 일로 감옥에 들어가야 할 처지이지 여기서 버티자니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신세여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에서 고민 고민하다 필자를 찾은 것이었다.
이래서 사람 욕심이 과하면 화를 겪는 법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 막막하던 시절 도움을 주었던 이들을 배신하고 돌아설 때부터 싹수가 노랬던 것이다. 착한 과부만나 편하게 살면 고마운 줄 알고 만족했어야 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말처럼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막 놀아나다 지복을 지발로 차고 만 것이다. 이래서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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