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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

2019.01.21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 

 

  필자의 고객들 중 “사람이 죽으면 그게 끝인가요? 아니면 사후 세계가 있는 건가요?”라고 묻는 이들이 간혹 있다. 이에 대해 살펴보자 예전에 뉴스에 사망한 80대 할아버지가 되살아나 뉴스에 화제가 된 바 있다. 언제인가 필자의 쎄커테리 한분이 “그 할아버지 살아나신지 일주일 만에 도로 돌아가셨데요! 고작 일주일 더 사시려고 살아나신 건가 봐요.”라고 하는 말을 듣고 필자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일상에서 주위사람들의 죽음을 자주 접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서점 가에도 죽음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책들이 있지만 확연히 밝혀 주는 책은 거의 없다 할 수 있다. 필자의 지인 중 어떤 이의 경험담은 이렇다. 


“어머니가 평생 몸이 약하셔서 골골하셨는데 1996년 결핵성 관절염으로 굳어버린 무릎 관절수술을 받으시다 마취부작용으로 신장기능이 급속히 나빠져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됐습니다. 겨우 위기를 넘기고 퇴원한 어머니는 목숨이 오락가락하던 그 위중한 시기에 겪으신 비몽사몽간의 경험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큰 강을 건너 커다란 성문 앞에 다 달았는데 성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엄청난 크기의 거인이 턱하고 문을 가로 막으며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하며 문을 닫아버렸답다. 어머니는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힘껏 잡아당기며 흔들다 깨어났는데 그 문고리는 간호하다 옆에서 지쳐 잠들어있던 아버지의 옷자락이었고 아버지가 깨셨을 때 어머니는 당신의 옷자락을 잡고 흔들며 눈을 뜨셨다고 합니다.” 이 증언에서도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이 어김없이 건넜다는 강(망각의 강 또는 레테의 강)이 등장한다. 


우리는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차례를 지내며 영가천도를 위해 천도제 를 지내면서도 영혼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고 그저 막연히 관습적으로 이런 행사를 치러내고 있다. 사후 영혼세계의 존재는 종교의 성립조건이기도 하다. 사후세계가 없다면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고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몸, 살아서 즐기자!’라고 하며 이 세상을 멋대로 살 것이고, 종교의 구원론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후 영혼의 세계는 위정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논리라고 주장하는 이들까지도 있다. 동양의 선지자 ‘묵자’ (경상도 사투리인 ‘밥 묵자’가 아니다.) 도 같은 입장이었던 것 같다. 그 오래전 시대에도 선악의 대립은 있었고 사람들의 사람답지 못한 행위가 있었다. 그때부터 ‘말세야! 말쎄!’라는 말이 있었던 듯하다. 사람들의 사람답지 못한 행위가 묵자에게는 화두가 됐다. 묵자는 사후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면 사람들이 죽은 뒤 나중을 위해서라도 선하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후 영혼을 찾기 위한 그의 노력은 묵자의 철학적 배경이 됐다. 


기독교의 신약 .구약 성경에는 빙의현상과 영의 존재가 자주 언급된다. 예수가 죽은 이후 열두 제자(12사도) 시대에는 영의 출현이나 빙의 현상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흔한 사실 이였고 예수처럼 제령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진짜사도와 가짜사도를 구별하기도 했다. 육체를 떠난 영혼의 존재가 있다면 <죽음>은 이승의 출구인 동시에 저승의 입구가 된다. 동양에서는 죽음을 혼(魂)과 백(魄)의 영원한 분리가 죽음이라고 보았다. <예기>에는 혼기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쓰여 있다. 혼은 양기(陽氣)로 영(靈)을 뜻하며 백(魄)은 백골로 화(化)하는 육체를 말한다. 따라서 ‘혼’은 생명력 ‘백’은 신체의 형성 에너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승과 저승의 관계를 기술한 가장 오래된 글로는 이집트의 ‘사자의 글’이다. 기원전 4200년 쯤 이집트 세프테왕 시대의 왕릉관에 그려진 그림문자다. 첫머리에 쓰여 있는 것이 바로 사후세계의 체험담이다. 이 글에는 ‘죄가 많은 자는 정령계에 도달한 뒤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적혀있다. 


인간은 예외 없이 누구나 빠짐없이 꼭, 반드시, 죽는다.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동.식물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육신의 죽음은 모든 것이 끝인가?’라는 의문은 인류역사가 존재하면서 끝임 없이 생각되어오고 제기 되어온 문제다. 따라서 예부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는다. 죽었다가 살아난, 즉 사후세계를 잠깐이나마 목격했다던 이들의 증언에 사람들은 관심을 집중한다. 예전에 경남 합천 읍에서 다방을 경영하다 1990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한 류성룡씨는 생전에 ‘귀신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지녔다. 류씨가 59세 되던 해 위암진단을 받고 경북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암세포가 배 전체에 퍼져버려 개복수술을 중단하고 수술이 포기 되었다. 퇴원한 후 의식불명에 빠졌고 가족들은 임종을 준비했다. 하지만 죽지 않고 보름 만에 깨어나 저승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저승에서 만난 사람이 ‘18년만 더 살다가 오라’고 했고 류씨는 ‘쓰는 김에 조금 더 쓰셔! 20년을 채웁시다!’라고 요구하며 흥정하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류씨는 안타깝게도 18년을 채우지 못하고 14년 뒤 사망했으나 자신이 죽음시기를 주위에 정확히 예언했다. 무슨 사정으로 4년 일찍 가야하는지 류씨 자신도 몰랐으나 죽음을 체험한 뒤부터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어떤 이는 죽어서 저승에 갔는데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화가 잔뜩 나셔서 회초리로 때리면서 ‘올 때가 아닌데 왜 왔느냐!’고 호되게 나무라셔서 돌아왔습니다.”라는 이도 있고 수 없는 경험담들이 있다. 이런 증언들에 대한 신빙성 문제는 논 외로 하고 아무튼 사후세계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사람은 전생의 업에 의해 출생과 사망을 반복한다. 사람은 태어나 채 100년도 못되는 짧은 찰라의 순간 생명 줄을 놓는다. 우리의 육체는 보잘 것 없이 잠깐 한 순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죽는다고 끝이 아니다. 영혼은 영원하다. 윤회의 인과응보를 깨달아 착한 생각, 착한 말, 착한 행동에 힘써서 윤회의 고리를 끊고 저 피안의 세계에 도달할 그날까지 모두 힘써 지금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닌 것이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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