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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콘스탄츠-2(독일)

2018.04.30


 

콘스탄츠-2

Konstanz-2

 

유럽의 골목길은 아기자기 하고 낭만이 풀풀 넘쳐 좋다.

 

 

 

 

콘스탄츠 대성당(Konstanzer Munster)은 독일에서 가장 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중 하나다.

 

 

 

 

정식 명칭은 성모 대성당(Munster Unserer Lieben Frau).

 

 

 

 

첫 언급이 615년부터 인 것을 보면 대성당은 14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052, 오래된 성당 건물이 무너진 후 다시 짓기 시작한 대성당은 326년이 지난 후에야 완공됐다.

 

 

 

 

그 후, 1414년부터 1418년까지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콘스탄츠 공의회가 열린다.

 

 

 

 

중세최대의 종교회의였던 콘스탄츠 공의회(Konzil von Konstanz)는 요한 23세 교황, 추기경,

 

 

 

 

대주교 등 종교지도자와 군인, 백작 등 여러 부류의 인사들이 참가한 대규모 회의였다.

 

 

 

 

당시 카톨릭 교회에는 교황을 자처하는 3명의 교황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성로마황제 지기스문트는 교황 요한 23세에게 요청, 공의회를 소집했다.

 

 

 

 

로마계인 그레고리오 12세 교황과 아비뇽계인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공의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속에 요한 23세 교황이 회의를 보이콧하며 공의회를 도망치 듯 떠난 후,

 

 

 

 

세 명의 교황은 모두 폐위되고 새로운 교황으로 로마 출신의 코론나(Colonna) 추기경이 선출됐다.

 

 

 

 

 

공의회는 주로 콘스탄츠 공의회관(Konzil Konstanz)에서 거행됐다.

 

 

 

 

3층의 공의회관은 1388년에 지어진 건물로 선착장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600명 정도가 참석할 수 있는 회의실이 있는데 현재는 콘서트 홀로 사용중이다.

 

 

 

 

 

코론나 추기경이 마르틴 5세의 이름으로 교황에 선출된 날은 14171117일이다.

 

 

 

 

당시 콘스탄츠 시민의 수는 6,000명이었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손님들을 72,000명이었다.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콘스탄츠 시에서 마련한 시설물은 다음과 같다.

 

 

 

 

73개의 은행 등 환전상, 310군데의 이발소, 225군데의 재단소, 230군데의 베이커리.

 

 

 

 

그리고 곳곳에는 타지에서 온 남자들을 상대할 700명의 창녀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추기경과 백작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남자들을 떡 주무르듯 하던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이 바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 임페리아(Imperia).

 

 

 

 

임페리아는 콘스탄츠에서 가장 호화스런 저택에서 생활하던 쿠르티잔(Courtisane)이다.

 

 

 

 

쿠르티잔이란 귀족 또는 부자들을 상대하는 최상층의 화류계 여성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기생과 비슷하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가 쓴 발자크의 해학 제1, 미녀 앵페리아에 의하면..
 
 
 

그녀를 만나려는 외교관, 장군, 귀족, 주교, 추기경 등 수믾은 남자들이 늘 문 밖에서 기다렸다고 하며,

 

 

 

   

 

지기스문트 황제도 임페리아를 비너스 여신으로 비유할 만큼 그녀의 매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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