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이탈리아 안에 작은 나라(산 마리노 공화국)

2018.08.21





 




산마리노 공화국


Republic of San Marino



이탈리아 안에는 세 나라가 있다.
이탈리아, 교황이 있는 바티칸 공화국, 그리고 산 마리노 공화국이다.




산 마리노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오랜세월 당당하게 독립을 유지해 온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의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가려면 렌트카를 이용하거나 리미니(Rimini)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인구는 32,000명 정도, 일인당 국민소득은 세계8위권인 $60,664달러(2014년 IMF 조사).
이것은 이탈리아, 영국, 독일, 미국, 스위스 등 거의 모든 선진국을 능가하는 높은 소득이다.
‘고대 자유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envenuti Nell' Antica Terra Della Liberta)’
산 마리노 국경을 들어 서며 발견하는 산 마리노 소개 문구의 내용이다.




성문 주차장에서 자유의 광장으로 가려면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언덕에는 목걸이, 특산품, 가면 등을 파는 기념품점과..




산 마리노 국립대학 대학생들이 담소하고 있는 대학연구소가 보이고..




좋은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레스토랑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산 마리노의 중심은 공화국 궁전(Palazzo Pubblico)이 있는 자유의 광장이다.
궁전의 역사는 1380년까지 올라 가야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1894년에 건축된 것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바그너 백작부인이 헌정한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서있다.




궁전 앞에서 제복을 입은 공화국 근위병이 한 명 보였다.




*6월부터는 매 1시간마다 근위병 교대식을 갖고 특별한 날에는 퍼레이드를 하지만..
비수기에는 근위병도 없고 교대식도 없다.




궁전을 들어 가려면 4유로의 입장료을 지불해야 한다.




화려한 회의실 중앙에는 성 마리누스(St. Marinus)가 금색 아우라(Aura) 안에 그려져 있다.
책에 써있는 글은 ‘황제와 교황으로 부터의 자유를 선사하노라’ 라는 문구다.
AD 301 년, 석공 마리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탄압을 피해 이곳에 정착했다.
이후 그의 이름을 딴 산 마리노 공화국이 1700년동안 자유를 지켜온 것이다.




산 마리노는 공화국 탄생 때부터 내려 온 독특한 의회 전통이 하나 있다.
직접 선출된 60명의 평의원들이 집정관이라 부르는 국가원수를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다.




집정관들 중에서 유명한 사람은 안토니오 오노프리와 바톨로메오 보르게시 집정관.




특히 오노프리는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침공(1797년)시 당당하게 그를 만나 독립을 보장 받았다.
오히려 나폴레옹은 그에게 산 마리노 공화국의 영토를 넓혀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와의 미래 관계를 고려한 오노프리가 정중하게 사양한 것은 물론이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전쟁때는 쥬세페 가리발디 장군이 이곳을 피난처를 삼은 적도 있었다.




궁전 옆에는 산 마리노 교회(Basilica di San Marino)와 성 베드로 교회(오른쪽)가 있다.




산 마리노 교회 안에는 성 마리누스의 대리석 동상이 제단 중앙에 세워져 있다.




본당에는 몇 개의 작은 예배당도 보였는데 제단 앞에는 성화와 성인들의 동상들이 서있다.




13세기에 지어진 체스타 요새(La Cesta, 749m)는 적들에게는 난공블락의 요새였다.




전체 초원을 보며 멀리 오는 적들의 침입도 쉽게 내려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사항전의 장소는 요새 가장 위층에 있었다.
이곳은 무기를 가지고는 도저히 올라 갈 수 없게 만들어 놓았는데
적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 오면 산 마리노 병사들은 사다리를 부수거나 위로 올려 버렸다.




1463년 산 마리노는 이탈리아 리미니 시와 마지막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오늘날까지 산 마리노의 국경선은 변함이 없다.




창가에서는 산 마리노 전체가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체스타 요새 안에는 무기 박물관이 있다. 중세와 근대에 이르는
갑옷, 칼, 소총, 권총, 활 등 700여점의 각종 무기가 박물관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세에 사용하던 석궁(Crossbow)은 산 마리노인들의 자부심이다.
종래의 활에 비해 혁신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는 석궁은 보통 1.4 Km 까지 날아 간다.




*그러나 최대한 당기면 시속 250km 의 가공할 속도로 날아가 2Km 전방에 있는 목표에 정확히 꽂힌다.
70명 정도로 구성된 석궁 군단은 1295년에 창단됐으니 72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석궁은 현재는 산 마리노인들이 즐기는 최고의 스포츠가 됐다.




체스타 요새와 과이타 요새(Rocca Guaita, 738m)를 연결해 주는 것은 마녀의 길.




콰이타 요새 내부에는 산 마리노 군인들에게 물을 공급했던 우물이 있고..




우물 앞으로는 결사항전의 콰이타 탑이 높게 세워져 있으며..




한 쪽 벽에는 대포들이 도열해 있었고..




죄수들이 그린 그림이 한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멀리 마지막 요새인 몬탈레 요새(Rocca Montale)가 보인다.
몬탈레 요새는 바로 앞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지만 개방하지는 않았다.




산 마리노의 유명한 가수로는 1960-1970년대 활약하던 리틀 토니(Little Tony)가 있다.




리틀 토니는 1961년부터 산레모 가요제에 등장 산 마리노 인과 이탈리아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최고의 히트곡은 1967년 산레모 가요제 출품작인 Cuore Matto(미친 사랑)이라는 곡이다.




한국에서는 펄시스터즈가 ‘첫사랑’이라고 번안하여 불러 대히트했다.




*사랑에 우는 한 남자(Un uomo piange solo per amore)는 1968년 산레모 가요제 10위에 그치고 말았다.



여행팁: 라벤나에서 리미니까지(1시간) 기차 요금: 6유로,
리미니 역 앞 버거킹에서 오른쪽으로 50미터 거리에 티켓 판매소가 있다.
버스는 한 두 시간에 한 번 정도 운행하며 왕복 버스 요금은 10유로.


글, 사진: 곽노은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1&v=J492Ifjbq5g =

리틀 토니 = Un uomo piange solo per amore



*표시의 이미지(6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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