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ublic of San Marino ![]() 이탈리아 안에는 세 나라가 있다. 이탈리아, 교황이 있는 바티칸 공화국, 그리고 산 마리노 공화국이다. ![]() 산 마리노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오랜세월 당당하게 독립을 유지해 온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의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 이곳에 가려면 렌트카를 이용하거나 리미니(Rimini)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인구는 32,000명 정도, 일인당 국민소득은 세계8위권인 $60,664달러(2014년 IMF 조사). 이것은 이탈리아, 영국, 독일, 미국, 스위스 등 거의 모든 선진국을 능가하는 높은 소득이다. ‘고대 자유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envenuti Nell' Antica Terra Della Liberta)’ 산 마리노 국경을 들어 서며 발견하는 산 마리노 소개 문구의 내용이다. ![]() 성문 주차장에서 자유의 광장으로 가려면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 언덕에는 목걸이, 특산품, 가면 등을 파는 기념품점과.. ![]() 산 마리노 국립대학 대학생들이 담소하고 있는 대학연구소가 보이고.. ![]() 좋은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레스토랑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산 마리노의 중심은 공화국 궁전(Palazzo Pubblico)이 있는 자유의 광장이다. 궁전의 역사는 1380년까지 올라 가야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1894년에 건축된 것이다. ![]() 광장의 중앙에는 바그너 백작부인이 헌정한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서있다. ![]() 궁전 앞에서 제복을 입은 공화국 근위병이 한 명 보였다. ![]() *6월부터는 매 1시간마다 근위병 교대식을 갖고 특별한 날에는 퍼레이드를 하지만.. 비수기에는 근위병도 없고 교대식도 없다. ![]() 궁전을 들어 가려면 4유로의 입장료을 지불해야 한다. ![]() 화려한 회의실 중앙에는 성 마리누스(St. Marinus)가 금색 아우라(Aura) 안에 그려져 있다. 책에 써있는 글은 ‘황제와 교황으로 부터의 자유를 선사하노라’ 라는 문구다. AD 301 년, 석공 마리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탄압을 피해 이곳에 정착했다. 이후 그의 이름을 딴 산 마리노 공화국이 1700년동안 자유를 지켜온 것이다. ![]() 산 마리노는 공화국 탄생 때부터 내려 온 독특한 의회 전통이 하나 있다. 직접 선출된 60명의 평의원들이 집정관이라 부르는 국가원수를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다. ![]() 집정관들 중에서 유명한 사람은 안토니오 오노프리와 바톨로메오 보르게시 집정관. ![]() 특히 오노프리는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침공(1797년)시 당당하게 그를 만나 독립을 보장 받았다. 오히려 나폴레옹은 그에게 산 마리노 공화국의 영토를 넓혀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와의 미래 관계를 고려한 오노프리가 정중하게 사양한 것은 물론이다. ![]()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전쟁때는 쥬세페 가리발디 장군이 이곳을 피난처를 삼은 적도 있었다. ![]() 궁전 옆에는 산 마리노 교회(Basilica di San Marino)와 성 베드로 교회(오른쪽)가 있다. ![]() 산 마리노 교회 안에는 성 마리누스의 대리석 동상이 제단 중앙에 세워져 있다. ![]() 본당에는 몇 개의 작은 예배당도 보였는데 제단 앞에는 성화와 성인들의 동상들이 서있다. ![]() 13세기에 지어진 체스타 요새(La Cesta, 749m)는 적들에게는 난공블락의 요새였다. ![]() 전체 초원을 보며 멀리 오는 적들의 침입도 쉽게 내려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결사항전의 장소는 요새 가장 위층에 있었다. 이곳은 무기를 가지고는 도저히 올라 갈 수 없게 만들어 놓았는데 적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 오면 산 마리노 병사들은 사다리를 부수거나 위로 올려 버렸다. ![]() 1463년 산 마리노는 이탈리아 리미니 시와 마지막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오늘날까지 산 마리노의 국경선은 변함이 없다. ![]() 창가에서는 산 마리노 전체가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 체스타 요새 안에는 무기 박물관이 있다. 중세와 근대에 이르는 갑옷, 칼, 소총, 권총, 활 등 700여점의 각종 무기가 박물관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 *그 중에서도 중세에 사용하던 석궁(Crossbow)은 산 마리노인들의 자부심이다. 종래의 활에 비해 혁신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는 석궁은 보통 1.4 Km 까지 날아 간다. ![]() *그러나 최대한 당기면 시속 250km 의 가공할 속도로 날아가 2Km 전방에 있는 목표에 정확히 꽂힌다. 70명 정도로 구성된 석궁 군단은 1295년에 창단됐으니 72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 *석궁은 현재는 산 마리노인들이 즐기는 최고의 스포츠가 됐다. ![]() 체스타 요새와 과이타 요새(Rocca Guaita, 738m)를 연결해 주는 것은 마녀의 길. ![]() 콰이타 요새 내부에는 산 마리노 군인들에게 물을 공급했던 우물이 있고.. ![]() 우물 앞으로는 결사항전의 콰이타 탑이 높게 세워져 있으며.. ![]() 한 쪽 벽에는 대포들이 도열해 있었고.. ![]() 죄수들이 그린 그림이 한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멀리 마지막 요새인 몬탈레 요새(Rocca Montale)가 보인다. 몬탈레 요새는 바로 앞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지만 개방하지는 않았다. ![]() 산 마리노의 유명한 가수로는 1960-1970년대 활약하던 리틀 토니(Little Tony)가 있다. ![]() 리틀 토니는 1961년부터 산레모 가요제에 등장 산 마리노 인과 이탈리아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그의 최고의 히트곡은 1967년 산레모 가요제 출품작인 Cuore Matto(미친 사랑)이라는 곡이다. ![]() 한국에서는 펄시스터즈가 ‘첫사랑’이라고 번안하여 불러 대히트했다. ![]() *사랑에 우는 한 남자(Un uomo piange solo per amore)는 1968년 산레모 가요제 10위에 그치고 말았다. 여행팁: 라벤나에서 리미니까지(1시간) 기차 요금: 6유로, 리미니 역 앞 버거킹에서 오른쪽으로 50미터 거리에 티켓 판매소가 있다. 버스는 한 두 시간에 한 번 정도 운행하며 왕복 버스 요금은 10유로. 글, 사진: 곽노은
*표시의 이미지(6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