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캠페인

"한반도와 일본 열도, 연해주 및 사할린 섬에 둘러싸인 바다는 그 호칭 및 명명(命名)에 대한 논쟁이 있다. 이 바다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 러시아 등 4개국의 주권과 관할권이 미치는 해역으로, 이들 연안국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동해"(東海),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동해"(朝鮮東海), 일본에서는 "니혼카이"(日本海にほんかい), 러시아에서는 "야폰스코예 모레"(Японское море, 일본해)로 부르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 양측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며 대한민국은 91년 남북 유엔 가입 이후 병기표기 의견들이 나왔다. (91년 이전에도 관련 의견이 있었으나 없는것과 다름없었다.)



미주 독도 캠페인 관련하여-

2005년 3월 시네마현의 독도 조례에 이평선생이 항의하며 독도 사진에 커다란 태극기를 넣은 홍보 물자를 뉴욕 교포들 상대로 배포하면서 미주 독도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그의 나비효과는 극대화 되어갔다. 


그의 활동은 당시 미 의회에 계류중이던 과거사 위안부 이슈에 큰 힘을 실어준 계기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활동으로 아베 일본국 총리가 '현해탄 평화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과거사 관련 사과와 함께 10억엔 위로금 내놓는 성과가 있었다.  


'독도이슈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동해아닌 한국해가 국제사회로부터 인정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0년 1월,  이평선생 그는 '한국해' 자료들을 뉴욕 한국일보에 보내는 자료에 '일본해'를 지워버리고 그 위에' 한국해'로 표기한 자료를 보내는 대담한 활동을 하였고 당시의 자료는 그의 블로그 '평화존중'에 올려 놓았다. 


특히 뉴욕에서 요란하고 떠들썩했던 '우리땅과 병기표기'측은 막강한 인적 자원과 자금으로 2017년 3월 백악관 웹사이트 내 온라인 청원 페이지인 '위더피플(WE the PEOPLE)'에 '동해/일본해' 병기 청원을 하였으나 이후 돌아온 백악관의 공식 입장은 "연방정부는 미국지명위원회(BGN)가 정한 지리 명칭을 사용한다" "이번 청원 대상인 수역에 BGN이 정한 명칭은 일본해이기 때문에 연방정부는 일본해를 계속 사용할 것" "BGN은 해양의 공식 명칭은 하나만 쓴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라는 변으로  '동해/일본해 병기표기'가 기각 당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평선생의 독자적인 캠페인은 지속 되었으며, 지난 2019년 10월 25일에는 뉴욕 플러싱 금강산 식당 연회장에서 열린 '민족 화해포럼에 참석하여 박효성 뉴욕 총영사 및 여러 관계자들과 인사 나누었으며 기념 사진촬영도 함께하였다. 선생은 참석한 여러 인사들에게 제가 '이평 김창조'라 소개하며 '이평'이 곧 평화라는 뜻'이며 '우리의 소망을 이루기 위함이라' 하였으며 마침 그 자리에 독도관련 인사가있어 "이평이 미주 독도 캠페인 첫 주자이며 '독도지킴이-태극안의 독도' 라는 말들을 창안하였노라" "독도를 항구적으로 지키려면 '한국해를 선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평라인'을 설치해야한다" "이러한 전략이 이평에게 있다" 하였다. 10/29/2019


선생이 창안한 '이평라인'은 놀랍고 대담하며 무엇보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그의 애국적인 노고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본다.   


한.일 3.4차  EEZ관련 회담에서 한국이 처음 제시한 경계는 '한국 울릉도'와 '일본 오키섬'의 중간선이었다. 

이는 독도가 EEZ를 갖지 못하는 암석으로 해석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2006년 6월 제5차 회담에서 새롭게 독도와 오키섬의 중간선을 한국과 일본의 EEZ 경계로 제시했다. 독도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서 유엔해양법협약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울릉도와 오키섬의 중간선 제시가 독도 영유권을 포기한 것이라는 국내의 비판에 따른 입장 변화였다. 이로써 한국과 일본은 독도가 EEZ를 갖는 섬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에 대해 일본은 제주도 남쪽에 있는 침대 크기의 작은 암석 도리시마(鳥島)를 일본 EEZ의 기점으로 삼겠다는 주장으로 맞불을 놓았다. 이어지는 회담에서도 한·일 양국의 주장은 변함이 없었고, 변화의 가능성도 없었다. 두 나라는 2010년 6월 제11차 회담을 끝으로 EEZ 경계 획정을 위한 회담을 더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독도 문제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였으며, 이러한 결과는 일본: Takeshima(다케시마) 한국: 독도(Dokdo) 미국: 리안코트 락(Liancourt Rocks)’으로 각각 주장할수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평 선생의 활동 관련>  2014 IHO 회의에 상정한 동해병기표기가 별 진전 없이 폐막되었을 당시, 평화선을 재건(再建)해야 한다는 의미로 "평존라인을 구축하자"는 전언(傳言)이 담긴 CD를 제작하여 뉴욕 한인회, 언론사 등 지인에게 배포하였다. 이후 "남북교류는 평화선 재건회의로 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들을 Blog, fb등에 올리며 재건 반향을 제안했다. 만약, 그 당시 이평의 전언을 중요시 하여 그때부터 남북 교류에 적응했다면 "통일은 대박" 시나리오에 근접하는 부가가치들을 창출하며 '두 쪼가리가 한덩어리'의 소망에 대단히 긍정적인 성과가 있었을것으로 확신하고있다. 


'우리땅'은 주어가 없다. '대한민국이 주권국인냐 아닌냐와 관계가 있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간 그 수 많았던 독도-동해 운동자들에게 지원금, 협조금, 성금등이 주어져 막대한 인력과 자금으로 미주에서 약 10여년에 걸친 운동을 펼치며 '동해병기'가 바른 동해역사라며 동해 알기기 운동도 전개하여왔던 점은  참으로 기막힌 일들이며 애국한다는 작자들이 매국행위를 하고 있었던 바, 대한국민 해외 교표들도 모두 모두 그곳에 다 올인하며 '한국땅-한국해로 가야한다'는 이평선생을 저주하며 그의 인격을 모독하여왔다.  


선생은 이러한 작자들을 좌파로 규정하고 '동해병기 반대!' '소녀상 철거!'등을 주장하여 왔으며 '이평- 캠페인' 관련 하여 여러 구호와 창의적인 그림과 무엇보다 중요한 대한민국 안보와 밀접한 '우리의 소망'에 대해서 그 누구도 제안 제시하지 못하였던 '육로에서 바다'(대륙에서 해양)으로의 접근에 대한 창의적인 방안을 내 놓았다.  


무조건 '이평은 아니다'에 올인한 작자들- 

그 수많은 좌파 운동가들- 그들은 무얼했나? 

무언가 감동적인 그림 한장 말 한마디 내놓은적 있었는가?  Update: 09-07-2021

 

만악의 근원 두 조각 분단,  

특급 항 치유제 이평라인으로 한 덩어리 가능!   


대륙에서 해양으로- 


        





좋아요
태그

DISCLAIMER
이곳에 게시된 글들은 에이전트 혹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올린 게시물입니다. 커뮤니티 내용을 확인하고 참여에 따른 법적, 경제적, 기타 문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케이타운 1번가는 해당 컨텐츠에 대해 어떠한 의견이나 대표성을 가지지 않으며, 커뮤니티 서비스에 게재된 정보에 의해 입은 손해나 피해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뉴스제보 의 다른 글

사진으로 보는 K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