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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비단치마 와 왕비

2020.03.06




          비단치마 와  왕비

                                                                              

 필자는  가끔씩  자신의 꿈을  해몽해  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또한  오래전  모 주간지에 꿈  해몽을 해 주는  고정 칼럼을  쓰기도 했다.  꿈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신라시대 명장 김유신 의  여동생 보희가 꾼꿈은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유명하다. 삼국유사 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김유신  에게는 보희와 문희라는 두 여동생이  있었다.  보희가 꿈에  서악(西岳)에  올라가  오줌을  누는데  오줌이 서울안에  가득 찾다.  이튼날 아침에  보희가 꿈 이야기를  하자  문희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꿈을  사겠어요”   “무슨 물건으로  사겠니?”   “비단 치마를 주면 되겠어요?”  동생 문희가  가지고 있던  예쁜비단 치마가 욕심이 난 보희는  자신의 꿈을  동생 문희에게  팔았다. 


 그러고 난뒤  열흘 뒤에  김유신이  김춘추 와  함께  유신의 집 앞에서 공을  차다가 (축국)  일부러  춘추의 옷을  밟아서 옷 끈을  떨어 트렸다.   당시  가야국  출신인 김유신은 화랑 내부에  가야파가  득세 하자 화랑은  사실상  김유신의  사조직  비슷하게  되어 가고 있는 실정 이였다.  화랑도는  당시  신라의  가장  막강한 청년 군사조직이었기  때문에  이를 장악  했다는 것은  김유신이 강력한 군대를  손에 쥐고 있음을  의미 했다.  김유신은  이를  바탕으로  김춘추 의  혈통을  연결시켜 신라  사회를  장악  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김유신은  당시 33세,  김춘추는  24세 였다.   김유신은  어떻하든  김춘추 를  혈연으로 묶고 싶어 했다. 김춘추 와  처남 관계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이때  김춘추 에게는  보량 궁주라는  부인이  있었음 에도 김유신은  자신의  여동생 중  하나를  김춘추의  첩으로  라도  들여 보내길  원했다.  아무튼  옷깃이  끊어진  김춘추  에게  유신은  “우리집에  들어가 옷끈을  꿰 맵시다!”   라고 권유  했다.  김춘추가  그말을  쫒아  집안으로  들어갔다.  유신이  처음  아해 (阿海 : 보희의 아명) 에게 옷을 꿰메  드리라고 하자 이해는  사양하며 이렇게  대답 했다.   “어떻게  그런  사소한 일로  가볍게  귀공자를  가까이  하겠습니까?” 이에  유신은  다른 동생인  아지 (阿之: 문희의 아명) 에게  명했다.   눈치 빠른  아지는  유신의  뜻을  알아 차리고 춘추와  관계를  맺었고  이로부터  춘추는  유신의 집을  자주 방문하여  아지와 관계했고  유신은  일부러 그럴 때  마다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러다  아지가  임신을  했다.  그러자  이때부터  김춘추는 아지가 부담 스러워 외면 하기 시작했다. 유신의 의도와는  다른 반응 이였던  것이다. 유신은  이런  김춘추를  용서 할수가  없었다.


 유신은  하인들을  불러 명했다.  “마당에  장작을  쌓아라!”  영문을  모르는 하인은  유신의 명대로 마당에 장작을  쌓았다.   유신은  휘하의  화랑과  낭두, 낭도 등을  시켜  온 서라벌에 애비 없는  아이를 밴 문희를 불태워  죽인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유신이화형식을 하겠다고  공언한  날  온 서라벌이  김유신의 집을 주목 했다.   이런데도  김춘추는  끝내 모른척  했다.   신라  골품제  하의 진골 사회에  가슴가득  한을  품은 김유신은 이를  극복 하고자  자신의  누이동생을  김춘추의 첩으로  라도  들여 보내  그와의  관계를 설정 하려  했던 김유신은  분노했다.    동생을  첩으로  라도  김춘추  에게  들여 보내 진골과의 끈을 연결해 보려던  김유신은  요즘  시쳇말로  [쪽]이  팔렸을  것이요,  이렇게   비굴하게  까지  시도 했던   자신의 처지에   슬퍼하고 분노 했던  것이였다.   드디어  연기가  자욱하게피워 올랐는데,  이때  김춘추는 선덕 공주를  따라  남산 에서  놀고 있었다. (지, 때문에  임신한  문희가  불에타 죽게생긴것을  뻔히 알면서도 책임감 없게  놀고 있었다니  김춘추는  요즈음  말하는 ‘나쁜남자’  스타일 이였는 듯  하다)


 연기를 본  공주가연기에  대해  물으니  좌우 에서  사실대로  고하였다.  옆에 있던  김춘추는  어쩔줄  몰라 하며  얼굴색이  변했다.   이를 들은 공주가   “네가 한 일인데  어째 가서  구하지 않느냐?”  고힐난하자그제서야 김춘추는  어쩔수  없이  김유신의 집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김춘추가  유신의 집에 가서  말리자 결국 문희는  타 죽었을  뻔 햇던  위기 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물론  김춘추의  첩 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만약 김유신이 동생 문희를  태워 죽이게  내버려 두었다면  김춘추도  명예에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김유신도  이를  알고  김춘추를  압박하기  위해 일을  벌렸던 것이다.  


 역사의  많이  알려져 있는  문무왕은  바로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김춘추사이 에서  낳은  아들이다.   문무왕은  외삼촌인 김유신과  함께  당나라를  몰아 내고  삼국 통일을  완성 하게 된다.  삼국통일을  완성 하고도  죽어서  까지  용이 되어  동해 바다를  지키 겠다고  하여 문무암(대왕암)이 생기게  된 것이다.  외삼촌인  김유신이 서라벌 장안이  떠들석  하게  퍼포먼스를 벌리지  않았다면  문무왕  은  세상에  나오지 못햇을 것이며  김춘추도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김춘추는  왕손 이지만  성골이  아닌  진골 이였다. 또한  왕자가  아니면서  왕위에  올랐다.  이는  처남인  김유신의  든든한  배경이  있어서 였다. 


 최초의  진골출신 왕이  된것은  김유신 이라는 든든란 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먼저 김춘추를  보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던 김유신은 진정  대단한  야심 가이고  왕이 된다는 것은  생각치도  못했던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수  있었던  것은 그것도  다 그이의  팔자 였던듯  하다.  

아무튼  자신이 싼  오줌이  세상을 꽉차는  꿈은  ‘왕비가 되는  꿈’ 이였던 것이다.   왕비의  신분을  비단치마  와  바꾼  보희가  쬐끔은  안되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 일까?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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