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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의연한 자세

2020.03.10



                             의연한 자세

                                                             

 한국에서 행정직 고위 공무원 으로 일하던 최선생은 억울하게도 독직 사건에 연류 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파면 되었다.  평소  최선생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하직원 하나가 뇌물사건  으로 조사를  받게되자  상사  최선생 에게 받은뇌물을  상납 했다고 진술하며  물고 들어갔고   일이 묘하게 꼬일라고  했는지 당시  최선생 은행구좌에 출처를  알수없는 돈이 입금되어  있던 터라  아무리  억울하다고 결백을  호소  했지만  빠져 나올수가  없었고,  당시 사건을악질 검사로 유명한  K검사가  수사  했었는데 최선생 에게 자백하고  인정 하지않으면   최선생  장인이 운영하던  회사까지  탈탈털어  회사를 도산 시키고  장인까지  잡아 넣겠다고  협박하며 압력을가해어쩔수 없이  누명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까지도 이해가  되지않는  점은  출처 불명의  그돈을  누가  입금했는지  상세히  조사해 보면 자신의  협의가 벗겨질수  있었을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이였다.   아무튼  재판을  받게  되었고  판사는  ‘기소된  뇌물액수가  크지않고 장기간  국가에  봉사 했던점본인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집행 유해를  받고  교도소 생활은  겨우 면했다.  승승장구 하던 엘리트  공무원  이였던  최선생은  졸지에  전과자가 되었고 좌절하게  된다.  사유야  어떻든  ‘뇌물받고  쫒겨난  전직 공무원’   을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몇년을  방황하다,  아내의  권유로 미국에 건너오게  된다.   한국을  떠나면서  ‘이제  죽을때  까지 한국쪽 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겠다’  며  이를  갈았다.  

미국에는  오래전에  이민온  처제  내외가  살고  있었고 양식당  체인점을 몇군데  운영하고 있었는데 사업이  순조로와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일자리와 사업을  알아 보던 최선생은 처제와  동서의  권유로 그들이  운영하던 식당1곳을 양도받아 운영하게  된다.  처제와  동서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사업을  운영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고마운  사람들  이였다.   또  그들의 권유로 그들이 사는곳 인근에  작고  아담한  단독  주택을  사게  되었고 그들이 다니던  교회에도 등록하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소개받아  교제할수 있었다.  예전에  공직에  있을때는  늘  긴장된  생활  이였고 그러다  보니 성격도  날카로워 져서 사람을  대할때  여유가 없었다.  부하직원들  에게도  매우  엄격하고 조그마한  잘못만 있어도 호되게  나무라며 인신 공격성  질책도  많이  했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부하의 원한을  사고  모함에  빠진것  이라  할수도  있었다.  별명이  ‘면도날’  로  불렸는데 이는  일처리가  빈틈없고  정확 하다는  긍정적인  뜻도  있었지만  예리한  날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부정적인  뜻도 포함하고  있었다.  성격이  매사에  여유가  없고  자기뜻에  맞지않는  사람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상처를 주는  공격적인  성격 이였던  것이다.  집에서도  아내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지독한 일 벌레여서 아내와  자식들과  여유있게 여행한번  하지 못하고  늘  일에  매달렸고,  깊은 대화를  나눌 틈이  없었던  탓이다.  이렇게  출세를  위해서  앞만보고  돌진하던  사람이  갑자기  직장에서  잘리게 되자  성격은  더욱 광폭해 지고 울분을  토하며아내나  식구들에게 공격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보다  더큰  문제는 지독한  우울증에  빠져있는  최선생이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아내는  노심초사  했다한다.

이러던중  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처제의  적극적인  권유로 미국행을  택하게  된것이였다 .  식당 운영은  본사에서 파견된  메니저가  잘  처리해  주었고  시간적  여유가  생긴  최선생  내외분은 부부동반으로 골프도 치러  다녔고 일년에  한번씩 해외 여행도  다녔다.  삶에  여유가  있고 스트레스 에서 벗어나자 최선생의  성격도  점차  변했다.   늘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펴지고  성격도  많이  느긋하고 유순해 졌다.   당연히  부부사이도 좋아지고  자녀들 과의  관계도 많이  개선되었다.  훗날  최선생이  필자를  찾아와   “그때 누명을쓰고파면되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  이였습니다.   재판을  받으면서 너무  억울해서 죽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죽어서  내 결백을  밝힐수  있다면  기꺼이  죽을 각오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제와 생각을 해보니  제가  그때는  참  잘못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무원의  최고의   꽃이라는  국장 타이틀을  따기위해 미친놈  처럼  일하면서  가족이나  제 주변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  후회해도  소용이  없지만  저 때문에  상처 받았던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때는  정말 잘못  살았던것  같습니다.   “라고 한뒤  회한의  미소를  지었다.  전화위복  이라는 말이  여기에 쓰일듯 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일도 있고 흉한 일도   격게됨은  어쩔수 없다.   길을 가다보면  닭도 보고 소도 보게  되는것이다.   어떤 기쁜일이  생겼을때  너무  경망되게   좋아 할것도  없고 나쁜일이  닥쳤을때  너무  상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즉, 일희일비 (一喜一悲)   하지말고 세상  모든일을  담담하고 의연하게  지내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화 (禍) 가  나중에  길 (吉) 로  변할수 있으며 지금의  기쁜일이  나중에  화 (禍) 로  변할수도   있기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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