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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망언(亡言)

2021.06.08

        




                                             망언(亡言)


 필자가 상담을 하면서 특히 조심하는 것은 극단적인 말을 삼가는 것이다. 명리학 이란 것이 어차피 통계학에 불과하고 어떤 나쁜 상황이 예상 되었을 때 어떡하면 이를 최소화 시켜 피해를 줄이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즉 運 이라하는 것이 절대 불변의 것은 아니요,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 선에서는 바꾸어 갈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예전에 필자가 亡言을 하여 후에 스승에게 크게 혼난 사연이 있어 여기에 소개해 본다. 


아주 오래전 필자가 사주 공부에 한참 열을 올리던 초년병시절의 일이다. 이런저런 사주 이론과 실제의 사주팔자를 두고 공부에 열중하던 어느 날 우연히 한 할머니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당시 임상을 할 정도의 실력이 되지 못했는데 재미삼아 보아준 주변인들이 우연히 한 두 가지 맞은 것을 침소봉대 하여 대단한 역학 신동이라도 나온 듯 호들갑을 떨어준 덕에 실력은 하나 정도인데 열의 실력을 가진 실력자로 오도된 직후였다. 하지만 스승의 정식 승인을 받지 못한 때이니 정식 상담은 할 수 없고 무료로 재미삼아 보아준다는 명목 하에 치기를 부리던 때이다. 평생 갖은 고생만 하신듯한 새까만 얼굴에 허리는 굽어있는 초라한 할머니와 필자가 마주 한 것은 필자의 도반인 K군이 자신의 이모님에게 자기의 공부 동료하나가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 사람이니 이것저것 물어 실력 없는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필자에게 물어 보시라고 모셔온 것이다. 헌데 할머니의 사주팔자를 대하는 순간 모든 것이 까맣게 보였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하게 나쁜 팔자도 있단 말인가? 할 정도로 사주팔자 구성이 엉망이었다. 어려서 조실부모하는 명 에다가 역마살이 초년 운부터 강하게 끼어드니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부평초마냥 떠돌아 다녀야 하는 명이요, 형제운도 없으니 형제에게 기댈 수도 없다. 이러하면 남편 복이라도 있어야겠으나 남편을 뜻하는 관이 기신이니 남자랍시고 들어오면 그 자체가 고통이요 번민이 될 것이요, 평생 뜯어먹는 남자만 만나게 될 운명이다. 여기다 더하여 자식 복 마저 없으니 어디 의지할 곳 없는 고립무원의 팔자이다. 이렇다보면 재물 복이라도 있어야 ‘돈에 의지하며’ 살아갈 수라도 있을 터인데 이마저 없으니 평생을 남의집살이하며 연명할 팔자이다. 대체적으로 사주팔자라는 것이 아무리 나빠도 최소한 어느 한 가지는 그래도 남보다 좋은 복이 있는데 눈 씻고 찾아보아도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끝으로 마지막으로 기대해 본 것이 건강이나 수명 복이어서 이를 깊이 들여다보니 아뿔사! 긴 한숨만 나왔다. 


평생을 건강치 못하여 다병하게 사는 팔자요, 명(命)도 남에 비해 짧게 나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라고 해야 이제 막 초로의 할머니에 들어선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이분은 그동안 숱한 고생과 병마에 시달려서인지 자신의 나이보다도 15-20년은 더 늙어보였다. 필자가 사주팔자만 들여다보며 끙끙거리며 전전긍긍해하며 아무 말이 없자 이 할머니 쯧쯧 거리며 혀를 차시더니 휴!~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시며 혼잣말처럼 하시는 말씀이 “내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봐도 내 팔자 뻔히 아는데 뭐 볼 것이 있어야 뭐라고 할테지... 더러운 팔자 할 말도 없으실께야!” 라고 하시며 먼 산을 쳐다보며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내쉬신다. 그러더니 “그럼 이거라도 봐 주세요. 하나 밖에 없는 딸년인데 이년 팔자는 어쩐지 봐 주세요” 라고 하시며 생년월일시를 내미신다. 


사주팔자를 세워보니 무술년 을축월 을묘일 을유시로 나온다. 운은 역행하여 갑자, 계해, 임술, 신유, 경신, 기미로 나온다. 당시 37세로 술토 대운을 맞이하고 있다. 용신이 水(물)이니 초년기는 수국이여서 비교적 나쁘지 않으나 다가오는 신유 대운이 大凶(대흉)하다. 아무리보아도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리라고 여겨졌다. 필자 왈 “혹시 따님이 지금 많이 아프거나 또는 아주 나쁜 상황에 처해있지 않습니까?” 라고 물은 즉 “직장생활 하다가 지금 많이 아파서 쉬고 있는데 병이 나을 수 있을까요? 걱정돼서 사실은 오늘 찾아온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저야 더러운 팔자를 지녀 이제 다 살았는데 뭐가 궁금하겠어요? 내 팔자 내가 다 아는데... 그런데 딸년이라도 제발 잘 살았으면 했는데 아파서 꿈쩍 못하고 있으니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아 자식까지 이 모양인지! ~ ~ 아이~ 구 ~ 내 팔자야! ~ ” 라고 하시며 신세 한탄이 늘어진다. 


필자가 다시 한 번 깊이 더 깊이 세심히 들여다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무 말없이 있자니 할머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듯이 묻고 답하신다. “병이 낫기 어려운 모양이지요?” 아무 말 없자 “그럼 죽겠네요?” 역시 아무 답이 없자 휴~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시더니 끙~ 하며 바닥을 짚고 일어서시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신다. 그러더니 서신채로 필자를 내려다보며 “정말 길이 없다는 말씀이시지요?” 라고 재차 물으신다. 더 이상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어 모기만한 목소리로 “네!” 라고 대답하자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나가신다. 필자가 이 할머니에게 한 말은 딱 한마디 “네” 였다. 하지만 이 한마디가 할머니의 억장을 무너뜨린 亡言(망언)이 되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도반 K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충격적 이었다. “이모님께서 상담마치고 가신지 얼마 후에 사촌누이가 죽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모님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거짓으로라도 따님의 병세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면 혹시 이야기가 따님에게 전해져 희망을 주고 기적적으로 다른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오랫동안 시달려야했다. 오래전 추억의 한 단상이었다. “자고로 상담자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니놈 실력발휘 한답시고 이것저것 생각지 않고 보이는 대로 주둥이를 놀리는 것은 지옥 불에 떨어질 짓이란 걸 왜 모르는 겨? 이놈아!” 돌아가신 스승의 서릿발 같은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아 묘연이 송연해진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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