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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엉터리 선생?

2021.08.25

 




                      엉터리 선생? 


  옛날 어느 마을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아무 근심걱정 없는 이 부자의 유일한 근심은 후사가 없다는데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내리 딸만 여덟이 나왔고 아들은 소식이 없었다. 처도 이제 늙어 포기하려던 차에 늦둥이 아들을 천우신조로 얻게 되었다. 뛸 듯이 기뻐한 부자는 이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하며 만지면 부서질까 위했다. 이 부자는 이아들을 잘 가르치려고 고명한 선생을 수소문했는바 드디어 어떤 곳에 엄하고 까다롭지만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이를 찾게 되었다. 이 선생은 학생이 글공부를 다 마칠 때까지는 집에 내왕할 수 없고, 부모도 학생을 찾아 와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귀한 아들을 못 보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아들을 출세시키려는 욕심에 응하게 되었다. 


반년은 어찌 참아냈으나 더 이상은 아들을 보고 싶은 욕심을 참지 못하고 몰래 아들이 공부하는 곳을 찾아가 글방의 봉창에 침 바른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고 들여다보니 아들이 선생 앞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천자문을 읽고 있었다. ‘반년이나 지났는데 여지껏 천자문도 못 떼다니, 우리 아들이 저리 둔하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또 반년이 지나 다시 아들이 보고 싶어 또 몰래가서 봉창에 다시 침구멍을 내고 들여다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여지껏 천자문을 공부하고 있었다. 부자는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내 자식이 바보 멍텅구리구나!’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또 반년이지나 다시 가 들여다보아도 계속 천자문만 공부하고 있었다. 


부자는 속에서 불덩이가 솟구쳤다. ‘아니 우리아들이 아무리 둔하다고 해도 저 선생이라는 놈이 공부를 가르치는 건가? 마는 건가? 아무리 둔한 아이들도 1년 반 동안 천자문을 못 떼도록 가르치는 저놈이 엉터리 선생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더는 참지 못하고 뛰어 들어가 선생에게 온갖 험한 소리를 다하고 아들을 끌어내버렸다. 선생은 묵묵히 험한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아들을 데려와서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들 앞에 동몽선습을 펴니 줄줄 막힘없이 읽어 내려갔다. 천자문은 책을 펴지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외웠다. 논어를 펼쳐보아도 막힘이 없었다. 사서삼경 모두를 막힘없이 줄줄 읽어 내려가는 아들을 보고 부자는 아차 하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기가 막히게 훌륭한 선생에게 오해를 하고 패악을 부렸구나 하는 후회와 함께... 달구지에 쌀 수 십 가마니를 바리바리 실어서 아들을 앞세워 부랴부랴 선생을 찾아갔으나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선생 왈 “저 아이는 이제 학문을 버렸습니다. 천자문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여서 천자문만 이리저리 응용하고 공부해도 모든 학문에 능하게 되는 법입니다. 모든 학문이 기본이 천자문이요, 모든 문장은 천자문의 응용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마음속에 선생에 대한 신뢰가 한번 깨졌으니 이제 사제 간의 도를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다한다. 


필자에게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2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오렌지카운티에서 척추신경 한방병원을 운영 중이던 한 제자가 있었다. 당시 40대 후반의 남자 분이였는데 예전부터 명리학에 관심이 많았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그곳에서 상담업도 해보고 싶은 계획을 지닌 이였다. 처음 필자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필자가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한동석 선생의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을 무조건 이해가 되든 안되든 10회독한 뒤에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한동석 선생은 40여년에 걸쳐 주역을 2만독(貳萬讀)할 정도로 역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분으로 그의 역저 <우주변화의 원리>는 그 책의 깊이와 방대함에 있어 음양오행의 원리를 정확히 해석해 낸 더할 바 없이 훌륭한 책이다. 


역학이나 한의학 또는 풍수지리 등 동양철학과 관련된 모든 학문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기본 입문서로 기초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전기한 천자문과 같은 원리의 책이라 볼 수 있어 그러했다. 그 후 필자를 다시 찾아왔기에 그 책을 10회독 했느냐고 물은 즉 “네, 대강대강 보기는 보았습니다.” 라고 답하는데 영 대답이 신통치 않았다. 아무튼 수업이 시작되었고 음양오행에 대해 3개월 정도 공부를 시키자 어느 날 이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 언제까지 음양오행에 대해서만 가르치실 겁니까? 본 공부에 빨리 들어가야지 쓸데없이(?)음양오행만 계속 가르치시면 어떡합니까? 제가 이 공부를 공짜로 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드리는데 시간만 끌 생각이십니까?” 라고 하며 항의성‧질책성 질문을 한다.


세상 모든 만물의 근원인 음양오행의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학문이 시작 되어야 큰 탑을 쌓을 수 있는데 이 기초를 무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요점만 대강대강 가르쳐 달라는 요구였다. 沙上樓閣(사상누각)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모래위에 세운 누각이라는 말로 어떤 일이나 사물의 기초가 견고하지 못하면 쉽게 무너진다는 말로 인생이나 학문에도 철저히 적용되는 원리인데 학문의 기초를 견고히 하지 않고 요령을 부려 잘 짚어내는 요령 즉 요점만 가르쳐 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필자는 이이의 말에 기가 막혔다. 즉시 이이가 그동안 필자에게 낸 수업료 전액을 돌려주며 “죄송합니다. 선생이 실력이 못 미쳐 제자님의 요구를 따를 수가 없군요. 꼭꼭 짚어내서 잘 맞추는 요령만 가르쳐 주는 곳도 없지는 않을듯하니 그런 곳을 찾아보십시오. 그동안 실력 없는 엉터리 선생에게 돈까지 주시면서 수업 받으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라고 하니 이 제자 분 당황한 표정으로 “아니 뭐!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라고 하더니 낼름 돈을 받아 빼앗기라도 할까봐 안주머니 깊숙이 집어넣는다. 


아마도 횡재한 기분 이었을 것이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공부에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했고 필자의 수업 방식에도 짜증이 나던 차에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식’ 으로 돈까지 돌려주며 그만 하자고 하니 그동안 3개월간 공짜로 수업 듣고 공부에 싫증이 나던 참에 이게 무슨 횡재냐 싶었을 것이다. 이래서 사람의 관계도 가려서 해야 한다. 특히 사제 간의 연을 맺으려면 깊이 그 사람에 대해 들여다봐야 하는데 필자가 경솔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씁쓸한 기억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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