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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알폰스 무하와 성 비투스 대성당

2018.02.13

아르누보의 대표 화가 알폰스 무하와 성 비투스 대성당



프라하 성 안에서 최고의 볼거리는 성 비투스 대성당(Katerdala sv. Vita)이다.
대성당은 고풍스럽기도 하거니와 내부에는 수준 높은 보헤미아의 예술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크기는 124m(407피트) X 60m(197피트), 타워의 높이는 96.5m(317피트)에 달한다.
현재 보이는 건물은 카를4세에 의해 1344년부터 짓기 시작한건축물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위용


하지만, 성 비투스 대성당의 시작은 930년부터였다.
그 때 바츨라프왕(Svatý Václav)에게는 독일의 헨리 1세로 부터 기증받은 성 비투스의 성해가 있었다.
당시 성해(성인의 시체)는 중요한 성물로 성해가 묻힌 무덤 위에 교회를 짓는 관습이 유행했다.
성 비투스의 성해(왼팔)는 당시의 관행대로 무덤에 묻히고 그 위에 로툰다 양식의 교회 건물을 지었다.
로툰다 양식이란 공중에서 볼 때 원형의 구조를 가진 양식을 말하는 것이고,
성인의 성해 위에 지었으므로 교회 이름은 성 비투스 로툰다(Svatý Vit Rotunda)가 됐다.
세월이 흘러 카를 4세가 집권하던 1344년이 되자 프라하의 인구는 급속히 늘어 났다.
주교령은 대주교령으로 승격됐다.




서쪽에서 바라 본 성 비투스 대성당


대주교가 미사를 주관하게 되자, 대성당의 필요성은 당연히 대두됐다.
이에, 프랑스의 건축가겸 기하학자인 마티어스가 총책임자가 되어 성당의 건축이 시작된다.
마티어스가 사망한 1352년부터는 23세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바통을 이어 받는다.
파를러는 일전에 소개한 카를교를 건축한 독일 출신의 뛰어난 건축가이다.
건축을 계속해 오던 대성당은 왕좌가 바뀌면서 멈추기를 거듭하자, 완공은 힘든 것처럼 여겨졌다.
건축이 다시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은 1918년 10월 28일 이후부터였다.
보헤미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의 모든 지역이 합쳐지자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단일국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왼쪽)과 광장


성 비투스 대성당은 이때부터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공사를 빠르게 진척시켰다.
알폰스 무하(Alfonse Mucha)를 비롯한 슬라브족 출신의 유명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두 모였고,
이들에 의해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종교화, 각종 제단들이 제작된 것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이 공식적으로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 낸 것은 1928년 9월 28일.
프라하 대주교와 성 바츨라프 왕에 의해 성 비투스 대성당은 하나님께 바쳐진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청동문


대성당 안으로 들어 가면 다음과 같은 내부 시설이 나오는데
그 중 유명한 것으로는 성 요한 네포무크의 무덤(Tomb of John of Nepomuk)이 있다.
무덤위에 장식된 조각상은 2톤에 달하는 은(Silver)을 사용해 만든 것이다.
성 바츨라프 예배당은 대성당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예배당이다.
예배당 안에는 14세기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수난벽화와 성 바츨라프의 조각상이 있다.




2톤의 은을 사용해 만든 성 요한 네포무크 무덤 위의 조각상


조각가 빌레크(František Bílek)가 조각한 ‘빌레크의 제단’도 대성당이 자랑하는 예술품이다.
프라하 주교 14명의 잠 들어 있는 ‘삼위일체 예배당’은 조용히 앉아 기도하는 장소다.
중앙제단 뒤 쪽으로는 다비드 알트만(David Altmann)의 ‘거룩한 십자가 상’이 있고
북쪽에는 ‘안토닌 가르트너’가 제작한 바로크 오르간(Baroque Organ)이 설치돼 있다.
그외에도 대회랑에는 성 보이테흐의 무덤이 있고, 서쪽 전면부에는 장미의 창이 있다.




조각가 빌레크(František Bílek)의 빌레크의 제단


오랜세월에 걸쳐 지어진 성 비투스 대성당은 중부유럽의 수많은 성당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는오스트리아 빈의 스테판 성당(Stephansdom cathedral in Vienna),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의 성 마르코 성당(Church of St. Marko in Zagreb),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Strasbourg) 등이 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아침 예배시간은 매일 오전 7시(주일 8시 30분),
저녁 예배시간은 금요일 오후 6시, 주일에는 밤 10시에 예배를 드린다.
고해성사는 금요일은 오후 5시 30분 ~ 5시 50분, 주일은 9시 30분 ~ 10시까지.
고해성사(Sacrament of Penance)는 체코어 외에 영어로도 할 수가 있다.




대성당 내부를 돌아 보고 있는 관광객들


성 비투스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알폰스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다.
창의 중앙에는 성 키릴과 성 메토디우스 등 슬라브 족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들의 모습과
성 바츨라프와 성 루드밀라 등 체코인들이 존경하는 성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성 바츨라프, 성 루드밀라 등 성인들의 모습을 그린 알폰스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알폰스 무하는 체코의 작은 도시 이반치체(Ivančice)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한 화가다.
그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지스몽다(Gismonda)라는 연극 포스터때문이었다.
손에 든 종려나무를 바라 보고 있는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는 신비롭고 에로틱하다.





 지스몽다(Gismonda) 연극 포스터


1895년 당시, 실물 크기의 이 화려한 포스터는 파리 전역을 뒤덮었으며
다음해 미국공연에서도 베르나르는 이 포스터를 적극 이용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승승장구하던 무하는 미국에서도 몇 년을 지낸 바 있는데,
그의 최고의 공적은 조국에서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완성한 일과
‘슬라브 서사시’ 연작 20개의 작품을 그린 것이다.
1911년 ~ 1928년 사이에 완성된 슬라브 서사시는 모두 프라하 시에 기증됐다.
작은 것은 4m(13피트) X 4.8m(16피트), 큰 작품은 8m(26피트) X 6m(20피트)에 이르는
20개의 대작은 현재 프라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in Prague)에 전시돼 있다.
알폰스 무하는 1939년 7월 14일, 79세를 일기로 프라하에서 눈을 감았다.


글, 사진: 곽노은



*알폰스 무하 이미지와 슬라브 서사시는 구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알폰스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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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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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투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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