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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인천지방양성대란 단위대가 있었다.

2018.01.27

   


1946년 3월에 인천의 각 국민학교에서 조선소년단 단위대가 조직되고난 다음해인
1947년에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생기면서 인천창영소년대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소년단 인천시연합회 직할대로 조선소년단 인천지방양성대 봉화소년대가
조직이되어 대장은 주원기 간사가 맡으시고 부대장은 인천중학교 체육교사였던
김승만 선생님이 담당하셨다.

봉화소년대 대원들에게는 미국에서 지원해온 정모와 당고바지가 지급이 되었는데 
우리는 그것이 부러웠지만 인천영화소년대 출신들은 내리교회에서 지시한 대로 
인천YMCA소년대로 갔는데 도반장이던 서홍석군만이 교회의 지시를 외면하고 봉화
소년대로 갔다. YMCA소년대는 김인수 장노님이 대장이셨고, 허합 장노님이 위원장이
셨는데 우리대는 인천제12대 YMCA소년대였다.

봉화소년대는 인천시연합회 회관에서 활동을 했고 YMCA소년대는 인천시 신흥동 2가에
있는 2층 건물인 인천YMCA회관을 사용 했지만 대집회일인 일요일에는 회관문을 잠궈서
못들어가고 일년 내내 옆 마당에서 대집회를 했는데 가끔 허합 위원장님이 참석하셔서
우리 대원들은 허합 장노님이 대장님인 줄았다.  대장님은 늘 산악회 산행으로 산에
가시거나 교회일로 나오시지를 못하셨다.

그러다가 6.25동란이 났고 대한소년단 전시구호대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돌아와서는
아무도 소년단 활동을 시작하려는 지도자가 없으셨는데 주원기 간사께서 인천의 각대
출신 대원들을 규합하여 인천지방양성대를 재편하신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 대원들중에
대부분이 인천지방양성대로 옮겨갔다.  그리고 YMCA소년대 시절에는 대번호가 12대 였는데 
대번호도 <養>으로 바뀌였고 제대로 반제교육을 받았다.

새로 편성된 인천지방양성대는 주원기 대장님이 차세대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대원들을
지도하셨는데 철저하게 도반장 중심으로 반장회의를 운영하며, 반제활동을 중심으로 대가
운영되었다. 새로 편성된 인천지방양성대의 대장은 계속 주원기 선생님이 담당하셨고 부대장은
인천시청에 근무하시는 이인섭 선생님이 맏으셔서 대 집회도 이인섭 부대장님 댁 지하 넒은
방을 전용 대집회실로 사용을했다.(자유공원에 있는 전, 외국 공사관 건물이었음) 

인천지방양성대가 재편된 다음해인 1952년에는 부산 일광에서 대한소년단 제1회 전국야영대회가
개최되어 인천지방양성대 대원 12명이 참가하여 준임원으로 2팀으로 나뉘어 한팀은 기능경기대회
심판으로 활동했고 다른 한팀은 야영본부에서 보조임원으로 활동을했는데, 전국야영대회가 끝나고
다음해 중앙연합회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필동 회관에서 전용한 간사와 김용완 교도국장이 서울중앙
양성대를 조직하여 운영하다가 대한소년단에 연장대 제도가 도입되면서 양성대 활동은 끝났다.

대한소년단 인천지방연양성대대원들은 각급 학교에 새로 조직되는 단위대를 위한 지원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어떤 대원들은 새로 조직된 단위대에 부대장 보라는 이름으로 파견되어 대원들을
지도했었다. Scouting의 차세대 지도자 확보를 위한 방법으로 각 지구연합회 마다.이런 지도자
양성대 시스템이 만들어 지는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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