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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차라리 죽는게 세상에 도움 되는 인간

2021.03.09

 





           차라리 죽는게 세상에 도움 되는 인간    


 필자의 오랜 지인 중 안씨 성을 지닌 부인이 있다. 이분은 한국에 있을 때 중학교 영어 선생을 하던 분이였는데 35세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미국에 오게 되었다. 노처녀였던 지라 그동안 모아둔 결혼 자금이 꽤나 있었고 사람이 원체 알뜰해서 결혼당시에 20평짜리 아파트까지 장만해 둔 골드미스였다. 남편은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 와서 이곳에서 배우고 자란 이민 1.5세대였다. 결혼당시 남편은작은 리커 스토어를 부모님 에게 물려받아 운영 중 이였다. 안 여사가 남편을 만난 것은 남편의 이모님이 마침 이웃이여서 오랫동안 노처녀 안 여사를 지켜보다가 사람이 참한 것 같아 미국에 살고 있는 조카가 있는데 만나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그이의 소개가 부부의 연 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처음 한국에 나온 남편을 만나보니 인물도 깔끔하고 한국말도 재치 있게 잘하고 대학도 미국에서 꽤나 괜찮다고 쳐주는 학교를 졸업한 사람 이어서 호감이 갔다고 한다. 처음 미국에서의 결혼 생활은 ‘꿈같은 신혼’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조짐을 느낀 것은 첫 아이(아들)를 낳고 얼마 안 되어서였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가게에 급하게 돈이 필요 하다고 하면서 안 여사로 부터 돈을 가져가는 일이 잦아졌다. 미국 물정을 잘 모르는 안 여사는 리커 스토아에 웬 그런 급한 돈이 자주 필요한지 몰랐지만 지참금 삼아 가져온 돈에서 필요하다는 액수만큼씩 빼 주었다. 그런데 둘째아이(아들)를 첫 아이와 2살 터울로 낳고 나서보니 남편은 지독한 노름쟁이 였다는 것이었다. 결혼 후 3년 만에 하던 가게를 노름으로 다 털어먹고 안 여사 지참금마저 바닥을 내 놓았다. 빚쟁이들 등살에 도저히 살 수가 없어 한국에 있던 APT를 팔아서 대충 정리하고 나니 몇 푼 손에 남지 않았다. 남편은 처음부터 안 여사의 돈과 아파트에 욕심을 냈던 것 같았다 한다. 


아는 도둑질 이라고 남은 돈과 여기저기서 꾸고 끌어 모은 돈으로 새 출발을 맹세하는 남편과 함께 변두리 도시에 조그마한 리커를 얻어 다시 시작했다. 종업원도 없이 부부가 둘이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교대로 작은 가게를 1년 정도 꾸려나가자 조금 자리가 잡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때 남편의 병이 다시 도졌다. 우여곡절 끝에 재기하기 위해 마련한 그 가게마저도 날리자 안 여사는 더 이상 살 의욕이 없었다. 빈털터리가 되어 LA로 새끼 둘을 끌어안고 오면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깜깜해서였다 남편은 빚쟁이들을 피해 무책임 하게도 혼자 살겠다고 어디론가 도망가서 소식이 없고 어린새끼 둘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엄마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으니 한심했던 거였다. 수없이 많은 고생 속에서 두 아들을 키워 나가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밤 청소를 다녔다. 애들은 한국에서 친정 엄마를 불러서 부탁했다. 친정아버지는 못된 사위 놈의 새끼들 키워봐야 소용없으니 그 놈 집에 던져버리고 한국으로 오라고 호통 난리였으나 친정 엄마에게 애원 하다시피 사정해서 ‘엄마가 고생 하시더라도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세요’ 라고 하는 딸의 청에 모정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물 건너온 엄마 차지가 되었다. 코피까지 쏟아가며 열심히 일하는 몇 년 지나자 돈이 조금 모아져 작은 화장품 가게를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이 돌아왔다. 눈물, 콧물 쏟아가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며 다시는 절대 몹쓸 짓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남편은 못 미더웠지만 두 아들을 애비 없는 자식으로 크게 하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또 남편을 용서하고 받아들였는데 처음 몇 달 동안은 잘 지내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집이 난장판이 되었고 남편은 또 증발해 버렸다.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져서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을 찾아내 쓸어가 버렸고 아이들 돼지 저금통 까지 배를 째서 동전까지 흘리지 않고 철저히 가지고 도망쳐 버린 뒤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빚쟁이 들이 몰려와 집하고 가게에 진을 치고 들볶아 되니 장사를 할 수도 집에서 잠을 잘 수도 없는 난감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집을 털어먹고 나갔다가 조금 사는 것 같으면 와서 울고불고 용서를 빌고 또 사고치는 이런 블랙코메디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 총 여섯 차례였다. 주변에서는 안 여사를 ‘미친년’이라고 욕했다. 막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아니? 세상에 지가 지 남편에게 환장하게 좋은 그 무엇이 있으니 저런 꼴을 매번 당하지 아니면 저럴 수가 있나?” 라고 하며 안 여사를 비아냥 거렸지만 필자가 보기에 안 여사는 어떻게 하든 자식들을 정상적인 환경에서 키워 보려고 남들이 보면 미친년 이라고 할 정도로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이러는 중에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아들들은 돈이 혹시 조금이라도 생기면 집안에 돈을 두는 법이 없었다 한다. 신발 바닥을 찢어서 비상금을 넣어두는가 하면 땅을 파고 표시를 한 뒤 돈을 묻었다. 애비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생존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애비는 귀신 같이(?)그 돈을 찾아내 털어갔다. 안 여사의 돈과 함께... 안 여사는 잘난 남편 덕분에 은행거래도 안 되는 사람이어서 집에다 돈을 보관하는 방법밖에 없기에 매번 이렇게 당했다. 이제는 안 여사도 이래저래 움쩍 달싹할 처지도 안 되서 남의 집에서 죽어라 일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수밖에 없기에 목돈을 모을 처지도 못 되었지만 큰 도둑놈이 집안에 앉아 있는 꼴이라 돈을 모을 의욕도 내지 못할 정도로 지쳐갔다. 이러다 몇 년 전 그 처참한 지경의 와중에서도 남편이 또 한 차례 집을 휩쓸어 값나가는 물건 쪼가리 마져 쓸어가 버렸을 때 안 여사는 드디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타주로 도망가는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이제는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 아들 둘을 고물 벤 차에 태우고 정처 없이 떠난 것이다. 이제는 거꾸로 남편을 피해서! 그 뒤 들은 소식에 의하면 아들 둘은 벼르고 있다 한다. 한국말도 서툰 애들이 엄마에게 “아빠 새끼 우리들이 때려 죽일꺼야! 엄마 더 나쁘게 못하게...” 라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애비는 조용히 죽어 주는게 남은 가족을 위해 좋을 것 같았다. 애들한테 맞아 죽어서 끝까지 자식들마저 애비죽인 놈들로 만들지 말고...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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