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나는 친구들처럼 자주 군것질을 하지 못했다. 겨유 한달치 버스 승차권을 끊고 흐뭇해 하곤 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그때 친구들은 집이 여유있는, 소위 용돈이라는 것을 넉넉히 받는 집안의 딸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따라 다니기 보다 그들이 나를 친구하기를 좋아했다. 방과 후 그들은 학교앞 먹자판 포차에서 군것질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애들은 매일 먹는 것을 바꿔 먹다시피 했다.
떡복이, 튀김, 핫도그, 오뎅. 또...
김밥은 그때 아주 비싼 음식이었다. 소풍때만 특별히 먹을 수 있는 고급 소풍 도시락!!!
나는 그들과 함께 먹는 것이 즐겁지만은 안았다. 내가 아쉬웠던 것은 먹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애들과 같이 다니지 못한다는 것. 그애들과 수다도 떨며 많은 생각들을 나누고 싶었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는 참 재미있고 조금은 생각을 나누며 같이 걷고 집에도 함께 가서 숙제도 하고 그런 1학년때와는 조금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왜 갑자기 지금 몇 십년이 흐른 이때에, 그때는 그리 비싸지 않았는데도 먹지 못했었는데 여기서는 고급 군것질 이미지로 다시 떠올랐다. 나의 아이들은 새로운 맛을 만끽하고 나는 추억의 맛을 되새기며 그 때의 그 아쉬움을 떠올리며 그 맛을 음미하고 싶다.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지금 나는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그 추억의 군것질하던 때가 그립고 갑자기 불현 듯이 먹고 싶은 것이 많다. 그 친구들도 그립고 나를 좋아해 준 그 친구들의 소식도 그립다. 그리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감성으로 돌아가 그 무엇인가를 글로 옮겨볼까 하는데...
어릴적 추억을 갖고 왔다. 세월을 지나
지금은 조금 더 성숙한 때의 여고 시절을 그리며 시작하려 한다.
우리는 양갈래로 머리를 땋아 묶고 여름엔 하얀 교복, 겨울엔 검은 교복을 나름대로 꾸며 입고 다소곳하게 가방을 앞으로 두손으로 잡고 걷곤 하였다. 이럴때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였을 때이고. 만원 버스에서는 엄청 무거운 짐 같기도 하고 가방 따로 몸 따로 일 때가 많다.
영서는 새벽이긴 하지만 오늘도 바삐 집을 나왔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가을의 생기를 불어 넣는다.
아침 안개가 하얗고 고요히 주위를 감싸고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영서는 양갈래로 땋은 머리와 다소곳이 양손으로 책가방을 앞으로 하고 서 있다.
조금이라도 만원버스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1초라도 빨리 나와 차를 놓치지 않고 타야 하기 때문에 이 새벽에 집에서 나왔다. 그러기를 잘했다 생각하며 몇일 전 있었던 헤프닝을 떠올린다.
( 지난번에는 매달리다 시피 하며 간신히 버스를 탔지만 결국은 차에서 튕겨져 나왔었다. 너무도 창피하고 아팠다.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뒤로 물러서려 했는데 차장 언니가 웃었다. 그러고는 얼른 내려서 영서를 밀어 넣는다. 어찌나 힘이 센지 괜신히 버스 안으로 몸을 실고 차장 언니의 양팔 벌려 감싸인채고 숨도 쉴수 없도록 갑갑하게 서 있다.
학교 앞에서 다다르자 뛰어내리다시피 하며 껑충 뛰어 내렸다. 그리고
한번 앞 뒤를 살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혹시나!!! 이런 헝클어진 나의 모습을 그 누가 보았으면 어떡하나 조심스레 땋은 머리를 뒤로 재키며 옷매무시를 바르게 하고 학교 언덕길에 오른다. 그때는 그랬었다. )
오늘 새벽 이때도 아침 안개로 멀찌감치 서 있던 그 누군가가 보이지 않았었다. 그때도 너무 당황스러워 보이는 게 없었는데.
버스가 도착하자 영서는 천천히 걸으며 버스에 오른다.
누군가가 뒤에서 뒤따라 버스에 오른다. 모자를 꾹 눌러 쓴채.
오늘은 그다지 버스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조금은 여유가 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오늘 하루를 준비하고 싶었다. 참으로 상쾌하다. 신선한 아침 공기가 콧등을 스치며 지나간다.
조금은 쌀쌀하였지만 학교를 오르는 계단 옆으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단풍나무의 향기가 아름답다. 스르륵 교실 문을 열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아 내가 제일 먼저 왔구나 조용한 이 교실에서 나의 꿈을 시작해야지.’- 양 팔을 올렸다. 소리치려 했다. 그런데 누가 있었다. 교실 문 여는 소리를 듣고 뒤돌아 보며 환호한다.
효식: 어서와 영서야 나도 조금전에 왔어. 오늘 너하고 마음이 통했나봐. 어쩐지 일찍 오고 싶더라고.
영서: 그러게. 웬일로 이렇게 일찍 왔어. 난 내가 제일 일찍 온 줄 알았지.
효식: 그럼 내가 밖에서 기다릴걸 그랬나봐.
영서: 오늘 너 뭔가가 달라 보이는데. 더 예뻐보여. 오늘 무슨 날이니?
효식: 응. 오늘 아빠가 오신데. 몇 년만에 뵙잖아. 그래서 어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오늘 일찌감치 학교에 오고 싶었어.
영서: 학교 끝나고 바로 가니? 아빠 마중하러.
효식: 응. 엄마가 학교로 오신대. 엄마랑 같이 갈거야.
영서: 좋겠다. 그렇게 아빠 기다렸는데.
효식: 너는 어쩐일로 오늘 이렇게 일찍 등교 하셨나?
영서: 하두 버스탈때마다 사람에게 시달려서 오늘은 좀 단정한 모습으로 학교 오고 싶어서.
참 이번주말에 청소년 성악 선발대회에 너도 가니?
효식: 응. 우리식구 모두 가기로 했어. 혜선이가 그때 특별출현 하잖아. 게스트로. 알지? 우리이모 딸. 강 건너 저쪽 동네에서 사는.
영서: 그래? 나는 우리 사촌오빠가 그 대회에 참가해. 우리 집안에서는 유일하게 성악에 재능이 있는 보배라고 할까? 우리 큰어머니가 너무도 열성으로 그 오빠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지.
효식: 그럼 우리 같이 만나서 가자.
영서: 그래 그렇게 하자.
친구들의 반가운 말소리가 들린다.
영서: 오늘도 시작이다. 수업 준비해야지.
효식: 미연아 안녕. 오늘 얼굴이 활짝 피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