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넘겨준 총으로 독일군을 사살하는 유대인 수감자.
1945년 미군이 독일 히틀러 부대가 운영하던 아우슈비츠 실인공장을 해방하고 죽움을 목전에 둔 유대인들을 풀어줬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들을 고문하고 살인한 독일군들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다. 아마 이 순간은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태어나 가장 환희를 느끼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력하게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극적으로 살아나 복수하는 심정이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합법적이지는 않지만, 묵인된 살인. 부모 자식을 잃고, 그 동안 당해왔던 억울한 심정을 그나마 라도 풀 수 있는..
그런데 세월은 흘러, 이제 이스라엘은 부강해졌고,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국가는 언제든, 어떤 방법으로든 처단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이들에게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살인개스로 죽어가던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이들에게는 강력한 칼이 들여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철천지 원수였던 독일에 칼질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형제들에게 칼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성경에서 아랍과 유대인은 모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말하자면 같은 핏줄이다)
이런 예는 굳이 멀리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우리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그들로 부터 말할 수 없는 억압과 고통을 당했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이고 이웃이다. 그렇다고 일본을 철천지 원수로 계속 생각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냥 역사적인 맥락에서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시간의 흐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지금 한국의 총구는 민족(북한)을 향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모두 정당한 그리고 합리적 이유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가족이고 민족이라도 계속되는 갈등과 증오, 그리고 다툼은 어느 순간 원수가 된다. 그냥 죽여야 할 대상일 뿐이다.
예전 미국은 세계의 해방군이었다. 한국을 해방시킨 것은 물론이고, 유대인을 해방 시켰다. 그리고 월남인을 해방시키기 위해 베트공과도 싸웠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총구는 그들의 친구들에게 향하고 있다. 물론 국가적 이익을 위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당장 굶어죽게 생겼는데, 남만 위해 살 수 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은 그런 명분을 찾기위해 한 톤키호테를 내세웠는데, 그것이 트럼프인 것이다. 지금 정의와 평등 찾을 여유가 없다. 그냥 사냥감을 잡기위한 미쳐 날뛰는 한 목줄풀린 사냥개가 필요할 뿐이다.
이제 촛점을 한국에 맞춰 보자. 한국에 이재명을 앞세운 민주당과 김문수와 한덕수, 쌍두마치를 앞세운 국민의힘이 대선을 앞두고 격돌하고 있다. 언제까지 한 사람의 도덕성에만 집착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정렬을 잘 정비한 훈련된 강철부대고, 국민의힘은 전쟁을 눈앞에 두고도 서로 싸우고 지지고 볶으고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 오합지졸이다. 어디에 이 나라를 맞겨야 할지는 너무도 명확해 보인다. 도덕성을 포기하긴 싫지만, 다른 강한 적(세계)과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 정비된 강철부대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는 흐르고 있다. 그리고 상황도 변하고 있다. 어차피 폭군이었지만, 정치를 잘 했다고 평가를 받는 지도자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 예로, 한국의 연산군, 최초의 스페인 국왕인 키를 5세, 인도의 바하두르 샤 자파르, 이집트의 푸투 등이 있다.
도덕성도 중요하지만, 더 큰 그림을 봐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