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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인생의 큰 기회를 놓친 선비

2020.08.24



               인생의 큰 기회를 놓친 선비 


 실력이 있다고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요 노력만 죽어라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운(運)이 닿아야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느낀다. 필자는 17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곳 미주 교포들의 이런저런 다양한 삶의 형태를 수없이 목격한 사람이다. 그다지 큰 노력이 없었는데도 이른바 ‘운이 좋아’ 성공을 이룬 이도 보았고 이와 반대로 남들보다 엄청난 노력을 했음에도 ‘운수 사나와’ 계속 실패하는 이도 보았다. 이 모든 것이 운수소관이다. 조선 숙종 때 천재일우의 기회를 운이 닿지 않아 잃어버린 선비가 있었다. 정역간(鄭易簡)은 경상도 봉화(奉化)에 사는 너무도 고지식한 선비였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정역간은 한번 읽은 글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 고을에서는 천재가 났다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정역간이 과거를 보면 단숨에 장원급제를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인복이 있어야 자신의 기량을 맘껏 발휘 할 수 있는데 정역간은 그렇지 못했다. 인생을 살아가며 친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건만 정역간의 주위에는 교활하고 음흉한 친구 두 명만이 있었다. 드디어 정역간이 큰 꿈을 안고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떠날 때 교활한 친구 두 명이 함께 길을 떠났다. 평소 정역간의 글 솜씨를 알았기에 정역간의 답안지를 훔쳐보기 위해서였다. 정직하고 고지식하기만 한 정역간은 그들의 속셈을 모르고 길동무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세 사람이 한양에 도착하여 주막에서 저녁을 먹고 산책길에 나섰는데 마침 창덕궁 담 길을 돌게 되었다. 두 친구는 정역간을 골려주려 “이집은 한양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인데 자네가 한번 들어가서 집안을 구경하고 오게 우리가 자네를 등에 올려 담을 넘게 해줄께!” 어리석은 정역간은 그곳이 궁궐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월담하면 사형을 면치 못할 궁궐 담을 넘게 되었다.


크고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 들어가 보니 큰 전각이 나왔다. 방에는 불이 대낮처럼 환히 켜져 있었고 책이 1만권이나 될 듯싶게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 한복판에는 큰 책상이 놓여있고 책상 위에는 누군지 모르지만 이 집 주인이 읽다가 버려둔 책 한권이 펼쳐져 있었다. 책벌레인 정역간이 그 책을 들여다보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이였다. 춘추좌씨전은 요즈음으로 치면 <정치학개론>쯤 되는 책이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책인지라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처지를 잊고 신발을 벗고 방석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이 서재의 주인인 숙종임금이 산책을 마치고 서재에 돌아왔다. 안을 보니 행색으로 보아 시골 선비인 듯한 사람이 무엄하게도 임금인 자신의 방석위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숙종은 이 황당한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책을 읽는 선비의 태도가 하도 열심이라 이 선비를 놀려주고 싶은 장난기가 동했다. 


책을 읽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정역간이 숙종에게 “댁은 누구시오?”라고 되레 묻자 숙종은 지긋이 웃으며 “저는 이집 주인인데 댁은 누구시오?”하니 정역간은 태연히 경상도 봉화에서 과거보러 온 선비인데 하도 집이 크고 좋아 보여 허락도 없이 구경하러 들어온 터인데 주인 허락도 없이 이렇게 들어와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사죄했다. 태도가 하도 순진해보여 숙종은 “괜찮습니다. 이렇게 시골 선비가 우리 집(?)을 좋게 보고 구경하러 오셨으니 술이나 한잔 하면서 시나 한수 배웁시다.”라고 능청을 떨었다. 임금은 이런저런 말로 선비의 글 실력을 시험하였고 이에 대해 정역간이 댓구(對句)하는 것을 보니 근간에 보지 못한 대단한 글 실력을 지닌 수재(秀才)였다. 임금은 훌륭한 인재를 만난 것을 기뻐하며 말했다. “내일 과거시험을 볼 때 이 초배지(草紙)에다 글을 써서 내시오.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요!”라고 한 뒤 초배지를 주었다. 


어리숙한 정역간은 그가 임금이라는 것도 모르고 주막에 태연히 돌아와 두 친구에게 자초지정을 말했다. 음흉한 두 친구는 이 말에 쾌재를 부르며 이튿날 정역간이 받아 온 초배지와 똑같은 초배지를 사서 정역간과 같은 답안지를 냈다. 임금이 수없이 많은 답안지 가운데 초배지를 가져오라 분부를 하니 어찌된 영문인지 똑같이 생긴 초배지에 똑같은 글이 적혀있는 답안지가 세 개나 나왔다. 숙종이 정역간을 불러 물어보고 자초지정을 알게 되었다. 불같이 노한 숙종은 정역간을 속인 두 친구 놈을 잡아들이게 했다. 반죽음이 되도록 두 놈의 볼기를 친 뒤 북방의 추위가 살인적인 동토의 땅에 귀향을 보내버렸다. 


숙종은 정역간에게 “자네는 글재주는 뛰어나나 수령 노릇하기에는 너무도 순진하여 벼슬을 내릴 수가 없을 것 같네. 시골에 돌아가 <춘추좌씨전>이나 읽으며 아이들이나 모아 가르치면서 여생을 보내게!”라고 한 뒤 그 책을 선물로 주었다. 이리하여 정역간은 자신의 일생일대의 큰 기회를 잃었다. 인복이 없었고 운이 닿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일이든 연이 닿아야 이루어진다. 안달복달한다고 안 될 일이 되지도 않을 것이며 될 일이 안되지도 않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처럼 18세기의 과거제도는 그런대로 잘 운영되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과거장에서의 부정행위는 만연하고 과거급제는 사고파는 물건처럼 되어버렸다. 과거시험가운데 소과(생원ㆍ진사) 급제는 3만 냥, 대과(무과ㆍ문과) 급제에 10만 냥이 거의 정해진 정찰가 였고 돈으로 과거에 합격한 뒤에는 수령임명을 받아 임지에 나가려면 또 뇌물을 바쳐야했다. 초사(初仕)라 하여 처음 수령이 되어 임지로 떠나는 자는 1만 냥, 관찰사나 유수는 1백만 냥을 뇌물로 내야했다. 이러니 임명이 되고나면 본전을 뽑기 위해 백성을 최대한 수탈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어 조선의 멸망을 앞당기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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