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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道理(도리)에 어긋남을 묻는 쾌는 맞지 않는다.

2021.07.30

                





                        道理(도리)에 어긋남을 묻는 쾌는 맞지 않는다.  


 필자(筆者)의 전공과목인 ‘주역’(周易)은 잘 알려져 있듯이 유교의 오경(五經)중 하나로 중국의 고전 가운데 가장 난해하고 접근이 어려운 고도의 경지에 도달한 경전이다. 공자 같은 동양의 성현도 주역을 이해 하고자 쩔쩔 매었을 정도로 난해한 학문이 주역이다. 공자께서는 말년에 역(易)의 공부에 흥미를 느껴 주역 공부에 열중 하였는바 주역을 적은 죽간 책(대나무를 가죽 끈으로 연결하여 만든 책으로 당시는 종이가 발견되기 이전 이여서 이런 형태로 책을 발간하였다)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 이였고 죽기 전 이 공부를 마치지 못함을 한탄하며 “내 나이를 몇 년 만 더 연장해서 주역을 공부할 수 있게 해준다면 나에게 큰 허물이 없을 것” (논어)이라 하며 아쉬워하였다. 이정도이니 주역이 얼마나 심오한가를 알 수 있다. 


주역은 원래 중국 상대(上代)부터 점서(占書)로 되어 있었으나 공자가 위에서 상기(上記)했듯이 공부에 열중하여 주역의 원래의 뜻을 밝히고자 십익(十翼)을 서술함으로서 점서에서 벗어나 유교 최고의 경전으로 재탄생 되었다. 이후 연이어 제갈공명 등등 수많은 천재들이 연구를 더하여 현대의 주역이 탄생하였다. (공자가 십익을 지어 유교최고의 경전이 된 주역은 중국 한대(漢代)이래 청대(淸代)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발전시켜 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문화 역시 고대로부터 주역의 易理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도 주역의 건곤이감 괘에서 연유했으며 태극기의 의미도 주역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체질법 의학인 이제마의 사상의학도 주역을 기초로 하였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기본원리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역시 주역의 기본 역리를 모르면 해석하고 이해할 수 없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나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주역’은 최상의 경전으로 최고상급 교육기관의 교과서였을 뿐만 아니라 과거시험의 주요시험과목 이기도 했다. 주역은 이같이 우리의 정치, 교육, 윤리, 도덕 뿐 아니라 의약, 천문, 지리, 복서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원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한국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양의 위대한 철학사상임 에도 불구하고 아직 까지도 학술계나 일반 대중이 주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점치는 책’ 정도로 생각되고 있음은 실로 잘못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주역’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점으로서의 주역’은 극히 일부분의 주역에 불구하다. 본래 점이라는 것은 주역에 있어 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리에 맞지 않는 점을 친다면 그 점은 영 맞지 않는다. 주역에 통달하게 되면 점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아도 64쾌의 변화에 현 상황을 대입해보면 그 다음의 변화를 충분히 예측해 낼 수가 있다. 


필자의 경우 손님과 상담시 ‘무엇이 궁금하여 왔는지?’를 먼저 묻지 않는다. 우선 그 사람의 사주팔자를 개관하여 그이의 성정을 파악하고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강에 대해 조언한 뒤 쾌를 뽑아 그이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고 이 쾌에 맞추어 그이의 문제점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으로 상담이 시작된다. 쾌를 뽑을 때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정갈한 마음으로 쾌를 짚어야 제대로 된 쾌를 짚어낼 수 있다. 따라서 하루 종일 피곤한 상담에 시달리고 난 뒤의 저녁(밤)시간 대에는 상담을 되도록 피한다. 이는 필자의 건강에도 지장을 주지만 정신이 흐리멍텅하고 피곤한 상태에서는 정신 집중을 하 기 어려워서 잘못된 쾌를 짚을 위험성이 커서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잘못된 쾌를 짚을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성은 손님의 기망행위다. 바른 마음으로 간절하고 진정된 마음으로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바른 답을 얻을 수 있는데 거짓된 말로 필자를 속이려 하거나 필자의 실력을 시험해 보겠다는 사악한 마음으로 거짓된 정보를 필자에게 제공하거나 바르지 못한 마음으로 필자와 상담해 보려는 이는 바른 답을 얻어갈 수 없다. 도리(道理)에 어긋남을 묻는 쾌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전에 어떤 중년부인이 필자를 찾아와 어떤 남자분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물은 일이 있다. ‘그냥 알고지내는 남자’ 라고 해서 필자는 부인의 운세와 그 남자의 운세를 분리해서 쾌를 뽑아 답을 드리니 영 신통치 못한 표정이다. 자신의 현 상황과 필자가 말하는 상황이 일치하지 않아서인 듯 했다. 나중에 필자가 재차 물으니 그 남자 분은 ‘그냥 알고지내는 남자’가 아니라 6년 전 부터 자신과 동거중인 남성분 이었다. 이 경우 비록 혼인신고를 하고 살지는 않는다 하여도 사실혼 관계에 있기에 남편으로 보아야 한다. 부부의 경우 운을 공유(共有)하기에 쾌를 짚을 때 두 사람의 운을 합쳐서 하나로 보아야 쾌를 정확히 짚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잘못된 쾌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도 아주 소소한 기본 상황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거짓말로 거짓된 정보를 주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분이였다. 


올바로 된 상담을 하고 바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자신의 기본 정보를 주어야 함에도 계속 거짓된 정보를 주며 필자를 테스트 하려는 기색이 뚜렷했다. 이런 경우 바른 답을 얻을 수 없다. 어떤 분은 필자와 여러 번 상담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계속 다른 생년월일시를 대는 분도 보았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분들이 꽤나 있는 것이 놀랍다. 미래에 대해 묻고자 한다면 우선 깨끗한 마음가짐 과 간절히 답을 요하는 성실함이 있어야한다. 여기에 더하여 필자 또한 깨끗한 마음으로 정성껏 쾌를 짚어야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道理에 어긋나거나 어긋남을 묻는 쾌는 맞지 않는다’ 이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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