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엔 왕이요, 지금은 거지팔자
10여 년 전에 60대 중반의 노신사분이 필자를 방문하였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눈에 광채가 있는데다 꽉 다문 입과 사각턱이 상대를 제압하는 강한 기(氣)를 내뿜고 있었다. 와서 하는 말이 자신은 이런 사주팔자니 하는 것에는 평생 관심을 두고 살아오지 않았는데 8~9년 전부터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등에 실리는 필자의 칼럼을 보고 흥미를 느끼던 중 용기를 내서 찾아오게 되었다 하시며 생년월일시를 말한다. 이분은 1948년 음력 8월 28일이며 오전 10시경 사시에 태어났다 하여 팔자는 戊子年 辛酉月 戊午日 丁巳時가 되었고, 운은 순행하여 壬戌 癸亥 甲子 乙丑 丙寅 丁卯 戊辰 을사 경오로 흐르고 있으며, 대운수는 3을 쓰고 있으니 13세, 33세, 43세 하는 식으로 3자가 드는 나이에 운의 변화가 있는 팔자이다.
우선 이 사주는 戊土日干이 시주 丁巳와 일지 午火의 생조를 받아 신강한 사주팔자다. 년지 子水는 재(財)에 해당되는 바 土의 기운에 극을 받아 아주 미약한 상태가 되었다. 허나 월령인 酉金이 왕성하여 戊土의 왕성한 기운을 금으로 화하게 하고 이것이 다시 수기를 생조하는 구조다. 전형적인 부모 덕 없는 팔자로서 혼자의 힘으로 자수성가해야 하는 팔자이다. 초년에는 부모형제 덕 없어 戊戌 癸亥年에 해당되는 22세 이전까지의 운은 객지타향에서 어린나이로 모진풍파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허나 드디어 甲子 乙丑대운에 해당되는 23세부터 42세까지 운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운이어서 승승장구 했으리라 보여진다. 왜냐하면 甲子, 乙丑대운은 목이토를 억제하고 子丑이 수기를 도와 엄청난 재운이 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때 큰돈을 벌었으리라 보여지는데, 그 뒤에 이어서 오는 43세부터 52세까지의 丙寅 대운이 몹시도 불길하다.
그 이유는 丙寅 대운에는 화기가 토를 생조하고 상관을 억제하여 심할 경우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악운이다. 겨우 목숨이라도 건지면 다행이겠다. 재물은 물론 완전파국에 이를 것이요, 이후의 運을 살펴보아도 별 볼일 없으니 옛날 승승장구하는 시절은 잊어버리고, 종교에 의지하여 신앙생활이나 열심히 하고 건강이나 잘 챙기는 것이 최선의 길일것 같았다. 팔자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일람한 뒤 필자 왈 “어려서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어린나이부터 세상풍파를 많이 겪으시며 많이 고생하셨겠습니다. 하지만 23세 무렵부터 강한 운이 열리니 이때부터 운이 열리기 시작하여 약 20년 동안 엄청난 큰돈을 버셨으리라고 보여 집니다. 하지만 43세 이후부터 계속 악운이 겹치니 재산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이때 까딱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운이었는데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남자로 태어나 한번 크게 놀아보았으니 후회는 없으시겠습니다.” 라고 하니 이 노신사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이제는 제 운이 다한 것인가요? 이제는 아무 희망도 없는 것인가요?” 라고 하며 애타게 묻는다. 이분은 전라남도 고흥사람이다. 고흥에서도 뚝 떨어진 나라도라는 섬마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우주과학기지인가 뭔가가 들어서있다고 들었지만 당시만 해도 오지 중 오지 깡촌섬 이였다. 손바닥만한 밭떼기와 힘센 장정 혼자서도 들 수 있음직한 조각배 하나에 온 식구가 목숨 줄을 걸로 살았다. 이러다보니 8남매 중 중간에 태어난 이분은 공부는 엄두도 못내고 그저 굶어죽지 않고 사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이러던 중 12세 무렵 먼 친척이 운영하는 부산의 모 염색공장에 취직이 되어 몇 년간 일했지만 급여는 없었고 그저 밥 먹여주는 것이 다였다 한다.
머리가 좀 크자 조금은 세상에 약아져서 공장 동기가 먼저 서울로 서울로 올라가 자리 잡고 있던 메리야스 공장에 취직을 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월급이라는 것을 받아보게 되었다. 메리야스 몇 장 씩 눈을 피해 슬쩍 한 뒤 남대문 시장에 야매장사치에게 팔아먹는 도둑질도 공장 동기에게서 배웠다. 이렇게 지내다 그 동기와 함께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시장바닥 한 구석에 내복가게를 시작했는데 장사가 꽤나 짭짤했는데 어느 날 동기가 가게를 몰래 권리금 받고 팔아먹은 뒤 도망쳐 다시 빈털터리가 된다. 낙심하고 있던 그에게 시장에서 일수놀이를 하던 아주머니가 뒷돈을 대주어 다시 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젊은이가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던 일수 아줌마의 배려였다.
드디어 23세가 되는 甲子年 대운에 접어들자 운이 확 트이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손만 대면 돈이 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시장에는 미제물건이 인기였는데 한 흑인병사와 우연히 손이 닿아 미제물건을 엄청 싸게 사들일 수 있었고, 당시 외관에 있던 미군부대에서 유효기간이 지나서 땅속에 매립한 엄청난 양의 물건을 그 부대 한인 경비원들과 작당하여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때 번 돈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돈놀이도 하면서 점포를 사두었다 팔았다 하는 식으로 큰돈을 번 뒤 집장사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한 10년간 집장사에 열중하여 인근에 웬만큼 알려진 건축회사로 성장시켰다. 이제는 부자정도가 아닌 새끼 재벌이라 할 만큼 큰돈을 벌고 의기양양해 있을 때는 눈에 뵈는게 없을 정도로 세상이 돈짝만해 보였다. 첩도 얻고 당시 흔치않던 해외여행도 하는 등 초일류 상류생활을 즐겼다.
하나 43세부터 시작되는 丙寅 대운이 오자 그야말로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 공사 중에 건물이 무너져 인부가 여러 명 죽는가하면 받아놓았던 어음이 부도가 나고 모든 일이 죽어라죽어라 하는 식으로 꼬이고 꼬여 드디어 부도가 나고 말았다. 마누라도 도망가고 하나밖에 없던 아들놈마저 교통사고로 죽자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극약을 먹고 말았다. 46세말경이였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위세척을 하고 창자까지 자르고 붙이는 대수술 끝에 살아난 것이다. 속은 완전히 버려 이때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속 때문에 고생을 하신다했다. 감옥에도 다녀오고 난 뒤 어찌어찌하여 미국과 인연이 닿았다. 나이 60중반을 넘은 나이에도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는 신세임에도 옛날의 영화롭던 세월을 잊지 못하고 아직도 옛날에 빠져 산다. 그래서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내가 왕년에! 내가 왕년에!” 였던 것이다. 왕년에 왕이었으면 뭐하겠는가? 이제는 늙어빠진 뒷방 늙은이에 불과한 것을! 상담말미에 필자가 한 충고는 이렇다. “한세상 큰 부자로 한때나마 살아 보셨으니 평생 그런 돈 한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고생 속에 살다가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옛날은 잊고 건강이나 챙기세요” 였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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