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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용진가를 부르는 참전용사 노병의 눈 가에는.......

2018.01.16



1950년 11월에 북한괴뢰군의 침략을 당하여 온 국민이 쓰라린 아픔을 당하고 있을 때 인천여자중학교
4학년 학생이었던 임영숙 학도호국단 간부는 전쟁으로 휴교중이었던 학교를 둘러보러 가던길에
인천축현국민학교 교정에서 여군을 모집한다는 스피커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뛰어가 지원을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서울 일신국민학교 신병 집합장소로 이동을 해 갔다.

집에서는 학교에 갔다 오겠다고 나간 딸이 돌아오지 않자 사방으로 소재를 알아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하며, 학교에서는 당일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소식에 온 가족이 잠을 이루지 못하던
3일후에 인편으로 입대자의 소품이라며 집으로 전달이 되어 여군에 입대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는 "암!. 그래야지" 하시며 흡족해 하셨다.

그 때 그 대한민국 여군 제2기생으로 출정했던 여학생이 지금은 86세가 되어 미국 알리조나주 유마
지방에서 아들의 자식들을 돌보며 외롭고 조국이 그리울 때면 그 때 출정하면서 배워 불렀다는 용진가를 
소리높여 부른다고 한다.  이민생활의 고달품 속에서 어려울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 때면
언제나 용진가를 크게 불러 마음을 다스린다는 노병은 지금도 외딴 땅에서 외로이 살아간다.

아버지로 부터 들은 "나라위해 한 일들은 자랑해서도 안되고 공치사를 하거나 대가를 바래서도 안된다."는
말씀을 되새기며 살아 오다가 2016년 후반부에 동생의 권고로 6.26 참전용사로 등록을하여 한국 정부로 부터
참전용사 기념메달을 받고는 "내 조국이 아직도 나를 기억애 주는구나!."하며 그 메달을 목에 걸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하는데 매 6개월마다 L.A.총영사관으로 참전용사 신상신고를 하기 위해 먼길을 버스로 달려오는것이
힘들다면서도 그래도 그 길이 마냥 좋기만 하다고 한다.

L.A 다운타운에 거주 하시는 언니네 집에 오셔서 2-3일 묵으시며 충영사관에 찾아가 신상신고서를 작성하면
동생이 한국으로 우송해 주는데 그럴 때 3남매가 한번씩 만나다고도 하며 올때마다 그 참전용사 기념메달을 
목에 걸고 오신다.  조국을 떠나온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 찾아가 보지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소식으로 조국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변했다는 소식이 그저 좋기만 하다는 노병의 눈가에는 이슬이 맽친다.

너무도 힘들고 어려울 때면 부른다는 용진가를 함께 불러 봤으면 좋겠다.

"용진가"

양양한 앞길을 바라볼 때에
혈관에 파동치는 애국의 깃발
넓고 넓은 사나이 마음
생사도 다 버리고 공명도 없다.
보아라 우리들의 힘찬 맥박을
가슴에 울리는 독립의 소리

용진 용진 어서 나가자.
한 손에 총을들고 한 손엔 사랑
돌격 돌격 멸공 전선에
천하무적 우리군대 누가 당하랴.
보아라 휘날리는 태극 깃발을
천지를 진동하는 승리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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